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군·읍 가림리(佳林里) 은천(銀川)마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마을사람이야기 10

등록 2003.07.24 13:59수정 2003.07.2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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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 마을은 마이산 자락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마을 뒤로 마이산 봉우리가 보인다. 진안에서 근무할 때 은천 마을에 사는 학생들이 참 많았다. 나중에야 제법 큰 마을임을 알게 되었다.

푸름이 엄마도 은천에 있는 진안서초등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우리 부부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가르친 형제자매가 많아 더욱 인연이 깊은 마을이다.


진안서초등학교가 폐교된다는 말을 듣고 무척 아쉬웠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버스나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에 있는 학교까지 통학한다고 하니 더더욱 그랬다.

사람들은 말한다. 친구 몇몇 있는 학교보다는 친구가 많은 학교가 훨씬 경쟁력이 있지 않냐고. 그럴까? 평생에 친구가 몇이나 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진안서초등학교는 현재 창착 예술 스튜디오로 변신하였다.

은천 마을은 가림리에 속한다. 가림리는 본래 진안군 두미면 지역으로써 내가 마을을 갈라놓았으므로 가름내, 가림, 가림천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탄곡리, 은천리, 내동, 선인동, 사인동과 옥산리를 병합하여 가림리라 해서 진안면(읍)에 편입되었다. 은천마을은 가림리의 사옥(사인동, 옥산동), 선인동, 원가림(가름내), 탄곡(수실) 중 하나이다.

가림리(佳林里)는 아름다운 수풀이라는 뜻으로 한자화 되었지만 본래는 '가른내'이다. '가른내'란 물줄기가 나누어진다는 의미이다. 이곳에서 섬진강 수계와 금강 수계가 나누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은천 마을은 마을 ‘뒷동산’을 주산(主山)으로 삼고 있다. 마을 ‘뒷동산’은 마이산 자락에서 내려온 줄기이다. ‘투구봉’ 줄기가 백호(白虎)에 해당한다. 이곳을 ‘텃골’이라 부르는데 처음 마을이 형성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청룡(靑龍)은 ‘사자골’이 있는 줄기이다. 마을 앞산을 ‘안산(案山)’이라 부르는데 안산(案山)은 두미봉(斗尾峯 533m) 줄기에서 마을앞쪽으로 내려온 줄기이다.

두미봉은 모양이 말꼬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졌다. 안산(案山)줄기의 천안 전씨 묘가 와우혈(臥牛穴)에 해당한다고 한다.


마을 앞에 조그만 동산이 있는데 이를 ‘은봉’이라고 하는데 소의 구시(여물통)로 인식하고 있다. 소가 편안하게 있으려면 먹이가 풍부해야하지 않는가?

은천 마을은 약 200여년 전에 동천 최씨, 천안 전씨에 의하여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천안 전씨가 20호 정도로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각성바지이다. 전체 가구 수는 80호 정도 된다. 상당히 큰 규모이며 텃골, 윗뜸, 아랫뜸으로 나뉜다.

은천 마을은 본래 건천(乾川)이라 불렸다고 한다. 물이 없는 마른 천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의 은천(銀川)을 쓰기 전에는 숨을 은(隱)자를 사용하였다. 이는 시냇물이 스며들여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천(乾川)이나 은천(隱川)은 같은 의미이며 이후 마을 앞 냇가의 모래가(물이)은처럼 비친다고 하여 은천(銀川)이라 바꾸어 불렸다고 한다.

실제 은천 마을은 일제시대 병자년(1936년)에 축조된 가림리 저수지 덕분에 이렇게 농사를 지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물이 없어서 물을 대단히 귀중하게 여겼던 것이다.

20년 전에 학생들과 함께 찍은 은천돌거북 사진
20년 전에 학생들과 함께 찍은 은천돌거북 사진
은천 마을 당산제는 10여년 전에 마을 앞에 있던 거북이를 도난 당한 후 없어지게 되었다.

