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밥먹구 가 !

고촌 아줌마 오한숙희의 자연주의 여성학

등록 2003.07.28 19:22수정 2003.07.2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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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오한숙희의 <아줌마 밥먹구 가>(여성신문사 2002)는 '고촌 아줌마' 오한숙희의 이야기다. 도시를 벗어나고픈 막연한 바람에서 시작한 전원생활이 "늘 보면서 그냥 그런거지 하고 넘겨버리는 시시한 일상"이 되기까지의 7년 여 시간들이 만들어낸 단편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는 이 책에 실린 모든 글들은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말한다.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에 들어와 살면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자연의 것들이 주는 평범한 가운데 깊은 기쁨과 평화를 맛보는 '내'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근대교육을 통해 내 안에 들어온 인간중심주의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영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오한숙희의 자연주의 여성학'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자연과 여성을 중심 소재로 한다. 그는 자연 속에서 여성의 삶을 보고 여성의 미덕을 발견한다.

새끼 고양이를 지키기 위해 등을 곧추세우는 고양이 루기를 보면서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평화를 사랑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고, 냄새나는 두엄더미가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푸성귀를 만드는 것을 보며 자식을 키우기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여성들을 떠올린다. 잎사귀부터 씨, 껍질까지 어디 하나 버릴 것없는 호박에서도 여성들의 삶이 연상된다.

저자는 자연을 통해 여성운동의 필요성과 방향을 깨닫기도 한다. 알을 품은 어미닭에서 우리의 출산도 주체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출산이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하는 생명의 퍼포먼스로서 여성들에게 생명 창조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꽁꽁 언 마당을 녹이면서는 얼음이 아닌 땅을 녹여야 한다는 사실도 발견한다. 불을 쪼인다고 언 마당이 녹지않는 것처럼 개인의 능력과 운만으로는 여성을 차별하는 땅 전체를 녹일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여성운동은 여성들 스스로 자신의 몸에 대해 바른 지식을 가지고 훈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땅 전체를 녹이기 위해 여성운동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고촌면 생활을 하면서 겪은 아름다운 공동체의 경험도 담겨있다. 자신이 딴 은행과 알밤들을 이 동네에서 난 것이니 나누어먹어야 한다며 두고가는 할머니들, 맛있는 음식을 하면 꼭 나누어주는 이웃 사람들, 외상에 덤은 물론이고 여차하면 집까지 바래다주기도 하는 장천슈퍼 주인장 아주머니, 돈을 맡겨두면 알아서 준비물을 챙겨주는 품앗이 문방구, 알림장이며 연필 등을 챙겨오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나누어쓰도록 하는 담임선생님 등등이 훈훈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저자의 눈을 밝히고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 시간들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성 위주의 세상에서 억눌려 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갖기 힘든 여성들에게 여성적 가치와 여성적 삶의 의미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또 그것이 이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과 동네 개들, 나무와 논과 밭들과 그렇게 나는 시골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울려 사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네와 이웃들과 주변의 풍광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안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한숙희의 <아줌마 밥먹구 가>는 솔직담백하고 명랑유쾌하다. 그는 자칫하면 어렵게 느껴지기 쉬운 '에코 페미니즘'을 솔직담백한 경험으로, 명랑유쾌한 수다로 풀어낸다.

그러면서도 자연과 여성,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적지않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올망졸망 담겨있는 경험과 수다들은 때로는 논리적으로 빈약하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 역시 이 책이 남겨주는 또 하나의 물음이 될 것이다.

아줌마 밥 먹구 가 - 오한숙희의 자연주의 여성학

오한숙희 지음,
여성신문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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