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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씀바귀 뜯던 그 때가 행복했어. ⓒ 김규환
씀바귀는 무척 쓰다. 이른 봄철이나 늦가을 여린 씀바귀를 고들빼기처럼 김치를 담가 먹으면 잃었던 입맛을 찾아주니 쓴맛의 효과는 탁월하다. 그래도 그 때는 적당히 써서 사람이 먹을 만하다. 그런 씀바귀가 여름철에는 무얼 그리 먹었는지 소태 맛이다. 사방팔방 제 멋대로 갈라져 ‘씀(명사)이 콕콕 박힌 식물’ 씀바귀.
쌀뜨물을 농축(濃縮)한 건지, 하느님이 사람 몰래 쌀뜨물에 무슨 마이신을 탄 것인지도 모르겠다. 꺾으면 하얗다가 누런 색으로 더 짙어지는 씀바귀 진은 증상스럽게 찐하다. 꽃필 무렵 딱딱하게 센 상추 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상추와 씀바귀 먹고 잠을 청할 정도로 마취효과를 내므로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에 사포닌(saponin)이 누락된 이유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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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토끼는 먹지 않았습니다. 내다 팔아서 공책사고 필통 샀습니다. ⓒ 김규환
해는 높고 낮은 하염없이 긴 여름 날 오후 정신 못 차리게 덥던 날이었다. 학교 갔다 오던 길 가 언덕에서 씀바귀를 만나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토끼 사육을 맡았던 아이는 책보를 질끈 동여매고 씀바귀 옆으로 다가갔다.
씀바귀는 뭉쳐나기에 두 개만 꺾어도 손에 가득했다. 열 가지가 넘으니 말이다. 그 씁쓸한 씀바귀 하얀 진이 팔뚝에 칠해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들까 걱정이 태산이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철망 사이로 잿빛 토끼 두 마리와 흰토끼 한 마리에게 물려주면 “쩝쩝” “야금야금” 갉아먹으니 소리마저 귀엽다. 발을 써서 쭉쭉 끌어다가 먹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맛있게 먹고 있는 꼴을 골똘히 지켜보던 아이는 토끼와 이야기를 나눈다.
“많이 묵어라.”
“형, 참 맛나다.”
“형아가 말이다, 어디어디 있는지 다 기억해뒀으니까 걱정하지 마.”
“고마워. 나는 형아가 제일 좋아.”
“그래, 나도 너희들이 제일 좋다. 맛있는 풀 많이 먹고 예쁜 아기 토끼 다섯 마리만 낳아 주라. 알겄제?”
“응.”
“흰토끼야 어제 잠을 못 잔 게로구나.”
“아냐 내 눈은 엄마가 날 때부터 이렇게 빨갛다고 했어. 그리고 귀가 이렇게 큰 것은 풀 뜯다가 쫑긋하여 달려오는 늑대를 얼른 피하라는 거래.”
“퇴깽이가 모르는 게 없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며칠 전 뜯었던 그곳을 잊지 않고 다시 가보면 더 많은 가지가 퍼져 토끼 키우는 아이를 즐겁게 했다. 소년은 매일 하교 길에 씀바귀를 한 손에 가득 꺾어들고 칡 잎을 목에 걸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년은 어느날 토끼가 없어지자 두끼나 굶으며 울었다. 처음엔 어머니께서 "그 토끼 개가 물어갔단다." 했지만 다음 장에 가신 어머니께서 무지개 공책 세권과 연필 두 자루, 필통을 사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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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끼가 가장 좋아하는 풀이 이 씀바귀입니다.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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