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06

인과응보(因果應報) (3)

등록 2003.08.13 10:36수정 2003.08.1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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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크! 너, 말 한번 잘 꺼냈다. 정의수호대원이 상급자에게 대들다 걸리면 곤장 오십 대이고, 복무기간이 두 달 늘어난다."
"그건 말로 죄를 지었을 때 이야기고, 만일 상급자의 몸에 손을 대면 어떻게 처벌하지?"

"크크! 아직도 모르느냐? 상급자의 몸에 손을 대면 즉각 하극상(下剋上)으로 다스려진다."
"하극상이라 함은?"


이회옥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말꼬리를 흐렸다.

"하극상이 뭔지도 몰라? 임마, 귓구멍에 낀 먼지를 털어 내고 잘 들어 둬. 하극상은 아랫놈이 윗분에게 개긴 걸 뜻한다. 하극상은 주먹이나 병장기를 휘두르는 것만 해당되는 게 아냐. 조금 전 네놈이 본좌에게 막말을 한 것도 이에 속하지. 이건 전시(戰時)에 도주한 것과 같은 중죄로 최하가 곤장 일백 대이고, 참수형으로 다스리기도 한다. 알았냐?"

"호오! 그으래? 그렇게 잘 알면서도 내 멱살을 쥐었느냐?"
"혀, 형님! 정말 이 분의 멱살을?"

이회옥의 말에 말년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하얘졌다.

"얌마! 너 말년이 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노망이 든 거냐? 임마, 저따위 신참 놈의 멱살 한번 잡은 걸 가지고 왜 그래? 설마 저놈이 나보다 상급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허억!"


배루난의 말에 말년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변명의 여지조차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순간 이회옥의 명이 떨어졌다.

"들었는가? 놈은 하극상을 범했다고 자백했다. 저놈이 아직 모르고 있으니 본좌가 누구인지를 밝혀라."
"야, 왜 그래? ……!"


배루난은 자신이 대신 두들겨 팬다든지 기타 형벌을 가하겠다고 펄펄 뛰어도 시원치 않을 말년이 안색이 창백해진 채 자신을 바라보자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혀, 형님! 어, 어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십시오. 어서요."
"야, 왜 그래? 저놈이… 아니 쟤가… 야! 대체 누군데 그래?"

말년의 이상한 태도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느꼈는지 배루난의 음성은 점점 잦아들고 있었다.

"혀, 형님! 이, 이분이 바로 철마당의 부당주님이신…."
"뭐, 뭐라고? 처, 철마당 부당주님? 그, 그렇다면 얼마 전 의천문 앞에서 이, 이십사 대 일로 싸운 마선?"

"마, 맞습니다. 그, 그러니 어서…."
"허억!"

말년은 배루난이 왜 어서 허리 숙여 절을 하지 않나 답답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죄가 감해져도 감해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 순간 배루난은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미동도 않고 있었다. 너무도 놀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전신이 뻣뻣하게 굳었던 것이다.

의천문 앞에서 정의수호대원 이십사 명을 마치 어린아이 데리고 놀 듯 그렇게 데리고 논 덕에 철마당의 부당주로 승차한 이회옥은 무림천자성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무림지옥갱에 하옥되었다가 방면된 것이 첫 번째 전설이었다. 누명을 쓰고 하옥된 자야 또 있을지 모르지만 방면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피거형(皮居刑)에 처해지고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던 첫 번째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 역시 전무후무한 일이기에 두 번째 전설로 꼽히게 된 것이다.

세 번째는 내공도 없으면서 한 자루 목봉(木棒)으로 스물 네 자루에 달하는 무적검을 상대로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대를 압도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내공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무림지옥갱에 하옥되는 모든 죄수들의 하단전이 파괴되기에 당연히 내가기공을 익힐 수 없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네 번째 전설은 신기에 가까운 그의 봉술이 그것이다. 며칠 전 이회옥은 무림천자성의 차기 성주로 내정된 철기린 구신혁 등 수뇌부들이 보는 앞에서 봉술을 선보였다. 이를 본 사람들의 혀를 내두르며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한 자루 목봉으로 송판에 못을 박아 넣는 신기(神技)를 보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허공을 날아다니던 파리를 압사(壓死)시키는 그야말로 신기한 재주를 선보였다.

무림에 있어 전설처럼 전해지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 점창파 장문인인 철혈신창 문인걸의 사조(師祖) 신창(神槍)이 있다. 그는 한 자루 창으로 일 각 만에 삼백여 개의 못을 박아 넣었다. 뾰족한 창 끝을 감안한다면 얼마나 정확하고 빠른지 짐작이 간다. 그렇기에 신창이라는 영예스런 외호로 불리는 것이다.

시범을 보일 때 이회옥이 사용한 봉은 창보다 끝이 뭉툭하기에 못을 박아 넣기가 훨씬 쉽다. 그렇다고 대강 대강해도 못이 박히는 것은 아니다. 접촉면이야 늘어난다 하지만 정확한 각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박히는 것이 아니라 구부러지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이회옥은 일 각만에 단 한 개의 못도 구부러트리지 않고 정확히 일천하고도 한 개를 박아 넣었다. 과거 청룡무관에서 갈고 닦은 솜씨는 여전했던 것이다.

이것을 본 모든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아울러 환호성을 터뜨렸다. 설사 신창이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결코 이회옥을 능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철마당주는 아무도 조련할 수 없던 말들을 조련하였으며, 놀라운 무위를 선보여 철마당의 영예를 한껏 드날린 이회옥을 부당주에 임명하면서 마선(馬仙)이라는 외호를 내린 바 있다.

여기에 철기린 구신혁이 새롭게 봉신(棒神)이라는 외호를 내렸다. 하여 마선봉신(馬仙棒神)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날 이후 한 동안 모든 시선은 마선봉신에게 쏠렸다. 한낱 말 조련사가 모든 정의수호대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일대 영웅이 된 것이다. 하여 새롭게 봉을 장만한 대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회옥에게 탁월한 근력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하였기에 하루종일 근력을 키운다며 법석을 떨었다. 덕분에 무림천자성의 모든 연무장에서는 사내들의 땀 냄새가 진동하게 되었다.

이런 와중이었지만 배루난만은 이회옥에게 관심을 쏟을 수 없는 처지였다. 갈참이 된 이후 그동안 즐기지 못했던 마작에 푹 빠져 있느라 적지 않은 은자를 잃었기 때문이다.

동료들로부터 빌린 것만 해도 사천 냥에 달했다. 거기에 도박장에서 은자를 빌려주면서 많은 이자를 떼는 소위 말하는 꽁지들에게서 빌린 은자가 팔천 냥이었다. 도합 일만이천 냥 가운데 만 냥 가까이 잃은 상태였던 것이다. 따라서 잃었던 본전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였다.

동료들에게 빌린 것이야 이자가 없으니 천천히 갚아도 되지만 꽁지에게서 빌린 것은 즉각 갚지 못하면 이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들이 한번씩 이회옥을 보려고 철마당을 기웃거릴 때에도 도박장에 처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마작의 족보 가운데 가장 높은 족보인 구련보등(九聯寶燈)이 뜨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게다가 전판과 그 전판이 모두 뜬 사람이 없기에 삼배 판이었다. 덕분에 그 한판으로 잃었던 본전 대부분을 찾는 개가를 올리게 되었다. 그러니 왜 기분이 안 좋았겠는가!

하여 천향원의 대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호기를 부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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