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총련이 미군부대에 진입하여 반전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가 보여준 것은 미국과의 대립이나 갈등이 우리나라 사회의 가장 중요하고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주요 사안이라는 것이었다.
미군의 기계화 타격부대인 '스트라이커 부대의 철수'와 '북침계획의 철회'를 주장하는 대학생들은 미군의 장갑차를 점거하였다. 이 사건을 보며 1980년대 당시 대학생들이 광주와 부산, 서울에서 미국 문화원을 점거하여 광주학살의 책임을 미국에 묻던 충격적인 사건이 떠올랐다.
그 중에서도 1985년 5월23일 서울시내 5개 대학생 73명이 '광주사태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사과하라', '국정조사권 발동하라'는 유인물을 유리창에 붙이고 미국 대사와의 면담과 내외신 기자와의 회견을 주장하며 서울 미문화원을 점거한 사건이 가장 큰 충격을 주었었다.
당시 민주적 절차 없이 쿠데타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시민을 무자비하게 총칼로 학살하고 잔인 무도하게 짖밟으며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의 가장 큰 약점을 건드린 이 사건은 순식간에 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어 버렸고, 그로 인해 전두환 독재정권과 광주학살을 암묵적으로 지지 지원했다는 의심을 받아온 미국에게 정치적인 치명타를 입힌다. 미묘하게도 소위 '386'이라 칭하는 지금의 그들이 그 사건의 주역들이다.
전두환 정권은 이 사건을 계기로 더더욱 잔혹하고, 광폭한 폭력진압과 의도적 간첩조작사건들을 양산해 내며 반북, 반공이데올로기를 국민들에게 강요하며 민주화 세력을 빨갱이로 매도하고 압살하려 한다.
당시 모든 언론과 방송 매체들은 빨갱이 사냥에 나서고 일제히 운동권 세력을 친북세력으로 몰고 가는 어용언론의 본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2003년 8월, 한총련의 합법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그 때와 비슷한 동기로 대학생들이 미군부대를 진입하여 스트라이커 부대 철수와 전쟁반대를 외치는 기습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참여정부의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나서서 한총련에 유감을 표명하였다. 후일담으로는 대통령이 직접 성명을 발표하는 것까지 검토했다고 하니…. 정말 발빠른 대응이라 평하고 싶다.
이 일을 두고 조선 중앙 동아는 한 기자가 기사를 쓰고, 논설위원 한 명이 세 신문의 사설과 칼럼을 쓴 것처럼 기가 막히게 제목까지 똑같이 뽑아대며, 광필을 휘갈겨 댄다. 한총련을 즉시 때려잡고, 합법화를 철회하라고….
총을 든 미군들을 향해 돌진하고, 훈련중인 장갑차 위로 뛰어오르는 대학생들이 미군의 생명을 위협했다고 미군 측은 주장하고 있다. 그 뉴스를 보며, "아니 저러다 미군들이 총을 쏘면 어쩌려고. 개죽음 당하려 저러나…"하며 말을 잇지 못했고, 전율을 느꼈다. 왜냐하면 훈련 중에 민간인이 허락 없이 부대 안으로 진입하여 시위를 하는 것은 군법상 면책사유이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은 두 여중생을 보자. 그들은 훈련 중에 사고를 당했다는 이유로 미군들은 무죄 석방되고 면책이 되지 않았나? 아마 미군이 총을 쏘았어도 똑같은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군들이 자제력을 보여준 것이 다행이고, 대학생들이 부상없이 끝난 것에 안심한다.
이 사건을 통해 두 가지를 보았다.
하나는 정말 주한미군 문제가 우리 대학생들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들이 총알받이가 될지도 모르는 우발적 상황에서 장갑차까지 점거한 이유를 기성세대들은 면밀하게 분석하고, 검토하여 재발 방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조건 그들을 색깔론으로 덧칠하며, 처벌해야 한다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다. 그리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호돌갑을 떨 필요가 있었나 묻고 싶다. 그리고 대학생들의 안전에 대해서 한마디 언급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자식을 키우는 부모 처지에서 올바른 대응이 아닐까?
다른 하나는 미국이란 국가는 참으로 선택받은 국가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모두 무죄이고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항의하고 시위를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기성세대들의 피해의식이 빚어낸 일종의 미국 희스테리이다. 미국이 은인이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미워하면 안된다는 주장은 지극히 감상적이고 감정적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사과를 하고, 미국은 여기에 감사를 하고, 주요 언론과 지식인들은 주한미군과 미국을 욕보인 자국의 자식들을 패륜아로 취급하며 매질을 해대는 것을 보며, 재차 이런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80년대 대학생들의 미문화원 점거 사건과 21세기 2003년 대학생들인 한총련의 시위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제 미국이란 나라가 결코 우리에게 경제적 이익과 안보를 보장해 주는 선의의 우방국가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의 숨겨진 모습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나타났듯이 명분없는 논리와 세계 최강의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자국의 이익과 배치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의 민족을 침략하는 전근대적인 제국주의적 속성을 지닌 비이성적인 국가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제는 좀더 미국에 "NO!" 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국민들이 돼야 한다. 그들의 부당한 행위와 정당치 못한 정책들에 대해 당당하게 시정을 요구하고 시위를 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정당한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참여정부는 그런 국민들의 분출하는 자주의식을 기반으로 등장한 정부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실망 그 자체이다. 국익이라는 기준없는 정의에 발목이 잡혀 그들의 길을 가고 있지 못하다.
