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란 콩 밭최성수
작년 봄, 저는 보리소골 손바닥만한 밭에 콩을 몇 골 심었습니다. 지금은 고3인 큰 아이와 함께 비닐을 씌운 밭에 일정한 구멍을 뚫고, 한 구멍에 두세 알씩 콩을 심었습니다.
"아빠, 이 콩알이 자라서 정말 콩이 많이 열릴까요?"
난생 처음 곡식 씨앗을 심어보는 큰 아들 녀석은 미심쩍다는 듯, 그런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만 내려가는 얼치기 농사라 심어 놓고는 가꾸고 돌볼 틈도 없었습니다.
"까짓것, 벌레 먹으면 먹는 대로 키우면 되지. 벌레도 먹고 사람도 먹고…."
오이나 배추에 벌레가 생겼다며 안타까워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런 말을 하며, 아내에게보다는 나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이나 고추는 심고 나서 줄도 매주고, 모종 아래의 곁가지를 따주는 등의 일을 해야 했지만, 콩은 심은 대로 그냥 두었습니다. 그래도 콩은 심은 그대로 싹을 틔워 잘 자랐습니다.
"아빠, 콩 잘 자라지요? 그 콩 수확해서 콩국수 해 먹을 수 있을까요?"
입시 공부 때문에 시골집에 갈 시간이 없었던 큰 아이는 콩 얘기를 몇 번 했습니다. 콩을 심고 얼마 지나자, 콩 잎이 제법 실하게 올라왔습니다. 새 생명이 자라는 것처럼 마음 그득하고 기쁜 일이 또 있을까요? 우리 부부는 그런 콩잎을 만져보고, 쓸어보고 하며 어서 자라 콩꼬투리가 가득 열리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말이었습니다. 고향 집에 내려가는 즉시 밭으로 달려가 콩을 살폈는데, 아뿔싸! 누가 그랬는지 잘 돋아난 콩의 윗 순을 또옥또옥 잘라 버리지 않았습니까.
"아니, 누가 그랬을까요? 어쩌지요, 아까워서. 이제 콩 농사는 글렀네."
아내가 안타까운 마음을 그런 소리로 드러냈습니다. 나도 마음 한 켠이 무너져내린 것 같은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돋아난 콩 순은 거의 다 잘려진 채였습니다. 제 순을 잃어버리고 곁가지로 또 다른 잎을 피워 올리고 있는 콩 나무는 제 마음처럼 쓸쓸해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