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민주당 대표실에서 신.구주류간 조정회의를 갖기 전 참석의원들이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장성원 의원, 이해찬 의원, 정대철 대표, 유용태 의원, 장영달 의원.오마이뉴스 이종호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잊혀지는 것일까.
지난해 대통령선거가 끝난 직후, 민주당 쇄신파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은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주도해온 낡은 정치 청산을 요구하는 국민의 승리이다. 지역분열 구도와 낡은 정치의 틀을 깨기 위해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제안한다." 그때 그들이 했던 다짐이었다.
그로부터 7개월여의 시간이 흐름 지금, 그 다짐이 지켜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낡은 정치의 틀을 깨는 것은 고사하고, 스스로가 낡은 정치의 틀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 지금 민주당의 모습이다.
참여정부의 집권당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최근 정대철 대표 문제를 둘러싼 모습을 보면 갈수록 태산이다.
민주당은 집권당 대표에 대한 검찰수사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아예 한걸음 더 나아가, 검찰총장의 국회출석을 제도화하겠다는 압박까지 가하고 있다.
이것 저것 돌려말하며 애꿎은 '386 음모론'까지 등장시켰지만, 정 대표측의 불만은 간단하다. 집권당 대표에 대한 검찰수사를 어째서 청와대가 바라만 보고 있느냐는 것이다. 쉽게 말해 청와대가 힘을 써서 검찰수사를 막아달라는 이야기이다.
도대체 이것이 검찰독립을 철석같이 약속했던 정부의 집권당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리인가.
지금 윤창열 게이트 수사는 민주당과 청와대와 검찰끼리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들끼리 협상해서 좋은게 좋은거라는 식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가 나서서 검찰수사를 막아달라?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이 "요즈음 검찰이 간 덩어리가 부었다"는 말을 했다고 하지만, 정작 '간 덩어리'가 부은 것은 검찰이 아니라 민주당인 것만 같다. 국민 두려운 줄을 너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당내 신당논의가 마무리될 때까지 검찰출두를 늦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민주당내에서도 정 대표가 신-구주류간의 타협을 이끌어내기를 기대하며 이같은 입장에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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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문제 때문에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검찰소환에 계속 불응한다? 민주당이 만들려는 신당이 도대체 어떤 신당이길래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궁금하다. 그래가지고 만들어지는 신당이 과연 새롭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정 대표가 중재에 나섰다는 신·구주류간 협상내용을 들여다보면 이같은 의심이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중재안은 핵심쟁점인 공천문제에 대해 당원과 일반유권자의 참여비율을 50대 50으로 하고, 일정기간 해당 선거구에 거주한 유권자에 한해 후보자 선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한다.
어떻게 이런 미시적인 문제가 신당의 핵심쟁점이 되고 있는가? 민주당내 신당논의의 차원과 수준을 그대로 고백하고 있다.
낡은 정치의 틀을 깨겠다고 요란하게 출발했던 민주당내 신당논의는 이제 고작 신·구주류간의 흥정게임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같은 '핵심쟁점'이 어떻게 타결되든간에, 그런 식의 신당으로 낡은 정치의 틀을 깨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공천에 일반 유권자의 참여가 보장된다고 과연 낡은 정치의 틀이 깨질 수 있을까? 지금의 지역구 현실에서 어차피 승부는 조직동원력에 크게 좌우되게 되어있다. 주민들의 큰 관심과 참여를 유발하는 일부 지역을 제외한다면, 각 지역에서 기득권을 가진 기존의 정치인들에게 정치신인들이 도전하는 것은 아직은 역부족이다.
지역의 토호처럼 군림하고 있는 상당수 현역의원들은 이미 주민경선에 대비한 조직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결국 '죽쒀서 개주는' 결과가 예견된다. 낡은 정치세력의 물갈이가 아니라, 경선을 통해 낡은 정치세력이 당당히 복권되는 정반대의 사태가 목격될지 모른다.
왜 이런 상황이 빚어지는 것일까. 초심(初心)을 잃어서이다. 지역분열 구도와 낡은 정치의 틀을 깨겠다던 당초의 생각을 망각하고, 이제 내년 총선에서 '안전한 당선'을 보장할 신당만을 찾아 헤맨 결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같은 신당이 결코 그들의 '안전한 당선'을 보장해주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자신의 기득권은 아무 것도 버리지 않고, 그저 안전하게 만들겠다는 신당. 그같은 신당이 과연 국민에게 어떤 감동을 던져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진 것을 하나도 버리려하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도대체 국민들이 무엇을 주고 싶겠는가. 반년이 넘는 신당논의의 결과가 고작 사람 몇명 영입하고 당간판이나 바꿔다는 '도로 민주당'이라면 실망을 금할 수가 없다.
이래저래 지금 집권 민주당의 시계는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분출되었던 국민들의 정치개혁 열망은 결국 이렇게 배반당하고 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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