집권한지 반년만에 진보와 보수, 수구세력들에게 모두 야유 받고 이지매를 당하는 참여정부의 모습을 보며 권력의 무상함을 느낀다.
지금 우리는 냉철히 한총련, 그들의 주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미국의 북침계획의 철회와 스트라이커 부대의 남한 배치에 반대하고 있다.
정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대북 교류가 위기를 맞고, 북미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미국은 기동타격 부대를 한국에 배치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북한에 대한 공격에 대비한 훈련임에 틀림없다.
민족의 운명을 미군에게 맡길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런 시위를 전개하게 됐다는 대학생들의 주장을 새길 필요가 있다. 미국의 대북한 전쟁계획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고, 6자회담이 무산될 시에는 실제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 도 있다는 주장이 미국 당국자들에 의해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지금, 미군의 스트라이커 부대의 남한 배치가 의미하는 것은 심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한총련 대학생들의 주장은 합리적이고 의미있는 요구인 것이다. 참여정부도 언론과 전문가들도 이런 한총련의 주장을 심사숙고하고 검토해야 한다. 방법이 합당하지 못하다고 해서 그들의 주장까지 불법시 한다는 것은 옳치 못하다.
우리들의 자식이고 젊은 꿈을 가진 대학생들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학생들은 늘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쳤고, 청춘을 다 바쳤다. 그런 희생위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80년대 미문화원 점거와 지금의 미군부대 시위에 대해 우리는 그 의미를 두어야 한다. 어쩌면 그들의 주장이 정당한 것이었음을 나중에 역사가 확인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족적인 시각과 대의에 입각한 지식인들의 선도적인 투쟁이 역사의 진보와 민족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깨달아야 한다.
한총련의 합법화를 철회하는 것은 또한번 역사앞에 죄를 짓는 것임을 정부와 정치권, 언론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서울 미문화원 사건 당시 언론보도
23일 낮12시5분 미문화원 도서관 출입문을 통해 몰려들어간 학생들은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운 듯 도서관점거이후 즉각 대로변 쪽 창문에 「광주사태 책임지라」,「미국은 사과하라」는 등의 요구사항을 써 붙였다.
학생들은 또 경찰을 들여보내면 우리 모두는 투신, 음독 등으로 죽음을 불사하고 항의할 것이라는 내용의 쪽지를 창문에 써 붙였다. 난입학생들은 미대사관 관계자들과의 대화가 중단된 후 도서관 안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갔으며 대사관측이 제공한 음식을 거부했다. 이들은 철야농성 중 수시로 회의를 열어 사태추이와 앞으로의 대책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25일 오전 워커 주한 미 대사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미문화원을 찾게된 것은 주권국가 국민으로서 광주사태당시와 그 이후의 한미관계에 대한 올바른 해명을 듣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또 정당한 절차가 아닌 방법으로 미문화원에 들어온 것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광주사태 당시의 문제가 단지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도 지속되는 문제라고 주장, 정치인들이 미온적으로 광주사태에 대응하는 상황속에서 우리들의 의사를 국민여러분께 알리기 위해 이 같은 방법을 택했다고 주장했다.
버스에 오르기 직전 학생대표 함운경 대표가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데서 반정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건의 사회적 파장을 말해주는 동아일보 호외>
농성학생들은 유인물에서 미국 측의 태도로 보아 농성을 통한 문제해결의 한계성을 느꼈고 27일에 있을 남북적십자회담을 고려해 농성을 끝낸다고 밝혔다.
농성대학생들은 농성을 풀기직전인 11시 반경 「국민여러분께 드립니다」라는 성명을 통해 미국 측이 광주사태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고 주장, 강제 해산시키지 않을 방도에만 몰두해 더 이상의 대화진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그동안의 대화를 정리하고 미문화원을 떠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또 미 대사관측이 책임을 인정하려는 노력도 없었고 미국 측 입장과 우리측의 입장을 공개 보도할 의사마저 없었던데 대해 실망을 느꼈다면서 결연한 자세로 민주화투쟁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국내외의 이목을 집중시킨 서울 시내 5개 대학생들의 미문화원 점거 농성사건은 국민들의 충격과 우려 속에서 큰 불상사 없이 학생들의 자진해산으로 막을 내렸다.
26일 낮 12시 5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농성을 풀고 미문화원을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물리적으로 강제 해산되는 사태까지 가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이번 사건이 던져준 파문 등을 의식, 착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5월의 마지막 일요일인 26일 낮 학생들이 문화원을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든 학부모, 친지, 대학관계자를 비롯한 시민들은 지친 모습으로 버스에 오르는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양측이 인내심을 갖고 대화를 계속한 자세는 바람직한 점이었지만 이런 사태는 또 일어나서는 안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문화원사건 2회 공판 열리던 날, 직원도 신분증 없이는 출입을 못할 정도로 삼엄한 경비망을 폈다.
함운경 대표는 미문화원사건으로 1심에서 구형 10년, 징역 7년, 2심에서 구형 10년 징역5년을 선고받았다.
출처: http://okham.org/technote/special/text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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