엔제이는 아내와 고등학생인 딸 정정, 여덟 살 초등학생 아들 양양과 장모를 모시고 사는 중년 남자이다. 엔제이를 중심으로 해서 위로는 부모, 아래로는 자녀 그리고 자신, 이렇게 3세대의 이야기로 엮어져 있는 영화는, 엔제이의 처남 아제의 결혼식으로 시작돼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그리고 세밀하게 각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진행된다.
여자 친구가 임신하는 바람에 결혼식을 하게 된 아제. 그 자리에 오래 사귄 옛날 여자 친구가 찾아와 결혼식 분위기는 엉망이 되고, 아제의 어머니 곧 엔제이의 장모는 아들의 결혼이 영 마땅치 않아 피로연 참석을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피로연이 열리는 장소에서 엔제이는 30년 만에 우연히 첫사랑 셰리와 마주치게 되고, 같은 시간 집에 남은 할머니는 손녀 정정이 버리지 않고 그대로 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그만 거동을 못하고 자리에 눕게 된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오지만 의식을 찾지 못하고 침대에 누운 채 간병인과 가족들의 간호를 받게 된다. 엔제이의 아내는 할머니께 자꾸만 이야기를 해드리면 정신을 차리실 거라고 말하지만, 딸인 자신도, 아들 아제도 길게 할 이야기가 없어 쩔쩔맨다. 어린 양양은 '모든 걸 다 아는' 할머니께 이야기할 것이 없다며 할머니께 이야기하는 일 자체를 거절한다.
엔제이가 회사의 위기와 함께 셰리와의 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아내는 회사 일과 집안 살림과 어머니 병 구완에 지쳐 산 속으로 마음 공부를 하러 떠나버린다. 그 사이 정정은 정정대로, 양양은 양양대로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된다.
딸 정정이 옆집 친구 리리의 남자 친구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고 데이트를 하게 되는 모습은, 출장지인 일본에서 서로 만나 추억을 더듬는 엔제이와 셰리의 모습과 섞인다. 다시 시작하자는 셰리와 받아들이지 못하는 엔제이. 첫사랑에게서 극심한 충격을 받고 혼란을 겪게 되는 정정. 아버지와 딸은 둘 다 가슴 아프게 제 자리로 돌아온다.
꼬마 양양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며, 아빠가 준 사진기로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어댄다. 사람들은 늘 반 밖에 보지 못하므로, 보게 해주려고 찍는다면서…. 정말 양양이 찍은 사진 속에는 사람들의 뒤통수만 잔뜩 들어있다.
자신이 버리지 않은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갔다가 쓰러진 할머니께 죄책감을 느끼는 정정은, '나를 용서한다면 이제 제발 깨어나세요' 라며 빌고 또 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쳐 돌아온 정정의 눈에 평소의 모습대로 환한 웃음을 띈 할머니가 보인다. 할머니는 정정에게 종이로 나비를 접어주시고, 정정은 할머니 무릎에 기대어 잠이 든다.
할머니의 장례식. 산에 가있던 엔제이의 아내도 돌아오고 영정 사진 속의 할머니는 말이 없다. 마음 공부를 한다며 떠났던 아내는 여기나 산 속이나 다를 것이 없더라는 고백을 하고, 30년 만에 만난 첫사랑에게 갈 수 없었던 엔제이는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그 힘들었던 시간을 정리한다.
정정은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과 보이는 세상은 너무 다르다며, 이제부터는 눈을 감고 세상을 보겠노라고 마음 속의 고통을 드러낸다. 세상 일을 다 아시는 할머니께 할 이야기가 없다던 양양은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자신이 쓴 편지를 읽어드린다.
"난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커서 남이 모르는 일을 알려주고, 못 보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할머니가 늘 늙었다고 한 말이 생각나요. 저도 늙어간다고 말하고 싶어요."
할머니는 영화의 처음 부분 아들의 결혼식에서 심기 불편해 하던 모습으로 시작해, 영화 내내 의식 없이 침대에 누워 계신다. 그러나 가족들에게 할머니는 곁에 있는 존재이다. 때로는 의무적으로 보살펴 드려야 하는 환자로, 때로는 마음 속 저 깊은 이야기 상대로, 때로는 생활의 무거운 짐으로.
돌아가시기 전 딱 한 번 할머니는 손녀 정정에게 환한 웃음과 부드러운 품을 내어주시고 영정 사진 속으로 들어가 버리신다. 꿈같은 할머니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고 정정의 손에는 종이로 만든 나비 한 마리만 남아있다.
어린 양양은 어른들의 혼란의 틈새에서 혼자 다니며 세상을 보고,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읽는다. 아빠가 보는 것과 자신이 보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양양은 삶의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을 가슴으로 익히게 된다.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딸과 아들. 영화 속에서 그들은 어떤 접점도 없이 각자 자신의 시간을 겪으며 견뎌나간다.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과 뒤엉켜 너도 없고 나도 없는 상태로 절대 빠져들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차갑게 느껴지지만 오히려 거기에는 하나와 하나를 별개로 인정하는 분명함이 있다.
하나가 둘이 되려면 하나가 하나에게 녹아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나에 하나가 완전히 스며들면 이미 그것은 하나일 뿐이니까. 하나 하나가 낱낱이 떨어져 홀로 존재하며 만날 때 그 둘은 진정 둘이 되는 것이다. 사람 사이 역시 스스로 바로 선 후에라야 비로소 제대로 관계 맺을 수 있는 것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식구들이 산 속의 마음 공부에서, 옛사랑에게서, 첫사랑에게서 몸과 마음을 돌려 제 자리에 오는 동안, 할머니는 이 곳에서의 삶을 접고 새로운 세상으로 옮겨가신다. 다른 사람 모르게 마음 속의 풍랑을 겪은 사람들은 다음에 닥쳐올 풍랑을 조금은 더 잘 견딜 수 있으려나….
삶을 거둬가시며 손녀 손에 남기신 할머니의 종이 나비는, 죽음으로 애벌레의 생을 마감하고 나비의 새 삶을 시작하는 우리들 인생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 꼬마 양양은 어리지만 "저도 늙어간다고 말하고 싶어요!"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꼬마 양양을 따라 늙어간다고 고백하며, 하나가 둘이 되는 삶의 신비함을 가슴에 소리 없이 새겨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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