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롭고 풍성해진 서정

캐나다 출신 싱어송라이터 Ron Sexsmith의 [Cobblestone Runway]

등록 2003.07.16 12:32수정 2003.07.1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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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n Sexsmith의 'Cobblestone Runway'

Ron Sexsmith의 'Cobblestone Runway'

캐나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론 섹스미쓰(Ron Sexsmith)는 흡사 소년에서 성장이 멈춘 듯한 동안(童顔)의 소유자다. 서른 살에 ‘뒤늦게’ 데뷔해 이제 불혹의 나이에 다다랐음에도, 그의 크고 천진(?)해 보이는 두 눈은 소년기의 우울함, 불안함 또 한편으로는 다 잘될 거라는 근거없는 낙천 등을 고루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음악도 꼭 보이시한 용모만 같다. 론 섹스미쓰는 당대의 음악적 조류나 유행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감미롭고 서정적인(그래서 때론 따분하게 들릴 수도 있는) 포크 팝의 영역을 줄곧 고수해 왔다. 음반을 낼 때마다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노래와 작곡법은 "전통적으로 '얼간이의 통곡(nerdy wail)'이라고 명명된 것의 계승자"라는 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약간의 변화 조짐이 보인 것은 네 번째 음반 'Blue Boy'(2001)인데, 여기서 론 섹스미쓰는 오랜 음악적 동반자 미첼 프룸(Mitchell Froom) 대신에 스티브 얼(Steve Earle)과 레이 케네디(Ray Kennedy), 이른바 ‘The Twangtrust'에게 프로듀서를 맡기는 모험을 단행했다. 그 결과 음반에는 보다 다채로운 리듬과 악기가 동원되었고, 이전 음반까지 느껴지던 단조로움도 일정 부분 해소되었다. 물론 섹스미쓰 음악의 시원(始原)일, 어쿠스틱 포크와 서정적이면서도 우울한 색조는 변함이 없었지만….

통산 다섯번째 음반 'Cobblestone Runway'는 전작의 변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아니 파격적으로 느껴질 만큼 밀어 붙인다. 새로 맞아들인 프로듀서는 마틴 테레페(Martin Terefe)로, 그는 이전 셰아 세거(Shea Seger)의 데뷔작 'The May Street Project'(2001)에서 소울과 컨트리를 오가는 다채로운 음악색을 능란히 조율해낸 인물. 때문에 새 음반이 선보이는 변화의 폭은 크고도 넓다. 상처받기 쉬운 청년 같은 섹스미쓰의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알아보지 못할 만큼 말이다.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신서사이저와 일렉트릭 기타의 ‘전격적’인 도입이다. 단순히 살짝 가미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들이 음반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령 'These Days'는 두왑(doowap)풍 코러스와 두드러지는 드럼 루프, 그리고 곡의 말미를 노이즈로 지글거리며 장식하는 키보드 사운드가 인상적인 곡이다.

또한 'Disappearing Act'는 일렉트릭 기타가 전면에 나서며 데뷔 전 섹스미쓰가 밴드하던 시절을 되새기게 한다. 'Heart's Desire'를 주도하는 퍼즈톤 기타가 ‘섹스미쓰답지 않다’고 느꼈다면, 이어지는 'Dragonfly on Bay Street'에서는 놀라 까무러칠지도 모르니 주의하라. 'Dragonfly on Bay Street'는 흡사 우울증 걸린 자미로꽈이처럼 쿵짝대는 왁자함 속에서도 섹스미쓰의 텁텁한 목소리가 도드라지는 곡이다. 양념처럼 삽입된 보코더는 이 곡을 음반 내에서도 가장 ‘파격’으로 만드는데, 음반 전체의 큰 변화와 비교하더라도 지나치게 이질적이란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이런 거대한 변화에 비하면 다른 곡들의 미묘한 새 면모는 약소해 보일 정도다. 음반 곳곳에서 출몰하는 오케스트레이션? 이전 두 장의 음반에서도 있었던 변화이므로 놀랍지 않다. ('Former Glory'나 'The Less I Know'에서는 아예 스트링이 전면에 나서기도 한다) 'Former Glory'나 'For a Moment' 같은 단아하고 화사한 챔버 팝 역시 전작의 'Fallen"이 그러했듯 섹스미쓰가 ‘해봄 직한’ 음악에 속할 것이다. 피아노 선율이 곳곳에서 들리는 것 역시도 'Blue Boy'의 변화를 복습하는 차원일 뿐이다. 'Up the Road'에서 리듬을 책임진 마림바와 'The Less I Know'의 펜더 로즈가 놀랍지 않았다면, 신서사이저-일렉 기타의 공세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 섹스미쓰의 음반에 ‘지루하다’거나 '가장 부드러운 음유시인'이라는 평을 내리기는 힘들게 되었다. 다채롭다 못해 ‘요란’하게까지 보일 정도로, 음악적 스펙트럼은 넓어졌고 청자에 대한 접근 방식은 다양해졌다.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 하나로 승부하던 섹스미쓰의 예전을 떠올리면 생경한 감도 있지만, 새로운 변화와 그의 음악성이 썩 잘 어울리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섹스미쓰의 목소리와 작곡의 방법론은 여전한 가운데, 풍부한 음악적 소스가 적소에 사용되어 풍성하면서도 균일한 음악을 창출해내고 있다. 론 섹스미쓰는 이 음반 'Cobblestone Runway'를 기점으로 자신의 디스코그라피를 새롭게 쌓아 올릴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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