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의 구국혼이 깃든 산신당 중악단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11)-계룡산 신원사

등록 2003.08.04 08:54수정 2003.08.1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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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다. <날이 어두울지라도 닭(鷄)은 반드시 울고야 말 것이요, 구름이 가린다 할 지라도 용(龍)은 하늘로 올라 갈 것이다. 바다는 태평양이 사해(四海)의 중심이요, 산은 계룡산이 모든 산의 중심이 될 것이다.> 이 말은 풍수지리를 연구했거나 정감록에 심취한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말이라고 한다.

계룡산 주변엔 명산으로 알려진 이름에 걸맞게 많은 절들이 있다. 신(神)들의 꽃밭 혹은 종교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신흥종파의 집결지이며 부지기수의 굿당이 있다. 그리고 사방으로 절이 있다. 동쪽의 동학사와 서쪽의 갑사 그리고 북쪽에 구룡사가 있었으며 남쪽에는 바로 신원사가 있다.


a 신원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곡을 건너야 한다. 흰색의 물줄기가 속세의 모든 집착을 버리라고 말하는 듯 하다.

신원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곡을 건너야 한다. 흰색의 물줄기가 속세의 모든 집착을 버리라고 말하는 듯 하다. ⓒ 임윤수

동학사와 갑사는 꽤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계룡산을 찾는 등산객들도 그렇고 성지 순례차 나선 참배객들도 대개 동학사나 갑사만 들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두 곳은 붐비는 인파로 명상은커녕 주변 산세조차 제대로 구경하기 힘든 명소(?)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신원사는 아직 한적한 산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계룡산 천황봉 남쪽에 자리한 신원사에는 보물 제 1293호로 지정된 중악단이란 산신각이 있다. 다름 아닌 계룡산신을 모셔 놓은 곳이다. 유교를 지배이념으로 하였던 조선왕조 때 세운 묘향산의 상악단과 지리산의 하악단 그리고 계룡산 신원사의 중악단을 삼악이라 하였는데 유일하게 계룡산에 있는 중악단만 현존하고 있다. 중악단은 휴전선 이남에 현존하는 산신각 중 최대의 규모이며 역사성과 구조적 측면에서 아주 귀한 유물이다.

만사가 눅눅한 장마철. 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 틈새로 햇살이 쏟아진다. 그 햇살을 피하여 계곡을 찾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펴고 있다. 신원사로 들어가려면 계곡을 건너야 한다. 장마중이라 계곡에 넉넉하게 흐르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한시도 없어서는 안 될 몇몇 중의 하나가 바로 물이며 물은 바로 이렇게 산에서 시작되는가 보다.

a 계곡을 건너면 바로 정면에 사천왕문이 나온다. 우측은 계룡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된다.

계곡을 건너면 바로 정면에 사천왕문이 나온다. 우측은 계룡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된다. ⓒ 임윤수

계곡을 건너 계단을 오르고, 사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문수봉(연천봉)을 조산으로 하고 있는 신원사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신원사 경내서 천황봉은 우측 일직선상으로 우러러 보게 자리하고 있다.

신원사의 전체적 좌향은 정남향으로 터를 잡고 있어 산사의 전형적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앞뜰 중앙에 있는 진신사리탑을 중심으로 북편 한가운데에 대웅전이 서 있고 오른쪽으로 영원전과 벽수선원(계룡선원)이 있다. 왼쪽으로 종무소와 독성각이 배치되어 있으며 그 바깥쪽으로 요사채가 자리잡고 있다. 영원전과 선원 사이의 등나무 터널을 지나 동편 천황봉 쪽으로 50여m를 가면 그곳엔 고가옥 형태의 중악단이 있다.


계룡산은 명산이다. 계룡산은 닭이 홰치는 형국이며 용이 꿈틀대듯 생동하며 이 강산을 수호하는 지신들의 거처라고 한다. 좀 우스운 얘기로 많은 무당과 점술가 그리고 철학인(?)들이 자신의 도력을 말하며 계룡산에서 몇 년간 도를 닦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런저런 소설이나 비서 등에 계룡산이 명산임을 지칭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부분이다.

a 계단을 올라 사천왕문을 지나면 커다란 벗나무 뒤로 진신사리탑과 대웅전이 보인다.

계단을 올라 사천왕문을 지나면 커다란 벗나무 뒤로 진신사리탑과 대웅전이 보인다. ⓒ 임윤수

고려 이후 명산에 부여되던 작호로 계룡산은 호국백(護國伯)이라는 작호를 받았다 한다. 작호를 받았을 만큼 계룡산은 명산이었고 지금도 그 명맥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 호국백이라는 작호는 없어졌지만 또 다른 형태의 작호로 생각해도 좋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법으로 보호받고, 가보고 싶은 산으로 선망되고 있다.


