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지방 재정 자립도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지방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재정을 확대하기 위한 여러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업들은 환경 친화적인 개발이 아니라 자연환경을 극도로 파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골프장을 유치한다든지, 석재공장을 허가하는 등이 그 예이다. 이렇게하여 재정을 확보한 다음에 뿌리 박고 살아갈 터를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금산군의 야심에 찬 꿈
이러한 맥락과 전혀 다른 지역개발에 관련한 보도를 몇 년 전에 접했다( 한겨레신문 '99. 8.4일자) 금산지역에서 행하여지는 개발인데, 이곳에서는 오히려 "금산에서는 환경보존이 곧 개발입니다"라는 말에서와 같이 친환경적인 개발을 하고 있다.
대규모 택지·공단 조성 배제, 산촌 405군데 생태마을 추진, 그린벨트 확대, 길가에 약초 꽃을 심는 등으로 놀러 오는 고장이 아닌 살기 좋은 고장으로 조성한다는 당시 김행기 금산 군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야심에 찬 금산의 마을 숲 조성과 보호수 지정
필자에게 있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금산지역 405개 마을에 '풍치림 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마을마다 1개 이상씩 마을 숲을 지정해 나무를 심고 가꾸도록 해 보기 좋은 풍치림으로 만든 뒤 보존하게 한다는 것이다.
연말까지 마을마다 하나씩 405개의 풍치림 조성에 들어갈 예정이고 궁극적으로는 마을마다 2-3개씩 모두 1천개의 '아름다운 숲'을 조성한다는 것이 금산군의 계획이라는 것이다. 보호수도 늘려가고 있다고 한다.
산림청은 100년 이상 된 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해 훼손되지 않게 보호하고 있는데 금산군은 그 이상 나가 올 해안에 100년 이하 나무도 보호수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근거규정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해 119그루이던 보호수는 올해 말 1천여 그루로 늘릴 예정이라고 한다.
마을 숲이 1999년부터 금산군에서는 부활하고 있었다. 물론 진안지역에도 많은 마을 숲이 조성되어 있다. 과거 마을마다 조성되었던 마을 숲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생각해 보자.
고향을 찾아가면 제일 먼저 맞아주는 당산나무
우리가 시골의 마을 어귀에 당도해서 쉽게 몇 아름씩 되는 나무를 마주 대하게 된다. 그 나무가 자리한 곳이 곧 마을 입구임을 알리는 표시이며, 우리는 그 나무를 당산나무, 애향수, 동구나무, 동수, 정자나무, 괴목나무 등으로 부른다.
그 수종은 매우 다양하여 마을 숲의 수종은 느티나무, 서나무, 팽나무, 소나무, 참나무 등 매우 다양하다. 이중 가장 널리 분포하는 대표적인 것은 느티나무이다. 느티나무는 뿌림 퍼짐이 좋고 오래 사는 나무 중 가장 대표적인 나무이다. 느티나무는 흔히 괴목나무, 당산나무, 정자나무, 애향수, 둥구나무, 동수라 불린다. 괴(槐)는 느티나무 혹은 회화나무를 뜻하는 한자어로서 목(木)자와 귀(鬼)자가 합해져 된 글자이다.
괴(槐)는 나무와 귀신이 함께 있는 상태 또는 그러한 사물을 뜻하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괴'라 하는 나무가 나무귀신, 귀신 붙은 나무로 해석한다. 따라서 '괴'라는 명칭의 나무가 토착신앙과 깊은 관계가 있는 신목(神木)인 것이다. 그래서 괴목(槐木), 귀목(鬼木), 귀목나무라고 불린다.
