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콘도의 이국적인 창

창이 있는 풍경 8

등록 2003.08.06 13:21수정 2003.08.0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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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이고 있는 가족상 같은 예쁜 건물이 유리벽 복도로 서로 이어져 있다. 이 복도는 관망하는데 좋은 장소이기도 하고, 따갑지 않은 햇빛을 마음껏 쬘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빛이 관통하는 건물은 생기가 넘친다.
아이를 이고 있는 가족상 같은 예쁜 건물이 유리벽 복도로 서로 이어져 있다. 이 복도는 관망하는데 좋은 장소이기도 하고, 따갑지 않은 햇빛을 마음껏 쬘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빛이 관통하는 건물은 생기가 넘친다.박태신
봄기운이 마지막 기운을 떨칠 무렵인 5월, 따스한 햇빛이 열기를 더하기 전 제주도를 찾았습니다. 제주도 남쪽 바닷가에 접해 있는 P콘도는 남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앞쪽은 바다를, 뒤쪽은 한라산을 바라보는 세 개의 건물 동과 넓은 정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건물들이 어슷어슷 놓여지고 서로 연이어져 있고요. 작년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웠던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도 저만치 보입니다. 처음 들어가니 사람보다 덩치 큰 곰 인형이 현관 가장자리 소파에 털썩 앉아 있는 것이 보입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봅니다. 로비 설치물의 하나인 이 친구를 찍으려고 벼르다가 기회를 놓쳤습니다.


눈길 끄는 또 하나. 요즘 여기저기서 관상용으로 가져다 놓은 보라색 호접란이 로비 한가운데서 훨훨 날아가는 나비 모양을 하고 줄기 여기저기에 매달려 있습니다.

세 개의 건물 동은, 양쪽 벽 전면이 분할된 여러 개의 유리창으로 된 복도로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세 개의 동은 그래서 서로 떨어져 있지만 이런 연결 복도 때문에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창 밖으로 한라산 중턱이 보입니다.

이 창은 건물 안 복도에 빛을 공급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콘도가 그러하듯이 건물 복도 양편으로 방이 들어서 있다보니 햇빛은 길다란 복도 양끝의 창으로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갈 때 만나는 이 유리창 복도는 관망과 더불어 빛을 한껏 받아안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제주도만의 특이한 창. 바람과 습기에 저항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제주도만의 특이한 창. 바람과 습기에 저항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박태신
5층으로 된 건물의 각 방은 자그마한 발코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발코니로 들어가려면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특이한 유리문을 열어제쳐야 합니다. 제주의 강풍과 습기를 감안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손잡이를 잡고 돌려 앞으로 잡아당긴 다음 옆으로 밀어야 열립니다.

앞으로 잡아당기면 윗부분이 앞으로 기울어져 통풍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바람과 습기에 강하게 저항할 수 있습니다. 방안의 창도 옆으로 젖히지는 못하지만 비스듬하게 앞으로 잡아당겨 통풍을 하는 비슷한 구조입니다.

역삼각형 벽체 양옆으로 발코니들이 제비집 모양 붙어 있다. 정원의 야자수와 잘 조화를 이룬다.
역삼각형 벽체 양옆으로 발코니들이 제비집 모양 붙어 있다. 정원의 야자수와 잘 조화를 이룬다.박태신
발코니 창을 통해 한라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정말 완만한 경사로 정상이 솟아 있는데 왕복 4시간 이상이 걸린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제주도 한가운데 턱 자리잡은 산, 터줏대감이자 주인이자 생성의 근원지이기도 한 한라산을 제주도 돌며 여기저기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기상 상태가 안 좋아 멀리서만 바라본 것이 여간 서운하지 않았습니다.


산책로에서 발코니들을 바라보니 서로 인접해 있는 발코니들은 위아래 층 발코니들과 더불어 하나의 기다란 역삼각형 같은 벽체에 붙어 있습니다. 위로 갈수록 너비가 길어지는 벽체가 묘한 입체감을 줍니다. 역삼각형같이 위로 갈수록 너비가 길어지는 형태는 불안정, 상승, 확장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이런 약간의 파격으로 건물은 더욱 생동감이 넘칩니다.

창이 행복한 곳은 안에 있는 이들도 행복합니다. 안과 밖의 시선이 자유로이 소통하는 창을, 그리고 그 창의 역할을 지지해 주는 설치들을 마음껏 보았습니다. 창은 밤마다 한 마리 새가 되어 마음껏 돌아다닙니다. 창은 상상력의 출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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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번역은 지금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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