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종각사거리에서 열린 `반전평화 자주통일 8.15범국민대행진`에 참석한 한 어린이가 `전쟁책동분쇄`이라고 적힌 성조기를 들고 모형 미군 탱크 위에 올라가 흔들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타이 로저스(Ty, Rogers). 15일 <반전평화 8·15통일대행진> 행사가 끝나갈 무렵 종각에서 광화문으로의 촛불행진 때였다. 진작 눈여겨 보았던 외국인 청년에게 어눌한 영어로 말을 걸었다.
- 어디서 오셨습니까.
"미국에서 왔습니다."
난 그가 북유럽쪽 출신일거라 짐작했는데 의외의 답변이 나오고 만 것이다. ‘반미’를 외치는 행렬에서 촛불행진을 하는 사람이 미국인이었다니. 혹시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모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또 물었다.
-저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한 건가, 거기에 동의하는가.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대부분 동의한다.”
-그들이 '반미'를 주장하는 것은 알고 있나.
“부시가 하는 짓은 미친 짓이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북한…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현재 한국을 여행중인 타이라는 올해 23살의 청년은 미국의 대북강경노선 또한 세계평화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타이는 기자인 한국인 친구와 함께 행사장에 와서 무려 4시간 동안 낯선 땅에서 모국을 비판하는 행사와 시위를 지켜봤다. 그 사이에 그가 'F****** U.S.A'라는 국가모독적인(미국인에게 있어) 외침을 못들었을 리가 없는데도.
혹시 북한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김정일은 절대 좋은 지도자가 아니다. 핵무기를 갖고 있을지 아닐지는 확실치 않다. 그런 상황이지만 북한에 관한 문제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6자 회담과 같이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야 한다. 부시는 절대 대통령에 재선출돼서는 안된다. 그러나 유감스럽지만 재선출될 거 같다. 지지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그러지(재선출되지) 않았으면 한다.”
요컨대 그가 반대하는 것은 미국 자체가 아니라 부시 대통령이 통치하는 미국이고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비폭력과 평화이다. 그가 북한정권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폭력을 통한 제재는 옳지 않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의 광복절에 우리나라 땅에서 폭력집단으로 간주되는 미국을 향한 촛불 시위에 참가하고, 이를 막으려는 전경에게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인식의 경계는 국경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줬다. 그렇다고 그가 아나키스트인 것도 아니다. 국가에 대한 비판은 진보든지 보수든지 애정을 갖는데서 시작된다는 사실 또한 그의 반미시위 참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2003년 8월 15일에, 종각 사거리는 국가나 사회에 애정을 갖고 고쳐보겠다고 보인 사람 일만명이 모였던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