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자체가 아름답다. 아무리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저마다 주어진 몫을 다하고 있는 과정이어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말은 현재의 삶을 예찬한 속담인지도 모른다. 동시에 살아있는 사람으로서는 거의 가볼 수 없는 저승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죽음은 절대적으로 슬픈 것 같기도 하다.
죽음이 절대적으로 슬프다는 사실에 물음표를 달고 있는 한 권의 책이 있다. 엘렌 라콘테가 지은 <헬렌 니어링, 또 다른 삶의 시작>이다.
본서에서 저자는 아름다운 죽음이란 아름다운 삶의 결과임을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아름다운 삶을 '좋은 삶'으로 아름다운 죽음을 '좋은 죽음'으로 바꿔 표현한 것 뿐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 같은데 독자로서 미적미적한 무엇이 마음에 남는다. 아마도 죽음이 아직 체험하지 못한 영역이어서일 것이다.
저자 엘렌 라콘테는 저명한 전기작가이다. 주인공 헬렌 니어링의 삶을 가까이서 배우려는 학생이며 헬렌의 친구이기도 한 셈이다. 헬렌은 남편 스코트의 영향을 받아 그와 마찬가지로 채식주의자이고 동물보호가이며 환경론자이자 반전운동가이다. 저자는 이런 헬렌의 영향을 무척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서문에서 삶과 죽음에 관한 유명인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보낸 삶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을 원용한다. 세상사람 모두에게 권하는 삶 10가지를 제시하기도 한다. 모든 이에게 유익할 것 같아서 소개한다.
△받은 것보다 더 돌려줄 것 △가능한 한 많은 피조물에게 많은 선을 베풀고 적은 해를 끼칠 것 △살면서 다른 삶을 도울 것 △열심히 먹고 열심히 살 것. 섬유질이 있는 식품을 먹고 줏대 있는 삶을 살 것 △각자 능력대로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게 할 것 △자신이 믿는 대로 행동할 것 △자신이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친절할 것 △이 세상에서 삶을 마치고 떠날 때 자신이 오기 전보다 지구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도록 사는 습관을 들일 것 △단순화하고 단순화하고 단순화할 것 △신이 만든 모든 것을 사랑할 것. 사랑은 원천이자 목표이며 성취방법이다 등이다.
급히 서두르는 것이 생활에 배어 있는 사람에게 경종을 울리는 글이라 생각한다. 몇번을 읽어봐도 현대인의 생활과는 정반대인 것 같다. 죽 읽어가다가 눈이 갑자기 정지한 곳이다. 책상 앞이나 잘 보이는 곳에 크게 적어 걸어두고 나들면서 읽고 싶다.
무엇보다도 본서의 핵심장은 '뒤처리 그리고 유산'이란 마지막 장일 것이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이야기가 여러군데 나온다.
주인공 헬렌 니어링은 91세(1995년)의 나이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직접 운전하고 영화보러가다가 급커브길에서 미끄러져 숲쪽을 들이 받아 목숨을 잃는다.
죽어있는 모습이 마치 부처님의 열반상(오른쪽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했다. 나무가 많은 숲이었지만 나무 한 그루 다치게 하지 않는다. 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이 없어 다른 차량을 위험에 빠뜨린 것도 아니다. 차에 혼자 탔으니 주위 사람을 다치게 하지도 않는다. 자살로 유추하려고 해도 헬렌의 삶 어느 곳에도 타당한 이유가 없다. 교통사고란 사실만 좀 이상할 뿐 아름다운 죽음 곧 '좋은 죽음'이었다.
외부에서 죽은 시신을 헬렌 자신의 집으로 들여오는 것도 기존의 사고방식을 벗어난다. 염을 하는 과정에서도 시신에 무엇을 넣거나 방부제를 뿌리는 일 등이 일체 없다. 깨끗이 씻긴 시신을 여러 사람이 교대로 지켰을 뿐이다. 깜짝 놀랄만한 일은 여기서도 멈추지 않는다.
시간이 되어 화장장을 찾는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헬렌과 남편 스코트는 1968년 곧 27년 전에 각기 78달러씩을 주고 화장장 이용권을 사놓았던 것이다. 장례에 들어간 총비용은 보험회사가 지불한 것을 빼면 500달러가 채 안 된다.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변하는 문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생존경쟁에 허덕이며 지쳐 있는 이에게 양질의 영양제가 될 것이다. 일독을 권할 만하다.
헬렌 니어링, 또 다른 삶의 시작 - 헬렌 니어링의 깊은 영성과 아름다운 노년
엘렌 라콘테 지음, 황의방 옮김,
두레,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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