제는 음력 정월 보름날 마을 뒷산 사자골에 있다는 샘물과 마을 앞 돌거북과 당산나무에 지냈다. 당산제가 행하여지기 전 당산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풍물을 치면서 각 호마다 방문하여 쌀을 거출하고 소머리, 돼지머리, 떡, 팥죽 등 제물을 장만하여 연세가 높은 분으로 제관을 삼아 지냈다.

마을 뒷산에서 제를 지낸 후 마을 앞에서 거북제를 지냈다. 거북이는 현재 도로변의 줄사철나무가 있는 곳에서 천 건너편에 있었다고 한다. 거북은 돌탑 위에 자연석을 거북모습처럼 가공한 형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거벅거리’라 부른다. 거북이 조성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마을을 마주보는 서촌 써리봉이 화산(火山)이어서 기미년(1919년) 화재 때 마을 전체가 불타 없어지는 일이 생겼다.

이후 이 마을을 지나가던 대사가 화재를 막을 비방으로 거북을 만들라고 하여 경신년에 자연석을 다듬어 세웠다. 거북은 수신(水神)으로서 화재막이로써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방죽을 2개 만들고 나무로 용 형상을 만들어 묻기도 했다.

마을에 연못을 만드는 것은 방화수(防火水)로서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용은 오리나 거북과 같이 물의 속성을 지닌다. 이 모두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방책에서 나왔다. 아쉽게도 은천 마을 돌 거북은 도난 당했고 이후 거북제도 끊겼다.


마을 앞에 큰 숲이 형성되어 있다. 느티나무, 팽나무, 소나무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마을의 복이 흘러가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함이라고 한다. 숲이 없으면 마을이 허(墟)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숲은 마을의 수구(水口)막이로서 마을에서 빠져나가는 재산을 막아준다고 한다. 또한 바람을 막아주어 화재막이 역할도 한 듯 하다.

현재 마을 숲은 마을의 소공원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1998년 1월 9일 전라북도기념물 제95호로 지정된 3그루의 줄사철나무가 있다. 줄사철나무는 은천 마을 앞 길 건너 도로변에서 느티나무에 줄기를 뻗어 자라고 있다. 수령(樹齡)은 200년 정도이며, 인근의 마령면 동촌리에 있는 마이산 줄사철나무(천연기념물 380호)와 같은 종(種)이다.

줄사철나무는 노박덩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의 덩굴식물로 줄기에서 잔뿌리가 내려 나무나 바위를 기어오르며 자란다. 꽃은 5-6월에 연한 녹색으로 피고 열매는 10월에 연한 홍색으로 익는다.

숲에서 뜻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다. 이곳에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라 새겨진 석이 있다고 한다. 찾아가서 보니 비문은 땅에서 뽑힌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전체 길이는 1.5m 정도이고 가로 세로는 20cm정도로 정사각형의 비문이다. 뒷쪽을 살펴보니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 제86호 진안(鎭安)000 자생북한지대(自生北韓地帶)’란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명문 중 알아볼 수 없는 글자는 6.25 때 파손되어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확인해 본 결과 줄사철나무였다. 즉 조선총독부시절 지정된 천연기념물 제86호 ”진안의 줄사철나무 자생북한지대”였다.

돌아오는 길에 진안제일고 때 담임했던 전선영 집에 잠시 들렀다. 마침 전선영 부모님이 집에 계셨고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마을의 거북이, 장화홍련전에 모델이 전동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데 옥수수며 호박, 부추(솔), 호박잎 등을 싸주셨다. 정이 듬뿍 담긴 소중한 것이었다.

거북아 돌아오너라! 마을 주민들이 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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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북 전주고에서 한국사를 담당하는 교사입니다. 저는 대학때 부터 지금까지 민속과 풍수에 관심을 갖고 전북지역 마을 곳 곳을 답사하고 틈틈히 내용을 정히라여 97년에는<우리얼굴>이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90년대 초반에는 전북지역의문화지인 <전북 문화저널> 편집위원을 몇년간 활동한 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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