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전기 들어오기 하루 전날 우리 집

내일은 우리 집에 전기 들어온다

등록 2003.07.18 19:24수정 2003.07.1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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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돌기 좋고 멱감을 수 있어 밤이 더 좋다던 누나들

2모작 모내기를 마치고 보리타작을 끝낸 산간 벽지 마을 밤은 고즈넉했다. 방안에서도 개구리 소리 들리고 여치, 풀무치 소리 구분할 수 있다. 벌써 나온 귀뚜라미 소리 사각거린다. 매미도 울음을 멈추었으니 얼마나 조용하고 한갓질까?

어른들 몰래 보리 한 말씩을 훔쳐다가 복숭아를 사먹던 동네 누나들은 밤 마실 도느라 날마다 바쁘다. 누이들은 밤이 더 좋다 했다. 복숭아 벌레도 밤에 먹으면 맛있다 했다. 감자 삶아 먹으며 궁시렁궁시렁 대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면 야단 맞기 일쑤지만 그래도 다음날 집을 나가서 늦게 왔다.

더군다나 땀에 절어 사는 여름에는 대낮에 옷 벗고 목욕 한번 하기 어려웠다.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비누 하나에 수건 한 장 준비해서 으슥한 밤이슬을 벗삼아 멱 감으러 간다. 누나 뒤를 따라가 보려고 몇 번이나 졸랐으나 매번 거절당하고 말았다.

삼 껍질 벗기기가 며칠 이어졌고 벌써 심어놓은 모는 뿌리박음을 마치고 제법 푸르다. 포기가 굵어지고 가지치기를 맘껏 했다. 논바닥엔 더 이상 개구리밥이 보이지 않았다. 정조식(正條植)으로 오와 열을 잘 맞춰 심은 줄을 알아보기 어렵게 벼가 자랐다. 논두렁 콩도 잎을 따다 먹을 수 있게는 되었으니 곡식들은 뙤약볕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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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름답던 마을은 어디에 있을까? ⓒ 김규환


암흑 천지

해가 지면 동네는 암흑에 가깝다. 초승달이라도 뜨면 다행이다. 그믐 때는 다섯 걸음 앞에 누가 와도 알아 볼 수 없다. 어른들은 남포등이나 밤길을 위해 유리와 나무로 네모지게 만든 호롱을 들고 물꼬를 보러 다녀야 했다.

마당엔 모깃불이 자욱하게 깔려 멀리 갈 줄을 모르고 집 주변에 머물러 있다. 새벽부터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후텁지근한 날씨다. 모깃불은 피울 때 보릿대와 보리 까시락을 아래 두고 위엔 생풀이나 두엄으로 쓸 풀 나무로 덮어 확 불이 붙지 않고 서서히 연기만 내며 밤새 타도록 했다. 불이 붙으면 나와서 물 한 바가지를 휙 뿌려주고 들어가면 모기는 별 문제가 없었다. 쑥으로 피워야 향이 최고지만 늘 그렇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마루에서 저녁밥을 먹는 이유

여름엔 들 일 하고 돌아오면 늦게 밥 먹기가 일쑤였다. 밥상 주위를 호롱불 하나로 환하게 비춘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러니 저녁밥은 서둘러 먹는 게 상책이다. 마루나 방도 문제지만 정지 안은 캄캄하기가 마구간보다 더 하니 다시 들어갈 생각은 말아야 한다. 자칫 잘못 했다간 정지문 턱에 밥상을 엎는 사고가 발생하고 울퉁불퉁한 바닥에 발을 헛디딜 수도 있다. 그러니 밥 때가 늦어지면 주부는 급해진다.

방안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인지라 마루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더 많았다. 수백 수천 번 먹어봤던 밥인지라 눈감고도 먹을 수 있게 밥에 된장국에 욋국(오이냉국) 한 그릇 올려 후루룩 떠먹고 만다.

밥을 먹고 나면 각자 자야할 곳으로 기어 들어간다고 하면 맞겠다. 소화가 되기도 전에 이불 속으로 들어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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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은 낮에도 늘 어두웠습니다. ⓒ 김규환



방안에 들어가면...