대개의 절에는 어느 한 곳에 작은 규모로 산신각이 있다. 대웅전이나 다른 전각들에 비하여 그 규모도 매우 작고 얼른 눈에 띄지 않을만큼 한가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산 속에 있는 절엔 예외 없이 산신각이 있다고 생각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듯하다.

절은 부처님을 모셔놓은 곳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마음으로 심신을 수양하는 도량으로 생각해도 엉뚱하다고는 하지 않을 듯하다. 절은 곧 불교의 전당이다. 불교의 전당인 절에 자리하고 있는 산신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a 대웅전은 문수봉(연천봉)과 방향을 맞추고 있다. 잘 정리된 마당의 잔디가 깔끔한 느낌을 준다.

대웅전은 문수봉(연천봉)과 방향을 맞추고 있다. 잘 정리된 마당의 잔디가 깔끔한 느낌을 준다. ⓒ 임윤수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들은 절 안에 있는 부처님과 산신을 구분하지 않고, 절 안에 있는 많은 경배 대상 중의 한 분으로 산신을 모셔 놓은 곳을 산신각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엄격히 말해 산신을 모시는 곳이 불교의 교리를 따르거나 불교의 전당 범주에 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산신각은 말 그대로 산신을 모셔놓은 곳이다. 산신은 인격신이 아닌 국가의 정신적 지주를 뜻하는데 토속신과의 혼용, 융합과정 등 여러 시대를 거치는 동안 미신의 산물인 것처럼 퇴색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의 문화와 가치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불교지만 불교도 엄연히 우리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도입된 종교며 문화임을 거부할 수 없다.

a 경내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 영원전으로 뒤쪽에 천황봉이 보인다. 조금 넓은 시야로 보면 마치 닭의 벼슬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경내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 영원전으로 뒤쪽에 천황봉이 보인다. 조금 넓은 시야로 보면 마치 닭의 벼슬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 임윤수

불교가 도입되기 전에도 토속신앙이 존재하였을 것이며 그 중 하나가 산신을 모시는 신앙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불교가 처음 국내로 도입되어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토속신앙으로 자리하고 있는 산신과 적지 않은 갈등을 빚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불교는 도입되면서 토속신앙을 포용하게 되었고, 그렇게 되면서 절 안에 부처님을 모신 전각과 함께 산신각이나 칠성각 등이 공존하는 구조를 갖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갈등의 요인이 될 수도 있고 자칫 상호비방에 봉착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토속신앙을 포용한 것은 불교의 세련된 포교 방법이며 수단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타 신앙에 대하여 배타적이지 않고 포용하였으며 공존하는 그 너그러움이 느껴지는 부분이 바로 절 안의 산신각이다.

a 영원전 쪽으로 나 있는 등나무 터널을 지나면 중악단이 나온다.

영원전 쪽으로 나 있는 등나무 터널을 지나면 중악단이 나온다. ⓒ 임윤수

불교는 도입이래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되고 계승되어 왔다면, 토속신앙은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불교에는 교리가 있고 방대한 경전이 있기에 그것이 가능하였는지 모르지만 토속신앙 대부분은 체계화된 교리 등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분명한 교리도 그럴싸한 경전도 없지만 산신신앙은 말 그대로 토속적으로 사람들의 가슴과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대상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며 절 안에 불교와 접목되어 극락의 사상으로 발전하여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인지 대개의 절에 있는 산신각은 그 규모가 매우 적다. 그런데 계룡산신을 모시고 있는 신원사 중악단은 결코 그렇지 않다. 대웅전보다 더 크거나 비슷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a 중악단 출입문이다. 소슬 삼문(三門) 좌우로 외여닫이문이 달린 출입문이 있으며 이 출입문을 들어서 중채문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중악단 출입문이다. 소슬 삼문(三門) 좌우로 외여닫이문이 달린 출입문이 있으며 이 출입문을 들어서 중채문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 임윤수

신원사의 창건과 중창에 얽힌 많은 설화와 역사적 배경은 뒤로 하더라도 중악단은 조선조 개국은 물론, 말엽 일본 점령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태조 이성계가 이조를 개국하고 즉위 3년에 국사 무학선사의 선몽에 따르며 계룡산신을 모시는 제단을 성역화함으로 산신단의 역사를 시작하였다. 이후 국가의 애환이자 왕족의 멸문을 가져온 조선조 고종 때 구국과 국태민안을 염원하던 명성황후 민비의 지원으로 현재의 중악단이 건립되게 된다.

