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동아> 친일찬양, KBS에 의해 해부

KBS1 <8·15기획 일제하 민족언론을 해부한다>를 보고

등록 2003.08.17 23:42수정 2003.08.1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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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KBS 한국사회를 말한다. 인터넷 초기 화면

KBS 한국사회를 말한다. 인터넷 초기 화면

필자도 한때는 <조선>과 <동아일보>를 민족신문이라고 잘못 안 적이 있었다. 비싼 노트를 사서 사설을 스크랩할 정도로 세뇌된 것이었다.

'자전부전'일까? 지금은 저의 아버님께서 이런 증상을 가지고 있으시다. 다른 사람의 말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으시면서 <조선일보>의 기사만을 철저히 신봉하신다. ‘조갑제의 홈페이지’를 즐겨찾기의 첫 번째에다 올려놓으실 정도다. 월간조선의 편집인 조씨의 주장과 같이 ‘우리가 북한을 타도해야 한다’고 하신다.

이렇듯 확신에 찬 주장을 하시는 것은 이 두 신문이 일제 하에서 애국민족지였다는 믿음에서다. 지금도 바른 소리를 하는 신문이며 북에 대해서나 미국에 대한 시각이 전부 옳다고 신뢰한다. 무엇이 이토록 철저한 신념을 갖도록 하였을까?

지난 16일 밤 8시 KBS1은 '8·15기획 한국사회를 말한다 - 일제하 민족언론을 해부한다'라는 특별 기획을 통해 <조선>, <동아>가 일제 하에 어떤 왜곡을 일삼아 왔으며 친일 행태는 어떠했는지를 그 당시의 생생한 자료와 증언 및 신문자료를 통해 양파 껍질을 벗겨내듯 하나하나 파헤쳤다.

<조선>, 조선인 최초 전사자 왜곡 보도

1939년 7월 조선 지원병 최초로 전사자(옥천출신 이인석)가 발생하자 <동아일보>는 ‘일본을 위한 의로운 죽음’으로 미화하면서 미망인이 “전사는 남자의 당연사”하고 말했다고 보도했으나 이 기사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인터뷰를 했다고 전해진 미망인은 “정신이 없어 울어보지도 못했는데 죽은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밝혀 왜곡임이 백일하에 밝혀졌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그 누가 죽은 남편을 앞에 두고 당연히 잘 죽었다고 하겠는가? 그야말로 소설을 쓴 것이다.


애국의사를 ‘범인’으로 낙인

더 놀라운 것은 우리의 애국지사나 의사에 관한 보도태도다. 1932년 1월 10일자 <조선일보>는 '천황 폐하 환행도중 노부에 돌연 폭탄을 투척, 범인은 조선 경성생 이봉창'이라는 기사에서 독립지사의 의거를 대불경 사건으로 규정하고 이봉창 의사를 '범인'으로 낙인찍었다. 이후 윤봉길 의사도 마찬가지로 ‘범인’이라고 지칭했다.


일장기 말소사건 관계 기자 파면, ‘몰지각하고 어리석은 일’로 보도

특히 <동아일보>가 그 당시 우리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켰다며 자랑하는 '일장기 말소 사건'의 진상은 어땠을까?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1936)는 조선인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 준 일대 사건인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동아일보>는 일장기 부분을 지워 조선인들의 항일 의식을 고취했다고 민족지임의 확실한 증거임을 내세우지만 놀랍게도 <동아일보> 경영진이 일장기 말소사건에 관계된 두 기자에게 해 준 것은 훈장이나 포상이 아닌 ‘파면’이었다.

한술 더 떠 8월 25일자 보도에서는 ‘일장기 말소사건’에 대해 <동아일보> 사장 김성수는 “몰지각한 소행”이라고 했으며 송진우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거사를 폄하했다고 한다.

<조선>, <동아>의 친일행각은 총독부 기관지 못지 않아

<조선일보>는 6월 15일자 사설에서 "지원병 개소식에 제 하야 조선통치사상이요 찬의를 표"하며 "황국신민 감격 감사"한다고 찬양하였다. 또 "신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전쟁 참여를 독려한다. 1937년 7월 19일자 보도에서는 '일본을 아군 황군', '일장기를 우리 일장기'로 칭하며 '조선도 전쟁의 한 부분이다'하고 주장하여 전쟁의 정당성을 알린다.

<동아일보>도 1937년 7월 7일자에 '중일전쟁은 역사적 감격이다'고, 6월 11일자에는 '지원병에게 영예다, 불굴의 혼이다'하고 칭송한다.

이렇듯 중일전쟁 이후의 두 신문의 보도 행태는 일제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보다 더 일제를 찬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제를 겪었던 한 할아버지는 신문보도가 어땠냐는 질문에 “<조선일보>는 왜놈신문보다 더했다”며 이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그래서일까. 그 당시 총독부기관지인 <매일신보>는 “새로운 충신이 나타나 우리 영역을 침해한다”고 하기도 했다.

1940년대 들어서는 친일 및 일왕칭송을 더욱 노골화했다. 새해 1월 1일이 되면 일장기와 일본 왕 부부의 사진을 1면 전면에다 싣고 일왕을 찬양하고 대동아 신질서 건설을 두둔했다.

1938년(일본식 소화13년) <조선일보> 편집국장이던 서춘이 한 회의에서“우리(<조선일보>)도 친일 논조로 나가야 한다”고 한 말이 경성지방 검사국의 한 문건에 그대로 담겨있어 <조선>의 친일이 자발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조선>, <동아> 폐간은 강제 폐간이 아닌 합의 폐간

이를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할까? 조선총독부가 보기에 <조선>,<동아>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여겨지자 1940년에는 일제가 두 신문사에게 돈을 주면서 합의 폐간을 한다.

일본 현지 국회 도서관 헌정자료실에는 일본 정부가 40년 <조선>과 <동아> 폐간의 대가로 각각 100만원과 82만원(당시 전투기 한 대 가격이 10만원)의 매수 금액을 지불한 것으로 나와 있어 일제에 의한 강제폐간이 아닌 ‘합의 폐간’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조선>과 <동아>측이 입만 열면 강제 폐간되었다고 한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부역 언론인부터 처형한 프랑스

프랑스의 드골은 나치 치하의 친독 언론인 4명을 총살시키고 1명은 징역형에 처했다고 한다. 특히 <오주르쥐>의 정치부장 종르주 슈아레즈는 "프랑스를 지켜주는 나라는 독일뿐"이라며 히틀러의 관대함을 찬양한 기사를 쓴 대가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총살형에 처해졌다.

KBS 특별 기획은 “언론인은 도덕의 상징이기 때문에 첫 심판대에 올려 가차없이 처단해야 한다" 는 드골의 말이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 무엇을 말해주는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면서 끝났다.

<조선>, <동아>는 친일행적 사죄해야

청산하지 못한 역사 탓에 친일 세력은 더 많은 왜곡을 일삼고 있듯 <조선>,<동아>는 과거 그들의 친일행적을 반성하지 않는다. 드러난 사실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친일보다 항일을 더 많이 했다는 억지 변명을 늘어놓는다.

조선과 동아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보다 더 앞장 서 일제와 일왕을 칭송하였고 일제치하에서 앞장서 징용을 선동하였다. 그 결과 당시 무수한 젊은이들을 일제가 일으킨 전쟁으로 내몰았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러한 사실을 감추고 변명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왜곡의 늪에서 깨어나 역사와 민족 앞에 엎드려 사죄하기 바란다. 역사는 사실이며 진실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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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간지 기고가이며 교육비평가입니다. 교육과 사회부문에서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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