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6개월 된 핸드폰, 어찌 할까나?

변기에 두 번 빠뜨리고, 택시에 놓고 내리고... 그 '질긴 인연'

등록 2003.08.09 11:48수정 2003.08.11 09:0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원이 수시로 꺼져 테이프로 녀석을 칭칭 감아놨다.
전원이 수시로 꺼져 테이프로 녀석을 칭칭 감아놨다.강이종행
"얘, 니가 그렇게 어렵게 살고 있는지 몰랐다. 이제 때가 된 거 아니니?"


얼마 전 3년째 사용하시던 휴대전화를 바꾸신 어머니께서 내 휴대폰을 보시며 웃음과 함께 던지신 말씀이다. 그러시곤 "요즘 휴대전화, 조금 비싸긴 하지만 할부로 나눠내면 그렇게 많이 내지만은 않는단다"라고 말씀하셨다.

최근 내 휴대전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처럼 "이런 희귀한 물건을? 너무한 거 아니야?"라며 마치 유인원 보듯이 말하곤 한다.

사실 배터리와 본체와의 접촉이 불량해 투명 테이프로 칭칭 감아놓기도 했고 자주 꺼져 (상대방 전화를 못 받는 등)불편을 주는 녀석이지만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를 '정'이 느껴지곤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모델들이 등장해 광고에 등장하는 휴대전화 시장에서 3년 6개월 된 전화기를 가진 주인은 볼 것도 없이 구시대 사람이다. 빠름과 새로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유행에 뒤진 사람으로서 녀석과의 함께 해 온 날들을 한 번 돌이켜 보려 한다.

난 무조건 보라색이 최고여!


2000년 1월 20일께였나, 용산 전자랜드를 빙빙 돌며 마음에 드는 휴대전화를 찾아 다녔다. 이전에 가지고 다녔던 H사 '카멜레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은 이전 '삐삐'보다 더 불편했다. 전화기는 켜 있었지만 수신은 자기 이름처럼 변덕스럽게 됐다 안 됐다를 반복하는 친구였다. 결국 주위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새로 휴대전화를 사러 나섰던 것이다.

반나절 이상을 '싸면서도 좋은 휴대전화'를 찾아 돌아다녔고 결국 최종 낙점, 지금 내 손에 있는 녀석을 골랐다. 당시 휴대전화 가격은 최소 공짜에서 비싼 녀석이 10만원대에 불과했다. 내가 고른 것은 S사 보라색 바탕의 플립형이었다.


여러 가지 기능, 모양 등을 비교하며 고민을 했지만 결정적으로 녀석을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보라색'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 G2 카멜레온 또한 기본색은 보라색이었다. 내가 보라색을 좋아했던 까닭이었다.

당시 가격은 2만 5천원. 뿌듯한 마음으로 새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쥔 채 집으로 향했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이렇게 녀석과의 첫 만남이 시작됐다.

2주일 사이 두 번이나 화장실에 '퐁당!'

녀석과의 3년 6개월동안 많은 일들을 겪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니 내게는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휴대전화 AS 센터에서 오는 사람들 중 많은 부분이 떨어진 충격 때문에 고장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동안 녀석을 크게 떨어뜨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끔 잘못 잡아 떨어질 때는 1차로 발로 충격완화 시킨 뒤 땅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었다.

다만 작년 여름 2주일 동안 녀석을 화장실 변기에 연이어 두 번이나 빠뜨렸던 일은 잊혀지지 않는다. 보통 회사에 출근하면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가서 일단 녀석을 변기 위에 올려놓곤 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휴대전화 줄이 손가락에 걸려 좌변기 속으로 '쏙!' 빠지는 것이 아닌가.

기겁을 한 채 녀석을 건져 올려 일단 물에 한번 씻은 뒤 사무실로 가지고 왔다. '드디어 바꿀 때가 됐구나' 생각을 하는 순간, '언젠가 물에 빠진 휴대전화를 하루 동안 말리면 다시 되더라'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시도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루가 지나자 녀석은 언제 물에 빠졌나 싶을 정도로 잘 됐다. 하지만 이후 이 주일이 채 안돼 다시 한 번 똑같은 일을 당하고 말았다. 첫 번째 경우와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고 녀석 역시 하루가 지나 내게 다시 돌아왔다.

그렇다고 그 동안 녀석을 아무 탈없이 사용한 것만은 아니다. 2003년 8월 초, 현재까지 AS센터 세 번 방문, 플립 두 번 교체, 한 번의 배터리 교체를 거쳤다.

AS센터에 알아보니 2002년 2월 1일에 휴대전화 본체와 건전지를 연결하는 소켓납에 문제가 생겨 교체를 했다고 한다. 또한 6월 4일 역시 소켓 접촉이 잘못돼 이를 해결했다고 한다.

그리고 열흘 전, 기기가 수시로 꺼지는 바람에 다시 서비스센터를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러한 증상은 4개월 전부터 계속 됐고, 이 때부터 테이프로 감아 논 이유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이번엔 기기 뒤편 케이스를 교체했다. 테이프를 떼고도 제 성능을 발휘한 것이 어찌나 좋던지.

지금까지 여러 번의 고장 원인에 대해, AS센터 직원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시죠? 정전기 등이 발생해 기계 손상이 올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줬다. 그는 되도록 충격을 많이 받지 않도록 휴대하라는 충고도 함께 전했다.

최신 PDA 폰으로 교체하고 싶은 마음

이런 가운데 새로운 기기에 대한 갈망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전원이 꺼지는데도 한동안 테이프를 감은 채 녀석을 고치지 않았던 것도 바꿔야 하는지 결정을 못 내렸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새로 나오는 PDA 폰으로 교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수리'쪽으로 마음을 결정하게 했던 두 번의 경험을 하게 됐다.

우선 한 달 전 개천 복구 공사에 들어간 청계천 '도깨비 시장' 취재 때 살펴보니 여전히 녀석과 같은 모델이 중고품으로 인기 리에 팔리고 있었다. 이를 사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보니 대부분 동남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중고 휴대전화가 '중고'가 아니었던 셈이다. 아직까지 누군가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을 동요시킨 것이다.

얼마 뒤 늦게까지 술을 마신 뒤, 택시에 녀석을 두고 내렸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드디어 바꿀 때가 됐구먼!'

그러나 바로 다음날 아침, 기사 아저씨에게 전화를 받았다. 저장된 집 번호를 찾았다면서. 그 아저씬 이틀 뒤 직접 휴대전화를 가지고 집에 가져다 줬다. 만나지는 못했지만 어찌나 감사하던지. 결국 녀석과는 무언가 질긴 인연이 있다고 받아들이고 말았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녀석은 구식 휴대전화다. 가끔 컬러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고, 사진을 찍고, 인터넷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부럽기도 하다. 솔직히 앞으로도 새로운 기기로의 교체를 고민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첨단'의 세상속에서 적어도 3년 6개월 동안 녀석과 함께 하면서 느꼈던 작지만 큰 정, 그리고 어떻게 보면 기적(?)과 같았던 경험들. 이런 것들 때문에 아마 쉽게 마음을 결정하지는 못할 것 같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2. 2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3. 3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4. 4 사진에 담긴 진실...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 끝난다 사진에 담긴 진실...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 끝난다
  5. 5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