국모였던 민비도 중악단에서 친히 기도를 올렸다 한다. 이러한 역사성으로 보아 과히 규모와 당시의 민심에 어떻게 역할을 하였는지 그 정도를 가늠케 한다. 중악단에 얽힌 이러한 배경을 두고 명성황후를 마치 무속 마니아로 격하시키려 함은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가치관을 간과한 사람들의 딴지걸기로 생각하고 싶다. 계룡산신을 모시고 있는 신원사 중악단은 이 나라 왕비의 애절한 염원이 스며 있는 애환의 산물이기도 하다.

여느 산신각들이 부속건물 없이 작은 전각에 산신을 모시고 있는 것이 전부라면 중악단은 궁궐을 연상케 한다. 소슬 삼문(三門) 좌우로 외여닫이문이 달린 출입문이 있으며 이 출입문을 들어서 중채문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a 소슬대문은 단지 대문이 아니라 중악단을 관리하기 위한 요사채이기도 하다.

소슬대문은 단지 대문이 아니라 중악단을 관리하기 위한 요사채이기도 하다. ⓒ 임윤수

궁궐의 구조가 그러하듯 중악단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곳의 출입문을 거쳐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궁궐 부속 건물에 관리인들이 있듯이 중악단 출입문이 있는 건물에는 사람이 기거토록 양쪽에 부엌과 온돌방이 있어서 행랑채와 유사하며 현재 그곳엔 정경 스님이 기거하고 계신다.

계룡산은 풍수적으로 수도가 자리잡을 수 있는 땅이라고 한다. 정감록(鄭鑑錄)에 <송도 5백년에 이씨(李氏)가 나라를 빼앗아 한양에 천도하고, 한양은 4백년에 정씨(鄭氏)가 국권을 찬탈하여 계룡산에 도읍한다. 신도(新都)는 산천이 풍부하고 조야(朝野)가 넓고 백성을 다스림에 모두 순하여 8백년 도읍의 땅이다>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비록 수도는 아니지만 오늘날 국력의 막강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육군·해군·공군본부가 자리잡은 계룡대가 있는 곳이 바로 신도안이다.

a 국내에서 제일 큰 산신각인 중악단으로 명성왕후도 이곳에서 구국과 국태민안을 서원하는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안에는 계룡산신의 위패를 모셔 놓았으며 지붕에 12지신상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서 제일 큰 산신각인 중악단으로 명성왕후도 이곳에서 구국과 국태민안을 서원하는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안에는 계룡산신의 위패를 모셔 놓았으며 지붕에 12지신상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임윤수

행정수도를 옮긴다고 하며 그 대상 중의 한곳으로 거론되고 있는 곳도 바로 계룡산 자락임에는 틀림 없다. 산의 정기는 산 자체보다는 산을 대하며 지성을 쏟는 사람들의 애절함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중악단을 둘러보고 대웅전 앞으로 오니 선원에 계시던 재민스님이 나오신다. 스님을 따라 들어간 스님의 방은 2평이 안 될 작은 규모였지만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앉은뱅이 책상에 빼곡한 책들에서 스님의 일상이 엿보인다. 차와 함께 내놓은 산도가 유달리 단맛을 느끼게 한다. 산도와 차는 허기를 덜어주고 스님의 좋은 말씀은 공허한 마음을 채워 주었다.

요즘 같은 난세에 명성황후가 다시 중악단에서 기도를 올리게 된다면 무엇을 서원할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형이하학적 측면에선 아둔한 듯 하지만 현대인보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졌기에 더 지혜로울지도 모를 선인들의 명견을 듣고 싶다.

명산 계룡주봉의 기를 흠뻑 받고 있을 중악단을 참배하고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에 두 발을 담그니 이런저런 잡념 다 사라지고 시원함과 평온해진 마음만 남는다.

a 신원사 스님들이 정진하고 계신 계룡선원(벽수선원)으로 천왕봉이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자리에 있다.

신원사 스님들이 정진하고 계신 계룡선원(벽수선원)으로 천왕봉이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자리에 있다. ⓒ 임윤수

아침엔 온통 정몽헌 회장의 투신자살 소식이 뉴스의 톱을 차지하고 있다. 무엇이 그를 투신케 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역시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 이며 봄날에 꾸는 긴 꿈과 같은 일장출몽(一場春夢)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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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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