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의식불명인 딸 위해 지은 집

목포 문씨 부부의 또 다른 근심

등록 2003.07.23 08:36수정 2003.07.2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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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엽(74)씨 부부는 허름한 집을 헐고 얼마 전부터 새 집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전남 목포시 산정3동, 이 일대는 오래된 슬라브 주택들이 밀집돼 있다. 그래서 행정당국에서는 이곳을 주거환경 개선지구로 지정해 주택개량과 도로 확,포장 등 도시개발 사업을 해오고 있다.


정거배
낮은 지역이라서 적은 양의 비에도 침수피해를 일상생활처럼 겪어야 했던 문씨 가족들은 모처럼 지은 새집은 꿈만 같다. 두 달전 집을 새로 짓게 되면 저리 대출로 건축비를 마련 할 수 있다는 이웃주민의 말만 듣고 40년 넘은 슬레트 집을 헐었다. 이제 침수 걱정도 덜게 됐다. 비좁고 낡은 집에서 수십년 동안 살아왔던 이들 가족의 숙원이 해결된 듯 싶었다.

별다른 수입이 없는 문씨 부부가 이처럼 주택신축이라는 결단을 하게 된 이유는 또 있다. 수십동안 낡은 집에서 살아오면서 겪는 불편은 숙명처럼 받아들였지만 문제는 병상에 누워 있는 딸 때문이었다.

둘째 딸 향림(37)씨는 아직도 의식불명인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향림씨는 2년 전 출산을 위해 광주의 한 산부인과에 갔다가 주사를 잘못 맞는 바람에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보상금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동안 딸 간병을 해 온 어머니 김처자(58)씨는 병원에서만 살았다. 입원비 부담과 생활 불편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좀처럼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은 딸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이들 부부는 40년 된 집을 헐게 된 것이다. 새집의 벽지가 마르자 병원에 있는 딸을 데려왔다. 향림씨는 부모의 한가지 숙원이 해결된 사실을 모른 채 방 한 켠에 눈 감은 채 누워만 있다.


융자절차 몰라 혜택 못받아

문씨 부부는 얼마 전 준공검사를 마치고 은행과 목포시청을 찾았다. 외상으로 지은 집 건축비를 대출받기 위해서다.


정거배
그러나 세상 일은 문씨 부부가 생각한 것처럼 순진하고 단순한 것이 아니였다. 사전 신고 등 이행 절차 거치지 않아 주택개량자금 융자 자격이 없다는 답변을 들은 것이다.

문씨 부부가 국민주택기금으로 지원되는 대출혜택을 받을려면 공사 전에 먼저 행정당국에 신고를 해야 한다. 접수받은 행정기관은 금융기관에 추천절차를 거쳐 대출액이 결정된다.

자기 동네 시의회의원 이름조차 모를 정도로 딸 간병과 먹고 사는 일에만 매달려 온 문씨 부부는 이런 절차를 모른 채 집을 먼저 지은 것이다.

국민주택기금 대출을 받게 되면 연 이자 5.5%에 1년 거치 19년 상환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문씨 부부가 갚아야 할 건축비는 3000만원, 부인 김씨는 지난 2년 간 딸 병원비로 셋째, 넷째 딸들이 결혼자금으로 모아 둔 6000만원까지 다 썼다고 한다.

건축비를 갚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있다. 20평 남짓 되는 집과 터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길 뿐 이다. 이자도 비싸지만 상환기간이 3년에 불과해 문씨 부부는 걱정이 앞선다.

이제 나이도 들었지만 건강마져 좋지 않은 문씨는 전에 공사 일을 했다고 한다. 부인 김씨는 남의 집 가사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고 한다.

의식불명인 딸을 병원에서 데려오겠다는 생각으로 외상으로 집을 지었지만 이들 부부에게는 또 다른 근심이 생긴 것이다. 친정집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첫째 딸 미숙씨가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하소연하기도 했다.

문씨 부부는 이제 집으로 데려온 딸을 돌보는 일 뿐 만 아니라 건축비를 해결해야 하는 숙원을 안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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