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일거리도 많은데... 자살, 안타까워요"

[새벽을 여는 사람들 33] 신문 배달 정성희씨

등록 2003.08.02 10:08수정 2003.08.0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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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서울 목3동 일대에 신문을 배달하는 정성희(41)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유별난 '짠순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운동으로 시작한 신문 배달이 벌써 5년이 되어 50부로 시작한 초기와 달리 지금은 300부 가량의 신문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돈 쓰는 거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요? 처음엔 저도 돈 쓰는 거 좋아하는 푼수였죠(웃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한 푼씩 어렵게 모아 저축한 돈을 탔을 때 그 감사함을 알고 난 후부터는 아껴 쓰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 후 그녀는 아기를 돌봐주는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목걸이 만드는 일, 인구 조사, 전화 설문 조사 등을 하면서 단 한 순간도 집에서 쉬어 본 적이 없습니다. 정씨는 지금도 신문 배달을 마친 후 사무실에 출근해 여느 사람과 똑같이 낮 근무를 합니다.

김진석
재력 없이 믿음과 사랑으로 만난 그녀와 남편은 무일푼으로 시작해 이제는 어엿한 집도 있고 건강하게 성장한 남매도 있습니다. 그 흔한 파마 혹은 염색 한 번 해 본적 없다는 정씨는 신문배달 후 8Kg이 감량돼 다이어트도 되고 건강에도 좋다며 연신 싱글벙글입니다.

정씨는 신문 배달을 하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울 만큼 어려운 형편도 아니고, 반면 큰 부자를 꿈꾸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줘도 부족한 게 부모 마음인지라 그녀는 자녀들에게 책 한 권이라도 더 사주고 싶다며 '운동' 이라는 명목 아래 감춰진 '진심' 을 밝힙니다.

"부모로서 아이들이 자랄 때 부족하지 않게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 주고 싶어요. 저만 해도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했고 배우고 싶은 걸 말하지 못해 혼자 속에 담아두었죠. 제가 그랬기 때문에 우리 애들만큼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아요."


두 남매도 엄마를 닮았는지 요즘 애들 같지 않게 경제 관념이 뚜렷하다며 정씨는 자신의 맘을 알아주는 아이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합니다.

정씨가 신문 배달을 하며 가장 놀랐던 건 새벽에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정씨는 그녀 외에도 24시간 하는 식당, 경비 아저씨, 녹즙과 우유 배달 등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과 만날 때면 덩달아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저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세상엔 남모르는 곳에서 정말로 열심히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조금만 남보다 부지런하면 새벽에 할 일은 얼마든지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빚이나 카드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까워요. 다른 생각할 틈 없이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르겠어요. 남보다 하루를 더 일찍 시작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김진석
반면 새벽 풍경 가운데 정씨를 가장 마음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있습니다. 찾아오지 않는 자식이 호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한 노인들이 파지를 한 장이라도 더 주워 팔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이 정씨를 서글프게 합니다.

"정부가 철저히 조사를 해 홀로 사시는 노인들에게 제대로 된 복지 정책을 폈으면 해요. 요즘엔 경제가 안 좋은지 만나는 할머니들마다 파지 값이 너무 떨어졌다고 한숨만 지으세요. 매일 웃으며 인사를 하지만 그래도 가슴 한 쪽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어요."

정씨는 자녀들을 다 키우고 나면 노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게 남은 여생의 소망이자 꿈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적잖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할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합니다.

"지금 건강히 땀 흘리며 일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껴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일이 필요해요. 아이들이 크면 대화 할 시간도 줄어들고 자연스레 가족에게도 소외되기 마련이죠.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남에게 베풀 줄 알아야 하는데 자식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잖아요. 오히려 젊은 친구들보다도 어르신들이 일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훨씬 더 강해요. 정부는 이런 노인 복지 문제에 좀더 신경을 썼으면 해요."

김진석
신문을 돌린 지난 5년간 그녀는 신문이 쉬는 날을 제외하고 딱 사흘만을 쉬었습니다. 아침마다 자신의 신문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책임감이 느껴져 쉽게 빠질 수가 없다고 하네요. 금년에도 정씨는 신문이 쉬는 토요일 하루만을 이용해 짧은 여름 휴가를 다녀올 예정입니다.

정씨가 가장 민감하게 보는 뉴스는 '날씨' 입니다. 특히 겨울에 눈이 쌓여 길이 미끄럽거나 여름 장마에 폭우가 쏟아질 때면 아무리 강한 어머니라지만 그만 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노라 솔직히 고백합니다.