마을 입구에서 있는 당산나무는 그 마을의 역사를 가늠해주는 척도가 된다. 즉 나무는 어느 곳에선가 흘러들어 온 사람들이 마을을 형성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산 증인이 된다. 그것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지므로 수령을 헤아려 보면 마을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당산나무가 한두 그루가 아니라 마을 정면에서 숲을 이루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숲을 우리는 '마을 숲'이라고 칭한다. 물론 마을 숲은 일정한 기능을 하면서 인위적으로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마을 숲'의 개념을 정리해 보자 "마을 숲이란 자생하여 이루어진 산림(山林)이나 목재를 이용할 목적으로 단순하게 수림(樹林)과 같은 산야의 일반적인 숲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마을 숲은 마을의 역사, 문화, 신앙 등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는 숲으로서, 마을 사람들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보호 또는 유지되어 온 숲을 말한다. 따라서 마을 숲은 야산의 숲과는 달리 단일 수종으로 구성되거나 단층림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마을 숲은 마을 사람들의 사회적 활동은 물론 정신 문화적 생활 그리고 다양한 이용을 담은 마을 공용의 녹지로, 마을 문화가 오랜 세월에 걸쳐 집적되어 온 상징적 대상물이다"(<마을숲> 16면 열화당)
마을 숲이 지니는 문화적 의미는 아주 다양하다. 마을 숲은 토착 신앙적으로는 마을 사람들의 숭배의 대상으로서, 풍수 지리적으로는 좋은 땅을 조성하는 구조물로서, 경관적으로는 절승(絶勝)의 장소로서, 이용과 관련해서는 휴식, 집회, 놀이, 운동 등과 같은 여러 가지 활동을 수용하는 그릇으로서, 그리고 바람과 홍수를 막아 마을을 안락하게 해주는 조절장치로서, 또한 마을의 영역을 경계짓는 통과의례적 장소로서의 역할을 하는 문화 통합적 시설인 것이다.
마을 숲의 기능
마을 숲은 풍수적으로 수구막이 역할을 하는데, 그 점에 관하여 택리지(擇里志)의 복거총론(卜居總論)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무릇 수구(水口)가 엉성하고 널따랗기만 한 곳에 비록 좋은 밭 만 이랑과 넓은 집 천 간(間)이 있다 하더라도 다음 세대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저절로 흩어져 없어진다. 그러므로 집터를 잡으려면 반드시 수구가 곡 닫힌 듯하고 그 안에 들이 펼쳐진 곳을 눈여겨보아서 구할 것이다.
산중에서는 수구가 닫힌 곳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들판에서는 수구가 굳게 닫힌 곳이 어려우니 반드시 거슬러 흘러드는 물이 있어야 한다. 높은 산이나 그늘진 언덕이나, 역으로 흘러드는 물이 힘있게 판국(版局)을 가로막았으면 좋은 곳이 된다. 이런 곳이라야 완전하게, 오랜 세대를 이어 나갈 터가 된다."
여기에서 길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구가 닫힌 곳을 찾거나, 수구막이를 하여야 되는데 이럴 경우 마을 숲이 대표적이다.
"수구막이 혹은 수구막이는 풍수적 배경을 갖는 마을 숲이다. 여기서 수구막이는 마을 앞쪽으로 물이 흘러가는 출구나 지형상 개방되어 있는 마을의 앞부분은 은폐하기 위해 가로로 길게 늘어서심은 인공의 마을 숲을 지정한다. 이러한 수구막이는 마을의 물이 빠져나가는 곳을 막아 설치하는 입체 시설이기는 하지만 댐과 같이 물을 가두는 경직된 구조물은 아니다.
수구막이는 허전하게 열려 있는 부위를 가로막음으로써 댐이 물을 담는 것과 같은 심리적 효과를 얻고자 하는 풍수적 의미의 구조물이다. 수구는 단지 물이 흘러나가는 물리적 의미를 수로를 지칭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마을의 풍수 지리적 형국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들 즉 복락, 번영, 다산, 풍요, 등 상서로운 기운이 함께 흘러 나간다고 믿는 심리적인 의미의 출구이고 보면 수구막이의 수적의미는 더욱 자명해진다"(<마을 숲> 103면 열화당)
대부분의 마을 숲이 처음 조성된 것은 풍수적으로 허함을 방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흔히 허해서 옛날사람들이 심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수구막이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이때 숲을 비보수, 수구막이, 숲 맥이, 숲정이 숲 등으로 부른다.