우리 집 큰방은 남들 집보다 두 칸이 더 있었다. 길쭉한 방안엔 어린 여동생과 어머니 아버지가 누워 있다. 산골 봄은 길어 5월 말까지는 솜이불을 덮다가 유월에 들어 홑이불로 바뀌었다. 윗목이 훨씬 높아 베개를 따로 베지 않아도 되는 구조다.

군불 때는 집이었으니 천장을 쳐다보면 그을음과 거미줄이 서까래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시렁엔 겨우내 썼던 갖가지 물건이 보자기나 대로 만든 함에 가득 채워져 차곡차곡 올려져 있고 벽장엔 그날그날 덮던 이불과 베개가 올려져 있다.

바로 손 위 형은 옆방에서 마루로 나와 잔지 보름은 족히 되었을 거다. 두 형과 누나는 열 다섯에 돈을 벌기 위해 서울 공장으로 가 있어 가족은 몇 년 전에 비해 한층 단출하다.

아버지의 신주단지 라디오에서 흘러간 옛 노래가 요란하다. 김정구의 <두만강>을 아버지는 즐겨 따라 부르시기도 했다. 열 다섯에 일제 징용에 할아버지 대신 자원을 하여 아오지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하다 두만강을 두 번이나 넘었던 때문이리라.

호롱불 하나로...

밥상을 책상으로 대신한 나는 윗목에 앉아 숙제를 한다. 문틈으로 간간이 들어오는 바람에 호롱불이 흔들리며 자꾸 깜박인다. 석유가 부족한 탓일까? 불꽃이 파랗지 않고 붉은 색에 가깝다. 창호지로 만든 심지가 타들어 가는지 그을음이 방안에 자욱하다. 다음 날 아침 새수하다 코를 풀면 콧속에서 시꺼먼 덩어리가 나왔다.

“콜록콜록” 매캐한 냄새가 약한 기관지를 건드린다.

“규환이는 가서 석유 좀 부어 오니라.”
“예.”

조심히 붓는다는 것이 호롱 작은 입구를 정조준하지 못하고 석유를 손에 쏟고 만다. 방안에 얼른 갖다 놓고 성냥을 그어 불을 붙여놓고 나서 그 지독한 냄새를 없애려고 까만 고무신을 질질 끌고 마당으로 간다. 흙에 쓱쓱 문질러 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부엌으로 들어가 재를 한 줌 가져와서 몇 번이고 씻어야 냄새가 조금 가신다. 미끈미끈한 손바닥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었다.

여름에는 사기 요강이 마룻바닥에 나가 있었다. 빗자루와 헤진 와이셔츠를 걸레 한 개 양푼 물그릇 하나와 벽시계 추가 좌우로 춤을 추며 또깍또깍 방안을 울리고 있다.

“엄마?”
“왜?”
“저기요...”
“왜 말해봐. 잠이 안 오냐?”
“예.”
“낼 전기 들어온께 그런갑다.”
“좋냐?”
“하믄이라우~”
“전기 촉 사다 놨제요?”
“이장 님이 한꺼번에 다 사왔다더라.”
“알았어요. 주무싯쇼.”
“오냐. 학교 갈라믄 얼른 자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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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묘사한 외출용 호롱불입니다. ⓒ 김규환



행랑채에선...

행랑채에선 마저 못다 먹은 소죽을 먹으려고 한숨 자고 일어난 소가 “푸쉬~ 푸” 콧방귀를 뀌며 먹고 있다. 돼지는 쥐새끼가 발등을 건드렸는지 “꽥” 소리를 내며 한 번 울고는 이내 조용해졌다. 닭들은 서로 횃대 위에서 밀쳐 내느라 “고고고곡” “구구구국” 뭉기적거린다.

화장실은 아무도 드나드는 이가 없었고 발효된 퇴비만 더 몽글게 썩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개짖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 올 뿐이다.

1978년 전기 들어오기 하루 전날은 그렇게 고요한 밤이 흘러갔다. 마치 긴 동굴에 들어가 있던 박쥐 마냥 가느다랗고 긴 실처럼 올올이 밤이 깊어갔다. 내일은 전기가 마루와 방마다
환하게 우리집을 밝혀 줄 것이다. 좀 체 잠이 오지 않아 몇 번을 뒤척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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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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