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숲으로 우리 꽃을 보러 오세요

평창 한국자생식물원

등록 2003.07.20 11:40수정 2003.07.20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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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재배 단지

재배 단지 ⓒ 김비아

오대산을 몇 번이나 지나가면서도 이곳을 알지 못했어요. 지난 주말 평창에 들렀다가 야생화 집산지라는 그 지역 분의 소개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발걸음이 미쳤습니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자락에 위치한 한국자생식물원, 특별히 우리 고유의 꽃들만 모아 놓은 곳이랍니다.

우리 엄마 어렸을 적에는 도랑 가에 지천으로 널린 것이 야생화였다지요. 계절마다 온갖 꽃들이 피고 지고, 가을에는 갈대가 무성하고, 습지마다 풀꽃이 가득했다 하는데, 패랭이 같은 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하는데, 그 모습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세요. 산에 가도 외래종들에 밀려 우리 꽃을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하세요.


그래서 그런지 식물원에서 엄마는 내내 옛 추억에 빠져들었어요.
"세상에나, 어릴 때 보던 꽃들이 여기에 전부 다 있네."
참 반갑다고, 그 흔하고 친숙하던 꽃들을 이제는 이렇게 특별한 장소에서 관람료를 내고 만나야 하는 게 우습다고, 세상 참 많이 변했다고도 하셨지요.

한국자생식물원은 백두대간의 허리로 한강의 발원지이기도 한 오대산 국립공원 일대의 지역적인 특성과 빼어난 자연 환경을 이용해 만들어졌어요. 솜다리(에델바이스) 농장을 하던 사업가 최병렬씨가 1999년부터 농장을 일반인에게 개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영동 고속도로 진부 IC에서 나와서 오대산, 월정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월정사와 진고개로 이어지는 그 숲 속 도로는 들어선 순간부터 마음 시원해지는 길이지요. 오대산 호텔과 국립공원 오대산 관리 사무소를 지나면 곧 한국자생식물원이라는 입간판과 함께 오른쪽으로 난 샛길이 보일 것입니다. 근동에 여행 오신 분이라면 놓치지 마시기를.

a 끈끈이주걱

끈끈이주걱 ⓒ 김비아

입구에서부터 시원한 계곡물 소리가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먼저 8분 짜리 식물원 안내 영상을 관람하고 실내 전시관을 둘러보았어요. 마침 기획전으로 '식충 식물전'이 열리고 있어서 끈끈이 주걱, 바이블리스 등 세계의 식충 식물 수십 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특히 신기해하며 좋아하는 코너였지요. 이벤트관에는 우리꽃 표본전이 열리고 있고, 그밖에 분경 문화관, 조경 소재관이 있어요.

실내 전시관을 빠져나오면 주제원이 나타납니다. 산 아래 아름다운 들판 길을 따라 애기나리, 처녀치마, 할미꽃과 같은 사람 명칭 식물, 용머리, 노루오줌 등과 같은 동물 명칭 식물, 또한 독성 식물, 향기 식물들을 만나실 수 있어요. 이미 졌거나 아직 피지 않은 꽃도 많았지만, 우리 꽃의 그 아기자기하고 예쁜 이름들에 취해서 마냥 즐거웠습니다.


주제원을 지나면 야생화가 거대한 군락을 이루는 재배단지가 이어집니다. 꽃숲 사이를 천천히 걷는 기분, 나비와 벌들이 날고, 햇살 아래 시원한 바람,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드실 거예요.

직원 분의 설명으로는 붓꽃이 피는 5월 중순, 꽃창포와 분홍바늘꽃이 만발하는 6월 초순이면 그야말로 환상적이라고 해요. 내년에는 꼭 그맘때 한번 들르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a 꽃창포

꽃창포 ⓒ 한국자생식물원

a 분홍바늘꽃

분홍바늘꽃 ⓒ 한국자생식물원

하지만 너무 섭섭해하진 마세요. 다가오는 7월 말부터 벌개미취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들국화의 일종이라고 하는데요. 들국화에 직접 해당하는 꽃은 없다는 사실, 들국화가 감국, 쑥부쟁이, 구절초 등 국화과의 꽃들을 한꺼번에 묶어서 부르는 이름이라는 사실을 저는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답니다.

a 벌개미취

벌개미취 ⓒ 한국자생식물원

a 수련

수련 ⓒ 김비아

재배 단지를 돌고 나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생태 식물원. 산길을 따라 우리 꽃을 풀어놓은 곳으로 오솔길을 걸으며 길 양 옆으로 자연스레 자라는 우리 들꽃들을 만나실 수 있어요. 때마침 습지에서 피어난 수련이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는지요.

그 길의 끄트머리에는 1.2킬로 정도의 신갈나무숲길이 있어요. 계단 따라 이어지는, 약간은 힘든 등산로지요. 저는 샌들 때문에 발이 아파서 조금 가다 되돌아오고 말았지만요.

a 생태식물원

생태식물원 ⓒ 김비아

까페 비안 옆 솔밭 광장에서의 휴식도 즐거운 시간이 될 거예요. 어린이들은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다리 아래로 내려가 물가에서 장난을 치지요.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이유미 박사의 '우리꽃 산책'이라는 글이 있어요. 야생화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던 제게 처음으로 우리꽃에 대한 작은 관심을 불러 일으켜준 글이었어요. 봄날의 앵초, 여름의 붓꽃, 가을의 쑥부쟁이, 겨울의 팔손이,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우리 꽃, 그리고 그 꽃에 얽힌 갖가지 재미난 전설들.

저자는 우리 꽃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강산을 사랑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보고 싶고 확인해 보고 싶다면 산과 들로 가보자고. 가슴 가득 기쁨을 안고 돌아올 것이라고. 이젠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근사한 들꽃 하나쯤 품고 사는게 어떠냐고.

비록 대도시의 비좁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도 마음에는 늘 들꽃 하나 품고 살 수 있다면 좋겠지요?

컴퓨터 게임에만 익숙한 우리 아이들 마음밭에도 들꽃 한 송이 심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꽃이 들려주는 지혜에 귀기울임으로써 이 땅에 대한 애정과 삶을 깊이 있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풍부한 감성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 년의 숲으로 오셔서 우리 꽃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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