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D-100일..."다 같이 원하는 대학을"

[새벽을 여는 사람들 32] 고3 수험생 김나혜양

등록 2003.07.28 07:58수정 2014.08.1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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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2004 대학수학능력시험 D-100일. 독서실의 책상들엔 수험생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낙서들이 빼곡하다. 자신을 채찍질하는 글귀 부터 답답한 현실에 염증을 느끼는 하소연까지 대한민국 고3 수험생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고3수험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김나혜(19)양 역시 마음 속에 굳은 각오 하나를 다짐한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깨어 있으면 꿈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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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고3수험생으로 산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입시라는 막중한 부담감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나혜는 고3이라는 단어에 주저 없이 '불쌍하다'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불쌍해요. 놀러 못 다니고 책도 마음껏 못 읽고. 외국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때 책 읽고 뛰어 놀고 그러다 대학 가서 공부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학 가려고 공부하잖아요. 우리나라 청소년의 독서량이 부족하다고 말하는데 사실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런 나혜는 시험이 끝난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여행이라고 한다. 가방 하나만 있으면 세상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 것 같기 때문일까?

 

나혜에게 바꾸고 싶은 교육제도 세 가지를 꼽으라고 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지난 12년 동안 교육받으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많을 터.

 

"우선 체험할 수 있는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수업방식도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게끔 했으면 하고요. 아, 낮잠 자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점심시간에 자는 애들 보면 불쌍해요. 자고 난 애들은 일어나서 왜 깨우지 않았냐고 하는데 자는 애들을 보면 피곤해서 자는 거 뻔히 아니깐 깨울 수가 없거든요. 마지막으로 등교 시간을 9시로 늦춰줬으면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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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수줍은 미소가 입가를 떠나지 않던 나혜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기어이 눈물을 보인다. 작년 겨울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오자 나혜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것이다.

 

그저 어디가 좀 아프려니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병원에선 '암'이라고 했다. 이제 막 고3에 올라가는 나혜를 위해 손수 과외자리까지 다 알아본 엄마였다. 그해 12월. 나혜는 태어나서 가장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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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문과생인 나혜는 언어영역이 늘 골치다. 항상 들쑥날쑥한 언어영역 점수가 발목을 잡는다. 지난 7월에 본 마지막 모의고사 때도 다른 성적은 모두 올랐는데 언어영역이 또 문제였다.

 

이렇게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을 때 나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다.

 

언어영역이 원하는 대로 나와 준다면 나혜는 사범대학에 진학하고 싶단다. 나혜의 꿈인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다. 대체 좋은 선생님이란 어떤 선생님을 말하는 걸까?

 

"애들 하나 하나에도 신경을 써주는 자상한 선생님이요."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 오늘도 어김없이 오빠가 나혜를 기다리고 있다. 두 살터울인 오빠 진헌은 독서실부터 10분 남짓한 집까지 나혜를 혼자 가게 할 수 없나 보다.

 

"고맙죠. 모든 게. 저도 힘든데 나혜는 거기다 한창 힘든 시기잖아요. 고맙다는 말밖에 해줄 게 없어요. 다 끝나고 나면 수고했다고 말하고 술 한잔 해야죠. 제가 고3 때 엄마한테 받았던 것을 나혜는 받지 못하잖아요.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해줘야죠. 아빠가 두 명이라고 생각하게 할 거예요."

 

오빠는 힘든 내색 한 번 없는 나혜가 고맙다.

 

"지금 오빠가 집안일을 다하고 있거든요. 고3이 되고 나서 신경을 많이 써줘요. 사실 예전에는 많이 싸우고 했는데요. 요즘은 잘 챙겨주고 말상대도 해주고 그래요."

 

나혜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려 애쓰는 오빠가 마냥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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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수능이 다가옴과 동시에 학창시절의 마지막도 함께 다가온다. 남들처럼 '1, 2학년 때 공부 좀 해놓을 걸'이라는 후회도 해보지만 그보단 아쉬움이 더 크다.

 

"봄에 벚꽃 피고 가을에 단풍 들면 학교에서 사진 찍고 했거든요. 정말 예뻐요. 이제는 그런 거 못 하니까 아쉬워요. 고3 돼서는 시간이 없어서 못했어요."

 

나혜가 대학에 진학한 후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것은 동아리 활동이다. 학보사에서 활동해보고 싶기도 하고 레저동아리에 가입해 맘껏 운동도 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전국 수십만의 대입수험생에게 나혜가 말한다.

 

"이제 100일 남았으니깐 힘내서 다 같이 원하는 대학 가자!"

2003.07.28 07:58ⓒ 2014 OhmyNews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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