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샐러드바에 김치가 등장했어"

김치는 미국에서도 인기 짱!

등록 2003.07.24 08:49수정 2003.07.2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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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치

김치 ⓒ 정동순

지난 봄 사스(SARS)가 중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중국계 이민자가 많은 캐나다도 환자들이 여럿 발생하여 이웃인 미국도 몹시 긴장하였다. 연일 텔레비전은 사스를 보도하고 관광객들은 아시아 쪽으로는 아예 발길을 끊었었다.

그 때 우리나라가 이웃나라와 달리 사스의 무풍지대로 남았던 일등 공신으로 김치가 꼽혔다. 마늘과 고추가 들어간 김치의 성분이 사스를 막았다는 연구결과에 대한 보도도 있었다. 이제 중국에서도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김치가 굉장한 인기몰이를 시작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요즘에는 미국에서도 김치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남편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H라는 컴퓨터 회사에 다닌다. 그런데 얼마 전, 회사에서 퇴근한 남편이 흥분된 목소리로 '여보'(나를 부를 때 꼭 여보라고 한다)하며 나를 불러 세운다. 남편은 굉장한 뉴스라도 있는 것처럼 말했다.

“여보, 회사 식당에 뭐가 새로 등장한지 알아?”
“뭐, 질 좋은 뉴욕 스테이크라도 나와요?”

식당이야기니 뭐 새로운 메뉴라도 등장했나 싶어 시큰둥하게 물었다.

“아니, 아니. 샐러드바에 김치가 등장했어.”
“김치가요? 먹어 봤어요?”
“응, 맛있어. 그런데 내 앞에 있는 사람도 김치를 맛있게 먹더라.”

나도 다소 놀랐다. 우리처럼 밥도 안 파는 구내식당에 김치가 등장했다니? 이 사람들은 도대체 뭐하고 김치를 먹나 궁금하기도 했다.


남편은 그 다음날도 구내식당에 들러서 김치를 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플라스틱 그릇에 김치를 조금 남겨왔다. 겉절이처럼 담은 김치를 먹어보니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이곳 사람들 입맛에 맞추느라 맛이 순했다. 그러나 배추 맛도 달고 내 입에도 맛있었다.

“내가 어제는 저 많은 김치를 과연 사람들이 다 먹을 수 있나 생각했거든, 근데 오늘 보니 조금밖에 남지 않았더라고.”
“원래, 김치맛 들인 사람들은 김치만 보면 침 흘리잖아요. 어디서 김치를 가져온대요?”
“식당에 일하는 한 분이 한국분인가 봐.”


김치가 인기있다는 남편의 추가 보고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면, 김치를 먹어본 경험을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 중에는 한국식당에서 자주 외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체로 너무 맵거나 짜지 않은 김치를 좋아하고 오이소박이, 새콤달콤한 무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젓가락질도 잘 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한국동포나 유학생들과 친하게 되어 대접을 받아본 경험이 있거나, 가족 중에 한국에 가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김치맛을 소문내고 그 주변사람들도 즐기게 되는 것 같다.

2000년도에 씨애틀에서 미국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쪽은 서부지역이라 그런지 QFC 같은 일반 식료품점에서도 병에 든 김치나 '신라면', '새우깡'을 볼 수가 있었다. 한국인들은 주로 한국 식품점을 이용하는데, 그곳의 김치는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들이 사 간다는 것이었다.

정육코너에는 갈비소스나 갈비양념을 한 고기를 팔기도 했다. 영문으로 ‘Galbi Sauce'라고 레벨이 붙어 있었다.

이런 것들을 볼 때마다, 한국음식이 많이 알려져 있구나 생각했었다. 김치나 갈비, 라면, 비빔밥 등 한국 음식은 문화상품으로서 뛰어난 경쟁력을 가졌다. 일단 맛들인 사람들은 두고두고 그것을 찾으니 말이다. 그러나 일본의 스시처럼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한국의 대표음식으로 만들려면 좀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인의 기호에 맞게 메뉴를 다양하게 개발하고, 포장과 처리과정도 위생적으로나 시각적으로 깔끔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 이국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은 싸구려 느낌을 주는 음식보다는 보기에도 깔끔하고 맛도 있는 음식을 선호한다.

식당에서는 개인접시의 사용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많은 외국인들이 국물 김치나 찌개를 여러 사람이 같이 떠먹는 것을 비위생적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이것은 공동체 생활이 중요했던 우리의 관습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또한 한국음식을 계획적으로 홍보하고 문제점은 개선하는 민간차원의 연구기관이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한국동포보다 현지인들이 더 많이 오는 한국 식당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그리고 미국 전역에 수많은 체인점을 거느린 한국 식당이 등장하는 날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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