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대도 아주 좋은 우산이었습니다. 겉에 것만 벗기면 크게 욕먹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심스럽습니다. 항상 남의 것이라는 생각에 말이에요.김규환
“하나, 둘, 셋! 출발~”
“야~”
큰 동네가 먼저 출발했다. 열 두어명씩 혹은 너덧 명씩 각자 마을로 나선다. 다섯 마을 아이들은 운동장이 논물 대놓은 듯 첨벙거리는데도 아랑곳 않고 집으로 향한다. 큰 고무신을 신은 아이는 돌부리에 미끄러져 신발이 벗겨진다. 어디선지 노끈을 구해와 동여맨 아이도 눈에 띈다.
“같이 가~”
“얼른 와 색꺄!”
필통과 빈 누런 양은 도시락에서 나는 “달그락 덜그럭” 소리가 요란하다.
정문을 빠져나왔다. 학교 앞 점방(店房)을 돌아 다섯 호밖에 없는 작은 마을을 거의 빠져 나오는데 순식간이었다. 그런데도 이미 물이 튀어 바짓가랑이는 물론이고 배꼽 위까지 흥건하다. 책보는 빵 가마니 봉지 속에 든 비닐을 구해와 쌓았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목덜미를 타고 빗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려 사타구니 쪽을 적셨다.
“야, 안되겠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자.”
병주의 제안에 다들 마지막 집 대문간 처마 밑에서 비를 잠시 피했다. 아이들 머리는 남녀 할 것 없이 꽁지머리가 되어 있다. 옷은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고 김이 모락모락 난다. 이 김마저 식으면 곧 추워질 것이다.
“누구 좋은 방법 없냐?”
“야, 이판에 뾰족한 수가 있겠냐?”
“내가 좋은 방법이 있지. 근데 해섭이 엄마한테 야단 맞을 것인디.”
“뭔데야?”
“쩌기 보이쟈? 쩌기 말야.”
“응, 근데?”
“밭 빼고 더 있냐 임마.”
“긍께 거기 토란대 하나 씩 꺾어서 쓰고 가면 되잖냐?”
“아따! 그거 좋은 생각이다. 해섭아, 말 안 할 거지?”
“응.”
“참말로 말 안 할거냐고?”
“진짜지?”
“알았어야~.”
여럿이서 나서는 통에 해섭이는 자기네 밭인 줄도 모르고 승낙을 했다.
“그럼 누가 가서 꺾어 올래?”
“야? 누가 가냐? ‘가위 바위 보’ 하자.”
“그래.”
여자아이들은 빠지고 남자 7명 중 2명을 뽑았다. 나도 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