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무림천자성으로
"하하! 수고가 많소."
"누구냣? 누군데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보아하니 여길 구경 온 모양인데 경을 치기 전에 어서 썩 물럿거라."
운남성(雲南省) 대리에서 나는 대리석으로 축조된 무림천자성의 정문은 웅장하기로만 따지면 천하에 견줄 곳이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단단하기로 천하제일인 자단목(紫檀木)으로 만들어진 성문은 높이가 무려 십여 장에 달했고, 폭은 무려 오 장에 달했다.
문짝이 두 개가 달려 있으니 성문의 폭만 이십여 장에 달하는 셈이다. 이 문은 청룡문(靑龍門)이라 부르는데 대대적인 출병이 있거나 성주가 공식적인 출타를 할 때만 열리는 문이고, 보통은 곁에 있는 작은 문인 의천문(義天門)을 사용한다.
작은 문이라고는 하지만 정문에 비하여 작을 뿐 의천문은 결코 작은 크기가 아니다. 한 쪽 문짝의 폭이 무려 이 장 정도 되니 활짝 열어제치면 사 장이 조금 넘는 크기이다.
이 문의 입구에는 여덟 명의 수문위사가 배치되어 있는데 말만 수문위사이지 실제는 정의수호대원들이었다. 이들은 웬만한 자들은 감히 범접조차 못할 정도로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방금 전 이회옥은 휘적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섰다. 그런 그의 입가에는 비장함이 어려있었다. 선무곡을 나선지 한 달만에 드디어 원수들이 있는 곳에 당도하였기에 긴장된 것이다.
이를 본 수문위사들은 무림천자성을 구경하기 위하여 온 촌뜨기이거나 고리타분한 서생이라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직하면서도 위엄 넘치는 음성으로 수하를 한 것이다.
"하하! 본인은 선무분타 순찰인 이회옥이오."
"선무분타 순찰이시라고? 좋소이다. 그럼 신패를 보이시오."
무림천자성 사람들은 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색깔의 의복을 걸치는데 한 가지 공통점은 가슴에 구름을 뚫고 솟아 오른 검이 수놓아져 있다는 것이다.
만일 무림천자성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복을 걸치고 있다가 신분이 발각되면 엄하게 다스렸다. 따라서 웬만큼 깡다구가 있지 않으면 이런 의복을 걸칠 생각조차 못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 구름을 뚫고 솟아 오른 검이 수놓아지지 않은 의복을 걸치는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신패로서 신분을 확인하게 되어 있다. 현재 이회옥은 무림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허름한 마의(麻衣)를 걸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신패를 요구한 것이다.
한편 이회옥은 신패라는 소리에 약간 당황하고 있었다.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조차 없기 때문이다. 철마당 조련사들은 굳이 성문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안에 모든 것이 완비(完備)되어 있기 때문이다.
설사 나간다 하더라도 혼자 나가는 법이 없다. 그때에는 인솔자만 신패를 보이면 된다. 그러니 말단 조련사인 이회옥은 신패를 보일 필요가 없어 그것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회옥이 신패에 대하여 모르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사실 그의 신분을 증명하는 신패는 이미 만들어져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본적조차 없는 이유는 무림지옥갱의 갱주였던 비천혈영 조곽이 그의 부친에게 보낸 한 통의 서찰 때문이다.
< 아버님 전상서.
기체후 일양만강하시온지요?
일기가 순탄치 못하여… < 중 략 >
전에 말씀드려 사면하셨던 이회옥은 말 다루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아직 그의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없으니 중용하시되 신중을 기해 주시기를 감히 부탁드립니다.
불효자 조곽 올림 >
막내아들로부터 보내온 밀지를 받은 무영혈편은 철마당주인 뇌흔으로 하여금 이회옥의 신패를 만들기는 하되 별도의 명이 있기까지 보관하라 명했다. 그래서 구경조차 못한 것이다.
"신패? 그게 무엇이오?"
"이놈! 신패도 모르면서 감히 순찰 행세를 해? 이놈이 우리를 핫바지 저고리로 알았나? 이놈, 어디에서 감히…?"
촤르르르릉―!
"어엇! 왜 이러시오?"
화가 났다는 듯 장검을 뽑아드는 정의수호대원을 본 이회옥은 한 걸음 물러서며 손을 내저었다.
"흥! 네놈이 감히 신분을 위장하고 성내로 잠입하려 해? 이놈! 오늘 네놈의 뼈마디를 모조리 분질러 주마."
"왜, 왜들 이러시오? 소생은 분명 선무분타의 순찰이오."
"호오! 그러셔…? 순찰원 소속이라면 우리 정도는 쉽게 제압할 무공의 소유자겠군. 안 그래?"
"크크! 맞아. 순찰원 소속은 고수 아닌 사람이 없지. 이보게, 자네 혼자서는 안 될 듯 싶으니 우리가 도와줌세."
챠라라라랑―! 쉬이이익―! 츄라라라랏―!
"아앗! 왜, 왜들 이러시오?"
과연 정의수호대원들이었다.
이회옥이 잠시 허둥대는 사이에 전후좌우를 에워싼 네 명의 정의수호대원들에게선 살벌한 예기(銳氣)가 뿜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머지 넷은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사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다. 간혹 누군가가 소란을 피우는 사이에 몰래 잠입하려 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의천문 바로 뒤에는 또 다른 정의수호대원 열여섯이 상시 대기중이다. 문 앞의 여덟 명으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발생될 경우 즉각적으로 지원하기 위함이다.
이들을 포함하여 총 이십사 명에 달하는 정의수호대원이라면 강호의 웬만한 문파가 전력으로 달려들어도 어느 정도는 감당할 능력이 된다. 만일 이들 전부로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문 안쪽에 있는 자들은 출동 직전 경종(警鐘)을 울리거나 향전(響箭)을 쏘아 올리게 되어 있다. 지금껏 단 한번도 없던 상황이지만 이런 상황이 되면 외원 전체는 즉각 비상이 걸리게 된다.
그러면 모두 병장기를 챙겨들고 즉각 경계태세에 접어들게 되고, 이때는 누구든 낯선 자를 발견하면 먼저 죽이고 나중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선 해결, 후 보고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소림사와 무당파는 물론 화산파와 아미파까지 전 제자를 이끌고 와 공격한다 하더라도 능히 격퇴할 정도가 된다.
어쨌거나 이회옥은 자신을 둘러싼 네 명의 정의수호대원들을 보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을 공격하면 즉각 적으로 간주될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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