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

항일유적답사기 (58) - 베이징(Ⅱ)

등록 2003.07.19 08:16수정 2003.07.19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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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인민대회당

인민대회당 ⓒ 박도

조선 민족은 참 불쌍하다

마침 점심 시간이라 아들, 손자 내외가 우리 일행을 베이징 시내 서대가로 안내했다. 고국에서 온 귀한 손님이라고 그곳에서 가장 유명한 오리 전문요리점에서 대접했다.


오후에는 인민대회당, 천안문 광장, 고궁박물원〔자금성〕을 관람했다. 저녁 식사 후, 이태형 선생과 1차 면담이 미진하여 다시 선생 댁을 방문했다. 선생은 여전히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단아한 모습이었다. 90세가 넘도록 정정하게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부터 물었다.

"내 건강에 특별한 비결은 없다. 욕심 없이 사는 게 비결일 지도 모르겠다. 20세 때, 장질부사를 앓고 한때 심장이 나빠 고생했는데 도교를 믿는 한족(漢族) 도인을 만나 그로부터 비방을 전수 받아 오늘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처방을 하고 있다.

그 비방이란 양 젖가슴 사이 들어간 부분을 단중혈이라고 하는 데, 그곳을 장지로 누르면서 문지르라고 했다. 그러면 심장이 튼튼해지고 시원하다. 심장이 튼튼하면 그 어떤 병에도 저항할 수 있다."


최근 연변 조선족의 한국 방문 푸대접으로 화제가 옮아갔다. 어쩌면 독립운동가 후손이 친일파 후손 집에 가정부 노릇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지금 동북에 사는 조선족 선대는 대부분 일본놈들이 싫어서 망명한 이들이다. 그들 중에는 조선에서 생활고로 온 사람도, 죄짓고 도망 온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a 자금성에서

자금성에서 ⓒ 박도

내 생각에는 독립운동을 한 후손이라면 굶어죽을지언정 그런 비렁뱅이 생활은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요즘은 시대가 바뀐 탓인지 먹고사는 일, 돈벌이를 중요시해서 조상을 욕되게 하는 사람도 있는가 보다. 환경은 사람의 생각도 바꿔놓는 모양이다.

중국인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향전간(向前看)’ 즉 미래를 보고 사는 사람이 있고, ‘향전간(向錢看)’ 즉 돈을 보고 사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자기 가치관에 따라 처세가 달라지는 모양이다.


조선 민족은 참 불쌍하다. 북쪽에서는 굶어죽는다고 야단이고, 남쪽에서는 민족의 자존심이나 긍지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내 듣자하니 이완용이 후손이 제 할아비 매국해서 왜놈으로부터 받은 토지와 왜왕 은사금으로 산 토지를 재판으로 찾아갔다는 데, 그게 무슨 법치국가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 법은 법이 아니다. 민족 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는 기타 범죄는 범죄가 아닌 세상이다.

나라 팔아먹은 놈도, 왜놈 앞잡이 노릇하던 놈도, 높은 벼슬하며 떵떵거리고 사는 세상에 배고파서 도둑질한 사람이 무슨 죄가 되겠느냐? 그런 나라는 부패하기 마련이고 도의와 양심은 땅에 떨어져 버린다."


서릿발같은 노 애국지사의 울부짖음이었다. 한참동안 말씀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삭였다. 같이 자리한 아드님도 울먹이며 한 말씀을 보탰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법률의 원칙 ― 사유재산 신성 불가침이다. 사회주의의 근본 원칙 ― 공유재산 신성불가침이다.’의 차이입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매국노의 재산이라도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는 게 아닙니까.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세계2차 대전 종전 후, 민족 반역자를 처벌하지 않은 나라는 대한민국뿐입니다.

중국에서는 일제에 협력한 민족 반역자를 ‘한간(漢奸)’이라 하여 모조리 처벌했습니다. 프랑스도 나치 협력자를 매우 가혹하게 처벌했습니다.

이들 나라보다 이민족의 통치 기간이 훨씬 길었던 대한민국에서는 숱한 민족 반역자를 양산했지만,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처벌은 그만두고 오히려 그들이 해방 후 외세에 빌붙어 지배 세력으로 군림했습니다.

심지어 일제 때 독립군을 토벌하는 자가 해방 후에 정권을 잡았으니 지하에 묻힌 선열들이 통곡하실 일이지요. 세계사에 유례가 찾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보다 미개한 동남아나 아프리카 여러 나라도 그렇지는 않았어요.

창피한 일이지요. 민족 정기에 먹칠했던, 우리 역사에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제는 때를 놓쳤습니다. 그때 사람들 이미 저승 사람이 다 되었을 겁니다. 요즘 세상에 옛날처럼 부관 참시는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역사의 재판만은 제대로 해서 기록이라도 남겨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세대가 다시는 반민족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말문이 막히는 …."


이대만씨가 말을 잇지 못하고 통곡을 했다. 갑자기 방안 분위기가 침울했다. 한 동안 아무런 말없이 시간을 보냈다. 눈물을 훔치고 감정을 추스른 이대만 씨가 다시 말을 이었다.