"행여 내가 빠지면 하루의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애가 탈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해요. 게다가 여름엔 일찍 일어나 눈이 빠지도록 신문을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이 많기에 더 빨리 신문을 넣어줘야 해요.

저도 사람인데 어찌 그만 두고 싶은 순간이 없었겠어요? 처음엔 새벽 세 시에 일어나는 것만 해도 힘들었죠. 근데 힘든 건 잠깐이에요.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힘들지만 쉽다고 생각하면 또 쉬운 게 인생살이인 것 같아요. 힘든 순간이 지나면 반드시 좋은 때가 온다고 믿어요."

김진석
날씨 외에도 그녀를 지치게 했던 것 중 하나는 신문 배달하는 일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입니다. 신문을 넣지 말라며 욕설을 퍼붓는 사람, '그깟 신문' 이라며 남의 신문을 태연하게 훔쳐 보는 사람,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이라며 내려보는 사람 등 신문 배달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만만치 않음을 전합니다. 때문에 정씨는 이번 취재를 앞두고 적잖은 고민을 했던 게 사실입니다.

"'새벽에 신문이나 돌리는 사람이라면 오죽했으면 돌리나?',' 얼마나 못 배우고 가난하기에 새벽에 신문을 돌릴까?'라는 사람들의 편견이 있어요. 하지만 새벽에 일하시는 분들은 정말 모두가 다 성실히 사는 분들이에요. 신문 배달만 하는 게 아닌 따로 일을 가지면서 남보다 배로 열심히 살기 위해 겸업을 하는 게 대부분이죠.

처음엔 저도 망설였는데 뭐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내가 열심히 부지런히 살고 싶어 하는 일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들이 성실히 사는 엄마 모습이 좋다며 뒤에서 밀어주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 취재에 응했어요."

김진석
정씨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신문 배달 후 땀을 씻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침을 먹는 순간입니다.

"시원하게 샤워하고 먹는 아침밥의 그 맛은 아무도 모를 걸요. 요즘은 남편만 벌어서는 살기 어려운 시대예요. 부인도 남편에게만 의지하지 말고 똑같이 벌어야된다고 생각해요. 땅 투기나 복권, 주식 등 허황된 소망을 갖기보다는 직접 땀흘리며 일했으면 해요. 무엇보다도 자신이 피땀 흘려 번 돈이 최고 진실한 돈이자 가장 행복한 돈이죠."

사회면과 서민들 얘기를 주로 챙겨본다는 정씨는 굳이 경제면을 보지 않아도 새벽에 일하다 보면 자연스레 경제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신문에 난 경제 기사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차라리 신문을 읽는 것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말 한마디를 나누는 게 더 빨리 피부에 와 닿죠. 근데 정말 경제가 너무 안 좋다는 걸 요즘 들어 많이 느껴요. 신문 구독률도 현저히 줄어들고 신문사마다 경품 경쟁도 더 치열해지는 것 같아요."

김진석
각 신문사의 경품 경쟁이 치열해 지자 그 점을 악용하는 구독자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돈을 안내고 볼 수 있는 기간을 통해 여러 신문들이 주는 경품을 챙겨 잠깐 보고는 바로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경품으로 인해 괜히 불필요한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늘기도 했어요. 독자 입장으로선 십만 원이 넘는 자전거나 가전 제품을 준다는데 그걸 마다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다 받는 혜택을 자기만 안 받으면 마치 바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마 신문사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다른 신문사가 그렇게 경품을 배포하는데 자기만 가만히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죠.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 모두가 문제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게 현실인 것 같아요."

종이 신문은 물론 인터넷 신문도 자주 챙겨 보는 정씨는 언론의 문제점으로 '오보의 남발' 을 지적합니다. 객관적인 '사실' 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의 기본적인 명제가 동시에 가장 어려운 과제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사실이 아닌 허위 기사가 아직까지도 너무 많은 것 같아 아쉬워요. 특히 스포츠 신문은 정도가 너무 심해 아이들에게 보지 말라고 할 정도죠. 분명 연예인도 사람인데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 줬으면 좋겠어요. 사생활 침해 등 왜곡된 기사들을 볼 때면 차라리 안 보는 게 낫다 싶을 때가 있어요."

김진석
정씨는 쉼 없이 말을 바꾸는 국가 정책들을 신문에서 볼 때면 불안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때문에 그녀는 더 정직하고 성실히 살려고 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씨는 자신이 사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두 남매에게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이 가는 정책'을 나라에 조심스레 당부하는 정씨는 '성실한 엄마'가 되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달리고 또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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