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의 조선을 만나러 가는 길

미국인 퍼시벌 로웰의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

등록 2003.07.31 15:57수정 2003.08.1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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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스24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서울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지난 날 청계천의 모습을 복원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한창인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당시 서울의 모습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 쉽게 잊고 지내는 우리의 근대를 되찾기 위해 한번쯤 그 당시를 회고한 책을 보는 것도 역사 바로알기의 한 방법이다.

천문학자인 미국의 퍼시벌 로웰이 쓴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은 19세기 초엽 일본과 맺은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서서히 개항하기 시작한 조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작가 퍼시벨 로웰은 한미수호조약이 성립되면서 미국에 처음으로 파견되는 조선의 수교사절단을 안내하는 임무를 맡게 되면서 고종 황제의 초청을 받아 우리나라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배를 타고 들어선 제물포에서부터 한양까지, 이방인에게는 내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가마를 타고서 가는 동안, 그는 그의 주위에 몰려든 이방인을 신기해하는 사람들과 극동의 ‘척화국’이었던 조선이 무척이나 닮아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삼각산, 북악으로 이어지는 병풍처럼 둘러싼 왕궁의 지세에 대해 감탄하며 그동안 여러 나라와 왕래가 없어 신비하기까지 한 조선의 경제, 정치, 복식문화, 지리에 관한 문화 전반을 일본과 중국과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오랜 유교문화로 인해 내외가 분명하고 남녀간의 성역할이 염연히 구분되어 있는 조선 풍습을 가리켜 ‘여성의 지위 부재’라고 소개하는 것이나, 실내에 들어서서 신발은 벗되 '갓‘, ’망건‘등은 벗지 않는 예의를 갖춘 ’모자의 나라‘라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조선에서 인간은 댕기 달린 동물로 태어난다. 남자건 여자건 혼인 전에는 대부분 길게 땋은 머리를 댕기로 묶는다. 소년들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면 여지없이 소녀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어쨌든 조선의 소년들은 땋은 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빠르면 일곱 살에서 대개는 열네 살이 되기 전에 이들은 처음으로 모자를 쓴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인의 모든 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 <본문 중에서>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고종 황제를 알현하는 모습을 그린 부분이다. 서른 살 가량의 나이에 조선인의 평균키에도 못 미치는 고종황제를 직접 대하면서 그가 느낀 것은 대원군의 섭정으로 인해 겪게 된 심리적 고뇌에 가득 찬 주군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인자하기까지 한 자애로운 눈길을 가진 사내였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오랜 역사 서술에 있어서 한없이 심약한 모습으로 그려졌던 고종 황제의 모습은 사실 간접적으로 느끼는 일종의 선입견에 머문다.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관에서 남의 나라의 눈치를 보아가며 숨죽여 지내야만 했던 한 국가의 군주, 왕비를 죽인 나라에 대해 한 마디도 내지르지 못하는 모습들 모두 그를 그리고 있는 이미지의 한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가 전하는 극동의 작은 나라 조선 사람들은 한결같이 순진하고 느긋한 사람들이다.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고 해가 거듭해서 수백 년 떴다 졌다를 반복하는 동안 먼 옛날의 전설과 신화를 그대로 이어받아 지켜 나갔던 자주적인 민족이었음을 그는 고요하게 느끼고 돌아갔다.

비록 그것이 순결한 나라에 불어왔던 개방의 물결 위에서 이루어졌다 하여도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을 펴낸 한 이방인의 눈에는 100여년 전, 우리가 잊고 있었던 미덕이 아직도 ‘날 것’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다.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

퍼시벌 로웰 지음, 조경철 옮김,
예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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