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은 마라톤이다

박철의 <느릿느릿이야기>

등록 2003.07.18 06:02수정 2003.07.1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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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손기정 선수.

손기정 선수. ⓒ 체육박물관

21년 전 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신혼살림이 시작되었다. 서울 잠실에서 전세방을 얻어 신혼생활을 했는데 막상 어느 교회에서든지 오라고 하는 데가 없었다. 신월동 Y교회에서 교육전도사를 하고 있었는데 파트타임으로 하는 것이니, 나머지 시간은 하릴없이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나를 불러주는 곳을 기다렸다.


어느 날, 친구목사의 전화를 받고 충청도 단양으로 달려갔다. 교회담임자 자리가 하나 생겼다는 것이다. 그 교회장로들과 인터뷰를 했다. 나는 감지덕지하여 어떤 조건이든 상관하지 않기로 하고 교회 담임전도사 자리를 수락했다.

때가 한여름이었다. 내가 교육전도사로 아르바이트하던 교회의 여름행사를 끝마치고 가겠다고 한달 말미를 주었는데, 한 달이 지나도 아무연락이 없었다. 이미 전세방은 비워주기로 하고 교회에서 송별회도 마친 터라, 언제고 오라고 하면 짐을 싣고 떠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내가 가기로 한 교회에선 나를 담임자로 모신다고 철썩 같이 약속을 했기에 그 약속을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나를 처음 소개해주었던 친구목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뜸 한다는 말이 나보고 “그 교회에 가서 설교를 어떻게 했냐?” 는 것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물었더니 그 쪽 교회에서 내 설교가 문제가 되어 발칵 뒤집어 졌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설교를 어떻게 하였길래….’

그 때가 장마철이어서 노아 홍수설화 이야기를 했다. 나도 궁금해서 다시 설교노트를 들춰보았으나 문제될 만한 내용이 없었다. 얼핏 집히는 대목은 설교 중 에 5.18광주항쟁 이야기를 슬쩍했고, 내가 좋아하던 양성우 시인의 ‘이러다가’라는 시를 낭송한 것이었다.

“이러다가 점점 답답해지고/ 이러다가 점점 허물어 지겠구나/ 도대체 산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 어렵다면야/ 어떻게 눈 뜨고 있겠느냐/ 이러다가 갑자기 쓰러진다거나/ 쓰러진 채 휴지처럼 짓밟힌다든지/ 짓밟혀서 진흙 속에 묻혀 간다면/ 억만년 메마른 씨앗으로/ 어디에서 힘차게 싹터 오르고 어디에서 힘차게 자랄 것이냐…/ 이러다가 별똥처럼 사라져가고/ 사라지며 한마디도 말 못한다면/ 영혼은 어디에서 흐느껴 울고/ 어디에 기대어 잠들 것이냐/ 어디에 기대어 잠들 것이냐.”


a 1988년 정선에서 친구들과 함께.

1988년 정선에서 친구들과 함께. ⓒ 느릿느릿 박철

그 교회 장로 한 분이 당시 집권여당의 지구당위원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퇴짜를 맡고 말았다. 참으로 난감했다. 모든 게 어긋나고 말았다. 완전히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그 다음해 강원도 정선 ‘덕송교회’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6개월 동안 담임자가 없었던 작은 시골교회였다. 그 교회도 내가 운동권이라고 퇴짜를 맞을 뻔했다가 간신히 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 웃기는 얘기이다.

그 교회 부임해 간 지 얼마 안 되어 서울 어느 선배목사에게서 짤막한 편지가 왔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박 전도사. 첫 목회가 고생이 많을 줄 아네. 목회란 단거리 경주가 아닐세. 목회란 마라톤이야. 마라토너의 심정으로 달리길 바라네. 나도 박 전도사가 훌륭한 마라토너가 될 줄 믿고 있네….”

이 짤막한 편지를 읽고 변소 간에 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목회란 마라톤이다. 그게 내 첫 목회의 화두였다. 지금부터 근 20년 전의 이 나라의 상황을 기억하시는가?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민족의 제단에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농민들이 계속되는 여러 파동으로 농약을 마시며 죽어갔다. 군사독재정권으로 기인한 포악한 구조적인 모순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새파란 30대 초반의 풋내기 전도사가 강원도 아우라지의 두메산골, 차도 안다니고 신문도 전화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내가 지금 도대체 무얼 해야 한단 말인가?’하고 고민했다.

조각칼로 주택 기둥에 한자로 참을 ‘인(忍)’자를 큼직하게 새겼다. ‘참자, 참자, 또 참자’ 하고 4년 6개월 동안을 되뇌었다. 목사의 삶만 마라톤이 아니다. 모든 인간의 삶이 그러하다고 믿는다. <오마이뉴스>에 사는이야기를 쓰는 김광진님이, 오늘 아침, <느릿느릿이야기>에 이런 글을 보내 주었다. 그가 그동안 젊은 의사로서의 길을 걸어오면서 느낀 단상이다.

a 베네치아 항구에서.

베네치아 항구에서. ⓒ 느릿느릿 박철

“…인생은 또한 마라톤과 같다고도 한다. 인생의 질주는 끝이 없다. 때로는 쉬어가고 싶다. 정말이지 잠시만이라도 간절히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아예 주저 않아 버리지는 않더라도, 잠간동안이라도 이 지겨운 뜀박질을 멈추고 싶다. 달리기를 멈출 수 없다면 걷기라도 하고 싶다. 그러나 나에게 휴식은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뛰지 말라고, 이젠 쉬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모두가 열심히 뛰라고 응원만 할 뿐이다. …나는 안다. 내가 뜀박질을 멈출 수 없는 이유를. 그러나 나는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달릴 뿐이다. 사람들이 모두 그러는 것처럼. 그렇다. 나도 내 몫의 뜀박질을 계속할 뿐이다.”


나는 아침마다 달리기를 한다. 달리기 그 자체가 고통일 수도 있지만, 또 고통이 새로운 희열이 되기도 한다. 그것을 난 온몸으로 느낀다. 아침 안개가 내 시야를 가린다. 내 눈도 흐릿해 진다. 나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마라토너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할 일은 최후의 목표지점을 향해 열심히 달리는 일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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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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