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도시' 방콕의 골목을 찾아서

[포토에세이] 짜뚜짝의 주말시장에서 실롬의 번화가까지

등록 2003.07.21 11:01수정 2003.07.2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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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이 싸이 팍치!(팍치를 넣지 마세요)"

공항에 내리자마자 방콕에서 살고 있는 친구녀석이 나에게 일러준 태국 말 한 마디. '수아디 캅(안녕하세요)'이라는 반가운 인사말 대신 '음식에 (태국전통 향신료인) 팍치를 넣지 마세요'라고 그 뜻을 알려준 친구의 치기 어린 장난으로 방콕에서의 나의 짧은 일정이 시작되었다.


방콕을 찾은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에 두 번의 방문은 카메라를 들지 않고 찾아온 터라 나에게 이 도시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고 설령 남아 있다 해도 그건 마치 잠깐 피어올랐다 꺼져가는 모닥불처럼 가물가물한 수준이었다. 마치 영화 <메멘토>에서 주인공이 바로 전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했던 설정처럼 난 이 도시의 모든 풍경을 사실 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a 바이욕 빌딩에서 바라본 방콕의 전경

바이욕 빌딩에서 바라본 방콕의 전경 ⓒ 최승희


타일랜드의 수도 방콕!

인천공항에서 4시간 50분 정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면 도착하는 동남아 최대의 관광도시 중 하나인 이곳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방콕의 사람 사는 모습들을 직접 경험하고 그 풍경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물론 목적이 다른 친구 녀석들과 함께 머리를 식히러 온 연유도 있었지만…. 그 틈 사이를 비집고 원고를 만들어야 하는 나의 강박관념은 이곳이라고 예외가 아니어서 내 눈과 발은 늘 방콕의 골목 사이를 기웃거리게 했다.

사실 천사들이 사는 도시라고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방콕은 우리에겐 스포츠 신문 광고란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동남아 패키지 관광상품의 여행 첫머리로 너무나 자주 등장하는 관문 같은 도시로 인식되어 있지만 실제로 방콕이 내포하고 있는 문화적 삶의 거리는 인간 생활의 다양성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풍경들을 지니고 있는 도시였다.

패키지 관광코스로 많이 알려진 외세로부터 침략 당한 바 없는 거대한 왕궁에서부터 재래시장과 수상시장 그리고 화려한 파퐁의 야경과 짜뚜짝 주말시장의 번잡함과 다양함들까지…. 거기에 외국 여행객들의 거리인 카오산 로드를 더하면 방콕은 전통과 문화 그리고 세계로 소통하는 모든 출구가 한 도시 안에서 빼곡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색다른 도시공간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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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방콕의 차이나 타운

방콕의 차이나 타운 ⓒ 최승희


방콕은 전에도 두어 번 와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의 여행은 사실 패키지에 가까워서 실제로 방콕이란 도시를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못하는 그런 주마간산의 여행이었다. 그런 고로 당시의 방콕에 대한 인상은 한마디로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도시였다는 단편적이고 편협한 인상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사진을 찍으러 가는 여행이기도 했고 여행 자체를 방콕이란 도시 하나만을 염두에 두고 가서인지 새로운 방콕에 대한 이미지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여기서 늘 하던 대로 방콕의 역사를 잠시 짚고 넘어가자. 1782년 타일랜드의 수도로 자리잡은 방콕은 지금까지 220년 동안 동남아 최고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며 놀라운 성장을 지속해온 경제, 문화도시이다. 짜그리 왕조가 차오프라야 강 건너편 랏따나꼬신 지역으로 수도를 옮긴 것이 시초가 된 방콕은 '천사들의 도시'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현지지명인 '끄룽 탭'이라는 이름에서 유래가 된 것이라고 한다.

a 왕궁주변의 차오프라야 강

왕궁주변의 차오프라야 강 ⓒ 최승희


실제 방콕이란 명칭은 톤부리 시대 지역을 의미하는 '방꺽'이 서양인들에게 알려지면서 방콕이란 도시 명이 정착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영문 표기가 고려시대 때 정착이 된 것과 비슷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 서울에서의 본격적인 여름을 뜻하는 7월의 방콕은 가을이었다. 방콕은 4월과 5월이 여름이면서 징그러운 더위를 동반한다면 7월은 스콜에 의한 우기인 셈이었다. 해가 지면 시커먼 구름이 도시를 뒤덮고 이내 하늘이 뻥 뚫린 것 같이 폭우가 쏟아졌다. 그렇지만 잠시 후 구름은 사라지고 다시 해가 쨍하고 나는 여우 시집가는 날씨가 연일 계속되었다. 그런 스콜 기후로 인해 방콕은 흡사 사우나를 방불케 할 정도로 후텁지근했다.

a 거리에서 음식을 사는 방콕주민

거리에서 음식을 사는 방콕주민 ⓒ 최승희


난 날이 선선해지길 기다려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방콕은 서울의 몇 배나 되는 넓은 면적을 자랑하지만 지하철이 없어 교통수단이 단순한 편이었다. 지하철 대신 '뚝뚝'이라는 삼륜차와 오토바이가 있지만 먼 거리를 갈 때는 그나마 쉽게 선택할 수 없는 교통편이기 때문이었다.