"중국에 있는 조선족 동포들은 남북 조국에서 다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우리 동포요, 같은 핏줄이오”라고 떠들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심지어 제 동포를 외국사람보다 더 푸대접하고 있어요. 요즘 중국 텔레비전에서는 “제주도가 아름답다, 경주가 좋다”라는 둥, 매일 한국 관광 선전을 요란히 하고 있는데, 정작 조선 사람은 마음대로 갈 수 없습니다.

a 천안문 광장에서

천안문 광장에서 ⓒ 박도

얼마 전에 한국을 다녀온 사람 얘기를 들었더니 입국할 때 마약 밀반입을 검사한다면서 어린아이까지 발가벗겨서 심한 모멸감에 눈물을 흘렸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 사는 동포는 마음대로 귀국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에 사는 동포는 냉대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중국 정부에서 당당한 소수 민족으로 대우받고 있습니다. 1943년 모택동 주석은 “조선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이다”라고 선언한 후, 정치 문화 경제 등 중국의 인민으로서 모든 권리를 다 누리고 있어요.

전국인민대회에도 조선족 인민대표로 당당히 나라 정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조국에서 중국에 사는 우리 조선족들이 좀 못 산다고 제 동족을 그렇게 냉대할 수 있습니까?

여기서 일부 돈벌이하러 간 사람들이 남조선에 가서 취업해도 고된 일, 더러운 일, 위험한 일을 하는 모양인데 동남아에서 근로자를 불러다가 시키면서도 제 동족을 그렇게 냉대해도 되나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는데, 만일 다시 일제 침략과 같은 국난을 당한다면 누가 도울 겁니까? 아마 여기 조선족은 달려가도 동남아 이족(異族)들은 달려가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크게 대우해 달라는 게 아니에요. 오랫동안 남의 나라에서 살다가 고향이 그리워서 찾아간 사람에게 “오, 너 고향 찾아왔구나.” 이렇게만 대우해 달라는 겁니다."


마치 우리 일행을 두고 꾸짖는 말씀 같았다. ‘말인즉 옳아서’ 아무 대꾸도 못하고 묵묵 부답으로 듣기만 했다. 이윽고 이항증씨가 입을 떼었다.

a 베이징 교외 만리장성

베이징 교외 만리장성 ⓒ 박도

"국내에 살았던 사람들도 냉대를 받았습니다. 저는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당한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만주에서 환국 후, 조선총독부로부터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지목 받아 늘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자로 유치장을 밥먹듯이 드나들었고 형님들은 불령선인 자손인 데다 창씨개명도 하지 않아서 국내에서 학교도 못 다녔습니다.

1942년 일본이 동남아 침공을 감행하자 할아버지는 “일제하에 하루를 살면 하루의 수치를 더할 뿐이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동맥을 끊어 자결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일제의 끊임없는 체포 구금으로 옥중에서 해방을 맞았지만, 이승만 정부의 회유를 뿌리치고 반이(反李) 운동하다가 빨갱이로 몰려 온 식구가 다 충청도로 쫓겨가서 석유 장사를 하며 연명했습니다.

6·25 전쟁 중 피난지 충남 아산에서 퇴각하지 못한 인민군 패잔병을 동네 청년들이 죄의식 없이 죽창으로 찌르는 장면을 목격하고 분단 민족의 비애에 너무 상심한 나머지 아버님은 그만 곡기를 끊어 돌아가시고 저희 형제들은 학교를 다니기 위해 고아원으로 갔습니다. 그동안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쥐 죽은 듯 엎드려 살았습니다."


한동안 잠자코 있던 이태형 선생이 말문을 열었다.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 사대까지 고초를 겪는다는 얘기는 자네 집안을 두고 한 말일세.

이승만 그 사람 독선이 심하고 욕심이 과했던 사람이야. 애초 임정 각료에는 대통령이란 직함을 쓰지 않았어. 임정 국무총리인데도 자의로 대통령 명함을 만들어 임정 의정원과 마찰을 빚었어. (당시 이승만은 상해임시정부 국무총리 직함을 쓰지 않고 대외적으로 'President’의 직함을 쓰다가 임정 측의 항의와 이승만의 거부로 마찰을 빚었음. 그 후 임정 의정원에서 이를 추인,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제가 되었음-필자 주)

더욱이 우리나라를 미국에다 위임통치를 부탁해서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인가 의심했고, 그때부터 강대국을 엎고 독재를 했어. 오죽하면 임정 의정원에서 불신임 탄핵을 했겠나?

재미 동포들의 인구세와 임시정부 후원금 공채 발매금을 당신 자의로 처리해서 말썽도 일으켰고, 그런 사람이 해방 후 대통령을 했으니까 제 권력만 유지하려고 별별 일을 저질렀을 테지.

친일파를 잡아들이는 반민특위 사람을 오히려 잡아갔다니 그게 말이나 될 일인가? 소가 웃을 일이지.

그런즉 해방은 됐다지만 친일파와 그 후손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았고,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전과 다름없이 지냈으니. 정말 민족의 양심을 가지고 독립운동을 한 조선 백성들만 이래저래 불쌍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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