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96

두 권의 악인록(惡人錄) (7)

등록 2003.07.30 14:35수정 2003.07.3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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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음…!"

이회옥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일흔서생은 구태(舊態)와 악습(惡習)에 시달리는 현실을 혁파하겠다고 하였다. 하여 정의감에 불타는 선무곡 청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껏 썩어빠진 장로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낯가죽 두꺼운 짓만 하는 것을 보던 그들에게 있어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예상을 뒤엎고 곡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곡주에 취임한 직후 그가 내놓은 일련의 개혁계획에 청년들이 얼마나 환호하였던가!

청년들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에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기에 전에는 무관심하던 곡의 대소사를 주시하기 시작하였다. 정말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만 같은 시절이었다.

일흔서생은 젊고 참신한 호법들을 임명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낡고 불필요한 제도와 악습들을 쾌도난마처럼 고쳐나가게 하였다. 가장 먼저 파괴된 것은 연공서열이었다. 이것을 그대로 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자 오랜 세월동안 곡도들 위에 군림하던 수구 세력들은 비명을 지르며 발악하였다. 모든 것을 잃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뽑은 칼이었다. 곡주가 임명한 신임 호법들은 계획대로 실행에 옮겼다.


이에 즉각적으로 선무곡 삼의인 방조선과 금동아, 그리고 이중앙이 입에 거품을 물었다. 금대준과 조잡재, 유구닐, 나대로는 아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지랄발광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청죽수사 진영에 있던 장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지랄의 선두에는 대가리 속에 든 것이라고는 똥밖에 없는 태장랑이었다. 그는 무조건 반대하는 것만이 자신들이 살길이라는 듯 아가리를 열기만 하면 더러운 악담을 퍼부었다.

그러나 신임 호법들은 이를 전혀 개의치 않고 착착 개혁을 진행시켰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이회옥은 워낙 오래 고여 있었기에 완전히 부패해버린 선무곡이 새롭게 태어날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생각하고 마치 제 일처럼 흐뭇해했었다.

그러는 한편 분타지위 협정서도 개정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일흔서생의 의지가 확고하다 느껴진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무림천자성의 월빙보 침공에 찬성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제자들을 파견했다는 소리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곡주 선출 과정에서 가장 강력하게 대립하였던 청죽수사 이법이나 취할 법한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림천자성 총단까지 다녀온 일흔서생은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당하게 매사에 임할 줄 알았건만 악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철룡화존 구부시를 만나자 예전의 곡주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음은 물론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저자세를 취했다고 한다.

그 먼길을 가서 겨우 차 한잔 마실 시간 동안밖에 접견을 하지 못했다고 하자 선무곡 청년들은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흔서생의 올곧음과 당당함에 매료되어 모든 것을 떠나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는데 마치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배신감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리를 들은 이회옥 역시 침음성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역시 마음 속으로 일흔서생을 응원했던 것이다.

많은 의견이 있었지만 홍여진을 비롯한 제세활빈단원들은 아직 일흔서생의 변절(變節) 여부를 논하기에는 이른 상황이기에 두고 보는 중이라고 하였다.

한편, 구해달라고 부탁하였던 조관걸은 행방이 묘연해져 끝내 구해낼 수 없었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연희마저 정의수호대원들에게 생포되어 어디론가 압송되었는데 행방이 묘연하다 하였다. 부친을 구해내겠다고 무작정 선무분타의 담을 넘다가 잡혔다는 것이다.


이날 이후 이회옥은 홍여진으로부터 그간의 정황을 소상하게 보고 받았다. 이후 단주로서 처음 내린 명은 악인록 권이에 기록된 선무곡 인물들에 대한 전면 재조사였다.

곡의 발전을 위해 악인을 제거하는데는 동의하지만 혹시라도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일단 모든 조사가 끝나면 대대적인 소탕을 하기로 하였다. 그 동안 이회옥은 무림천자성으로 가기로 하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무림천자성의 죄업은 이미 확인된 것이기에 악인록 권일에 기록된 자들을 척살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철천지원수인 철마당주와 철검당주, 그리고 철기린이 가장 먼저 척살될 것이다.

선무곡을 나서는 이회옥은 이마에 새겨진 삼천이십칠이라는 글자를 감추기 위하여 영웅건을 질끈 동여매고 있었다.

평범한 복장을 하였지만 그의 얼굴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무림지옥갱에서 피거형(皮居刑)을 견디다 못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비접나한 손해구의 독문 수법인 여의안면변형술(如意顔面變形術)로 약간은 못 생긴 청년으로 얼굴을 바꾼 것이다.

그를 배웅하는 일타홍 홍여진은 마치 부군을 멀리 떠나보내는 현숙한 부인처럼 옷고름으로 연신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제세활빈단의 암호랑이가 처음으로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이회옥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흔들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불과 며칠이었지만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지내면서 정이 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한 것이다.

강호를 일대 파란에 잠겨들게 할 잠룡(潛龍)의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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