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사진작가 10인의 눈으로 바라본 미군

<한국 일본 오키나와에 대한 기록과 기억> 사진전

등록 2003.08.18 20:07수정 2003.08.1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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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전플라자 갤러리에서는 8월 13일~ 22일까지 <한국 일본 오키나와에 대한 기록과 기억> 사진전이 개최된다.

한전플라자 갤러리에서는 8월 13일~ 22일까지 <한국 일본 오키나와에 대한 기록과 기억> 사진전이 개최된다. ⓒ 박신용철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以 不如一見)'이란 말이 이처럼 꼭 들어맞는 게 있을까?

6월 24일∼29일 일본 오키나와를 시작으로 7월 9일∼14일 오사카, 7월 18일∼23일 도쿄를 거쳐 8월 13일∼22일 서울에서 발길이 머무는 사진전 '한국 일본 오키나와에 대한 기록과 기억'은 한국과 일본 현장사진 작가 10명이 오키나와를 통해 바라본 한일미 3국간에 얽혀져 있는 그림자같은 모습들을 260점의 사진을 통해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일본 속의 식민지로 불리고 있는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맺어진 한·일·미 3각동맹 체제의 이면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번 사진전은 얼마 전 일본군 위안부, 일제 강제징용자 등 일제의 침략전쟁에 목숨을 잃거나 살아 있어도 전후보상조차 받지 못한 채 58년을 살아왔던 태평양전쟁 피해자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다'는 사상 초유의 사건 직후 개최된다는 데 의미가 깊다.

일본 속의 식민지인 오키나와는 1945년 미국에 의해 본토와 분리된 뒤 1972년까지 27년 동안 미군지배를 받으면서 미군과 미군 속에 의한 범죄는 지속되었고 범인에 대한 재판권이 미군에게 있어 형사권도 행사하지 못했다. 주한미군기지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 사진작가 이시카와 마오는 '기지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 '히노마루(일장기)를 보는 눈'이란 주제로 사진전에 참여했다. 일본 전국의 미군기지 시설 가운데 75%가 집중되어 있는 오키나와에는 기지촌이 형성되었고 한국의 기지촌과 마찬가지로 미군들이 버리고 간 혼혈아들이 사회의 편견과 싸우며 힘겨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곳이기도 한다.

존 마츠모토씨도 '또 하나의 오키나와"를 통해 미군, 미군속 아버지가 남긴 아이들은 양육비조차 받지 못하고 일본사회에서는 집단 따돌림, 놀림, 편견으로 인한 폭행 등의 피해를 온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혼혈아들의 삶을 담았다.

혼혈아들은 사진 속에서 '나는 누구일까? 라는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되고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를 배우며 인종을 차별하는 미국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나는 미국인이 아니라'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하고 있다.


그외에도 배스씨의 '일본의 전후보상', 히가 토요미츠씨의 '지금도 사라지지 않은 육체에 새겨진 전쟁의 상처' 마기타 기요시씨의 '마이너리티 포츄리이트'도 반인간적인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했다.

a 한일 사진작가 10인의 눈을 통해본 한미일의 어두운 역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한일 사진작가 10인의 눈을 통해본 한미일의 어두운 역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 박신용철

한국 사진작가 5인이 던지는 화두 , '미국' , '일본의 전쟁범죄'

한국의 사진작가들은 한국을 지켜주기 위해 왔다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벌이는 범죄, 환경오염, 지역민의 사적 재산권 침해, 생명위협 등의 사건을 통해 '과연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다.


일본군의 무장해제라는 명분으로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켜온 지 58년이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시민들은 '불평등한 한미관계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미 양국정부는 기만적인 대응으로 국민들은 더 분노하고 있다.

한일월드컵이 한창이던 지난해 6월 13일 경기도 양주 국도에서 친구의 생일잔치에 가던 두 여중생이 미군장갑차에 치여 압사한 사건을 계기로 불평등한 한미SOFA개정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급속도로 늘어갔고 이런 여론에 힘입어 한미SOFA가 일부 개정되었으나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뿐이었다.

2003년 여중생 사건을 다룬 '어머니의 손수건(민중의소리)'이란 사진집을 내기도 한 사진작가 이용남씨(현장사진연구 소장, 파주바른신문사대표)는 미국이 두 얼굴을 가졌다고 말한다.

'2000년 1월경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캠프 에드워드 미군부대에는 부대 안에 폭발물이 설치되었다는 정보가 입수되어 긴급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기지 주변에 살고 있는 2000여명의 한국주민들에게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자신들만 대피했다.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행정당국 공무원 500명이 투입돼 주민들 대피시켰다. 이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왔다는 미국의 두 얼굴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미국의 두 얼굴 중에서)

"매향리'를 화두로 던진 국수용씨도 "1951년 8월 한국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한국정부와의 사전협의없이 일방적으로 미공군 폭격장이 들어선 경기도 화성의 매향리. 현재도 매향리 앞바다 농섬을 해상폭격장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폭격기에서 쏟아내 총알, 포탄에 맞아 피해를 입은 주민이 수십명, 대부분 피해자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한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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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신용철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13일 미군장갑차에 무참히 깔려죽은 두 여중생의 사건을 다룬 사진작가 노순택씨의 '아이들은 열네살이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전쟁의 조기종식을 명분으로 투하된 두발의 원자폭탄. 그리고 58년이 지난 지금도 일상의 고통 속에서 시름시름 앓아가다 죽어가고 있는 한국인원폭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신동필의 '한국인원폭피해자'. 그리고 안해룡씨도 '과거의 사진첩에서 찾아낸 기억'에서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통해 청산되지 않은 한일근대사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

한일 사진작가 10인의 눈을 통해본 미군에 대한 기억과 상처는 한미일삼각동맹이 '전쟁'을 통해 맺어진 것이며 이를 뛰어넘지 않고는 한반도의 평화통일, 동북아의 평화체제 수립은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아울러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역사를 청산하는 것만이 새로운 역사를 써가는 출발점이라는 역사적 상식을 되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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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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