이후 마을 숲을 오랫동안 보호, 보존하기 위하여 여기에, 신성성, 신앙성이 첨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공동체 의식인 마을 굿으로 계승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당산나무에 대한 신성성이 잘 남아 있다.
마을 숲 조성의 실제적인 기능
마을 숲은 위와 같이 상징적인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마을이 북향을 하고 있으면 겨울철에 심한 바람이 불기 때문에 이를 방비하기 위한 역할을 한다. 마을 숲의 규모가 단순히 나무 몇 그루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넓게는 몇 천 평에 이르기 마을 숲이 형성하게 되면 외부에서는 완전히 마을이 보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방풍림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진안지역의 경우 진안 하초, 진안 원반월, 진안 원연장, 성수 중마 마을, 장수 노하 등은 지금도 큰 규모의 마을 숲이 조성되어 있는 마을을 볼 수 있다. 수해를 방지하기 위한 경우는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마을 숲 조성을 마을 뒤 골짜기에서 흘러온 물이 합류하는 지점이나 마을 앞에 흐르는 천변에 조성된 경우를 들 수 있다.
특히 정천 하조림 마을의 경우에는 마을이 배형국인데 마을이 정자천변에 위치하고 있어 배가 흘러가는 모습을 하고 있어 마을이 좋지 않다고 하여 배를 매어놓을 닻으로 마을 숲을 조성하였다. 그래서 천변에 위치한 마을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마을 숲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요즘에 와서 마을 숲의 기능
마을 숲은 규모가 축조되거나 없어진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여전히 마을 숲의 관념을 살아있다. 예전에 마을 숲이 기능이 수구막이로서만 역할을 담당했는데 요즘에 와서는 마을 숲에 공원으로 조성하거나, 버섯 재배 등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마을 숲은 마을 공동 소유로 관리되어 오고 있다. 그래서 보통 마을 땅이라고 한다. 이점은 마을 숲이 오랫동안 유지 보존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 이다. 마을 숲 땅이나 나무를 팔려면 한 개인이 독단적으로 할 수 없고 마을 사람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호,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을 숲이 마을에서 수구막이로서 신성성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공동소유라는 것은 마을숲을 얼마나 중요시했는가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사이 소유가 대부분 군으로 이전되었다.
마을 숲의 의미
마을 숲은 마을이 형성될 무렵에 입지적으로 허결(虛缺)함이 있는 곳을 비보(裨補)하기 위해서 조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을 숲은 거의 모든 마을에서 나타난다. 마을 숲은 일반적으로 수구(水口)막이 역할을 하는데 그 활용형식은 비보림과 엽승림이 있다.
비보림(裨補林)이란 비보(裨補)(풍수상의 흠, 즉 부족한 점을 인위적인 조작으로 복원한다는 개념으로 물리적, 실리적으로 플러스(+)형태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를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한 마을 숲이다. 비보를 위해서 마을의 차원에서 풍수탑을 설치하거나, 조산하거나, 숲을 조성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비보사찰을 설립하기도 한다.
엽승이란 풍수적으로 불길한 기운을 눌러서 제압하는 의미의 풍수용어인데, 엽승적 풍수효과를 얻기 위한 장치로 마을 숲을 조성하는데 이러한 불길한 요소가 있는 방향을 가로막아 불길한 기운이 마을에 미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숲을 엽승림이라 한다.
그리고 마을 숲이 오래 동안 보존되고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마을 숲에 신성성, 신앙성이 덧붙여졌다. 마을 숲의 소유에 있어서도 개인이 소유하지 않고 마을공동으로 소유하도록 한 점도 마을 숲을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요사이 답사를 하다보면 예전에 마을 숲을 훼손하였다가 마을에 좋지 못한 일이 발생하자 다시 숲을 조성하는 마을도 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마을 숲의 신앙성, 신성성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표시인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금산군지역에서 조성한다는 마을 숲은 오늘날에도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친환경적 개발의 모범 사례가 될 듯 하다.
금산군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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