방콕은 석회성분이 많은 땅과 물이 많은 지하 탓에 지하철을 만들 수가 없다. 당연히 교통은 지상의 도로망이 대부분이어서 심한 교통혼잡을 피할 수가 없었다. 횡단보도가 없는 거리를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거리를 다니는 차들을 보니 차량의 대부분은 일본산이다.

까닭을 물으니 친구 녀석 왈, 방콕의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어 일찍이 일본차들이 엄청나게 수입이 되었고 지금은 지나가는 차량의 10대 중 대 여섯 대가 일본차들 일색이라고 귀띔한다. 가끔 우리나라 차들이 곧잘 보이곤 했는데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a 차이나 타운 거리 풍경

차이나 타운 거리 풍경 ⓒ 최승희


방콕은 서울과는 다른 특이한 시공간적 도시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깎아지른 듯 높은 빌딩 숲 사이로는 낡은 수로와 빈민촌이 상존하고 있는 모습이었고 친구 녀석 말대로 상류층과 빈민층이 주류를 이루는 모래시계형 신분계층을 거리에서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차이나 타운과 후웨이 꽝의 시장을 다니면서 태국사람 특유의 여유로움 역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낯선 방문자에게 꿰때오라는 쌀국수를 말아주며 친절을 베풀어주던 노점 아주머니나 깎아달라고 조르는 이방인에게 선심을 써주며 과일 값을 내려주던 과일가게 아저씨나 더운 나라에서 느낄 수 있는 넉넉한 여유를 사람들은 지니고 있었다.

방콕 현지 사람들은 날이 더워서인지 대부분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점에서 만든 식사들을 비닐에 싸 집으로 가서 먹든지 그 자리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적게 그리고 자주 음식을 먹는 습관은 더운 나라의 특색 중 하나였다. 그래서 시장은 온통 사람들로 밤 사이 내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a 방콕시장의 난전모습

방콕시장의 난전모습 ⓒ 최승희


말이 통하지 않는 이방인에게 일주일간의 여행은 다른 어떤 이에게 그렇게 설득력 있는 여행기를 만들 시간은 애초에 아니었던 것 같다. 대부분이 주워 들은 이야기였고 보면 차라리 솔직한 것이 내가 찍은 조그만 사진 한 장이 오히려 나의 여행을 더 잘 표현하고 있으리란 기대가 불현듯 들었다.

사실 방콕이란 도시를 단 한 편의 여행기로 다 말할 수는 없으려니와 며칠의 시간을 쪼개내어 찾아간 차이나타운 그리고 랏차다 거리의 후웨이 꽝 시장, 꿍 떠이 재래시장과 짜뚜짝 주말시장 그리고 실롬에서 스쿰 윗에 이르는 번화가와 방람푸의 차오프라야 강변의 모습까지 난 대부분 일부러 걸으면서 도시의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지역별 동네의 색다른 내음을 맡으려고 노력했다.

a 후웨이 꽝의 아침 거리풍경

후웨이 꽝의 아침 거리풍경 ⓒ 최승희


여행은 보는 것, 먹는 것이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태국의 수도 방콕은 사실 문화적인 면을 빼놓더라도 보는 것 그리고 먹는 것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화려한 도시였다. 그리고 거기에 한 가지 더 방콕엔 사람들이 있었다. 여행을 즐겁게 하는 것은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또한 그러한 여행길을 어설프고 미력하나마 나의 시각대로 기록하는 여정 또한 상당히 즐거운 일정 중에 하나였다는 자위를 해본다.

a 차오프라야 강의 수상상인

차오프라야 강의 수상상인 ⓒ 최승희


한 도시의 역사와 배경 그리고 문화와 관습 나아가 삶의 디테일을 다 말하진 못해도 적다면 적은 일정 중에 느낀 방콕에 대한 나의 솔직한 느낌은 천사들의 도시라는 닉네임이 썩 잘 어울리는 그런 도시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뿐이었다. 필름을 정리하면서 아직도 방콕의 골목 속에서 만난 태평천하의 개들과 전혀 바쁘지 않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나의 뇌리에서 가물가물 거리는 듯하다.

a 랏차다 거리의 골목풍경

랏차다 거리의 골목풍경 ⓒ 최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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