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우린 선생도 아니었어요"

아름다운 고백

등록 2003.07.17 12:09수정 2003.07.2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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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준철 선생의 가을 교정에서...

안준철 선생의 가을 교정에서... ⓒ 오마이뉴스 조호진

저는 지금 16년째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처음 교단을 밟았을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아직까지 버리지 않고 있는 교사로서의 신념이랄까, 양심이랄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교직을 그만 두는 한이 있어도 이런 교사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한 번은 추상적으로, 한 번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요.

"이것은 검은색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흰색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나도 어쩔 수없이 이것을 흰색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검은색이지만 흰색이다. 어이, 김 군에겐 이것이 무슨 색으로 보이는가? 검은색으로 보인다고? 허허 무슨 말인지 아직 이해를 못한 것 같군. 이것은 검은색이지만 흰색이다. 아니 처음부터 흰색이었다."

"방학중 자율학습은 너희들 말대로 희망자에 한해서 자율적으로 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 중에서 방학중 자율학습을 희망자에 한해서 하는 학교는 없다. 그러니 우리도 자율학습이지만 강제로 할 수밖에 없다. 아니, 앞으로는 자율학습이란 말을 강제로 한다는 뜻으로 생각해라. 그러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저는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같은 울안에서 살았습니다. 집주인이 같은 셋방에서 함께 산 것이지요. 저녁시간이 되면 칠팔 명의 아이들이 선생님 댁으로 과외를 받으러 왔습니다. 저는 가난해서 과외를 받을 형편이 못되었지만 친절하신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돈을 내지 않고도 부유한 집 아이들 틈새에 끼어 공짜 과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주말고사라는 것이 있었는데 과외시간에 배운 것들이 대부분 시험 문제로 나오는 바람에 주말고사에서 등수가 껑충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에는 선생님의 배려가 얼마나 고맙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중에 커서 생각을 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과외를 받지 않은 아이들은 선생님의 부적절한 행위로 피해를 본 것입니다. 그것도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데 당시만 해도 그런 교사의 불공평한 처사를 지적하거나 비난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아직은 시민대중들의 사회의식이 부족한 사회였다고 볼 수 있겠지요. 마음이 선량하고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교사라고 하더라도 양심의 가책이나 별 고민 없이 그런 분위기에 맞추어 살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박봉에 시달리다보면 그런 유혹을 떨치기가 어려웠을 테고, 남들이 다 하는데 교사로서의 양심을 지킨답시고 고고하게 처신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게 여겨졌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만약 오늘날에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교사가 자기 집에 학생들을 불러와 과외를 시키는 일도 그렇거니와, 그때 배운 것들이 시험문제로 출제된다면 그것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요, 그로 인해 구속을 당하는 사태로까지 일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존경받지 못하는 교사로 오래 기억에 남든지, 아니면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겠지요.

그만큼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지요.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10년이 될 지, 20년이 될 지는 모르지만 교사들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 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씩 해보기도 합니다. 가까운 장래에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울한 생각도 하면서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지한 세월이었어요. 그 무더운 여름날 아이들을 하루 종일 교실에 붙잡아 놓고 공부를 강요했으니 말입니다. 학습 효과가 없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다른 학교가 다 하니까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유치한 변명이나 늘어놓고 말이지요."

"공부를 강요한 것도 그렇지만 방학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더 큰 공부를 못하도록 한 것이 더 큰 잘못이지요. 그것은 염연히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인데 지금 같으면 상상이나 하겠어요?"

"강요를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해주었다면 또 말이 다르지요. 학생들의 개인차나 요구 등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교사 수급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수업을 짰으니 누구를 위한 보충수업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지요."

"방학중 보충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시험에 출제하자는 말도 있었지요. 보충수업을 받지 않는 아이들에게 불이익을 주어 전원 참석하게 하자는 발상이었지요. 그런 우리 교사들이 학생들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요? 고교시절이면 사회의식이 한참 왕성할 때가 아닙니까?"

"솔직히 그때만 해도 우리 교사의 눈엔 학생이 없었지요. 그만큼 학생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기에는 아직은 덜 성숙한 사회였구요. 한마디로 우물 안의 개구리였어요. 교육경쟁력 운운하면서도 세계의 청소년들이 방학을 이용해서 어떤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으니까요."

"맞아요. 교사로서 진정으로 성실한 것이 무엇인지 우린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우린 선생도 아니었어요."


먼 훗날에라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우린 교사도 아니었다'는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먼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세상에 대하여 그런 아름다운 고백을 하고 있는 교사가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런 교사들이 설 땅을 잃게 되는 날, 우리 교육도 희망을 잃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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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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