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타임스 장철영
“그런 부분은 개인마다 다르기에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중요한 점은 각기 상대편 분야와 영역을 존중하면서 서로를 인정하면 특별한 문제는 없지 않겠는가. 웬만큼 이해되는 부분은 별로 말 안하고 (스트레스 줄까봐) 가만히 있는 편이다.”
- 아내가 ‘장관’이 된 후 외조 역할이 더 커졌을 것 같은데.
“이전에 여성운동가의 남편으로 외조했던 것과는 역할이 좀 달라졌을 뿐, 특별한 점은 없다. 상하 개념? 그런 건 전혀 없다. 더구나 (장관 자리가 자리인 만큼) 아내가 이 자리에 오래 있겠느냐? 그래서 장관자리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일 잘하게 더 신경 써주고 싶다.”
- 20여년의 결혼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꼽는다면.
“여성운동연합 대표 시절, 아내는 어딜 가나 당당했다. 그릇된 것은 따지고 비판하고. 이제 장관이 됐으니 예전처럼 그렇게 못할 테고… 어떤 면에선 권력(?)이 약화됐다(웃음). 그래도 운동하던 것을 (장관이 돼) 실제 정책으로 밀고 나갈 수 있으니 보람 아닌가.”
- 두 분은 ‘평등부부’라 할 수 있을 텐데.
“서로의 형편에 따라 가정을 운영한다는 점에선 그렇다. 누구든지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밥상을 차리고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상대편을 깨워주고 등등. 그런데, 집사람은 장모님 손맛을 닮아서인지 요리를 아주 잘한다. 본래 머리도 좋고 눈썰미도 있어 누가 요리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한번 보면 더 감칠맛 나게 요리를 해낸다.”
- 여성문제에 대해 조언하는 편인가.
“관심은 많아도 토론은 잘 안 하는 편이다. 난 불쑥 의견을 말하곤 하는 스타일인데, 집사람은 꼼꼼히 따지고 들어 드러내놓고 토론을 하면 결론도 나지 않고… 내가 지는 편이다. 집사람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전문가 의견이나 요즘 쟁점화 되고 있는 주변의 여성문제 등을 전해주는 편이다.”
- 우리나라 여성문제 중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는.
“여성문제라기보다는 사회 전체적으로 빈곤, 농어민문제 등 소외계층의 현실이 바뀌는 것이 시급하다. 개인적으론 주위 사람들 모두 여성과 남성이 사이좋게 손잡고 살아주길 바란다.”
- 지 장관의 외동딸 교육은 독특했다고 들었다. 남편 입장에선 어떤가.
“난 내 안에 있는 모든 부성을 쏟아 딸을 키우고 싶었는데, 집사람은 ‘독립적으로 강하게 키우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내 입장에선 딸에게 더욱 더 관심을 갖고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집사람의 엄격함에 가로막혀 못해주기도 하고… 충돌이 좀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집사람이 딸 교육면에선 앞서간 것 같다.”
- 딸이 어떤 여성이 되길 바라는가.
“고학력 여성답게 자신이 받은 혜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기여하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구체적으론 국제기구 같은 세계 무대에서 역량을 발휘했으면 좋겠는데, 딸에겐 어느 정도 소양이 있다고 본다.”
- 마지막으로, 이 시대를 사는 남성들의 문제를 무엇이라 보는가.
“우선, 남성문제가 따로 있을까? 생리적 차별성은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적 인간’으로 겪는 남성과 여성의 문제는 같다고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이 같이 협력해 활동해야 한다. 그래야만 남성만이 일방적으로 가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주영길씨는 서울대 부설 인구 및 발전문제연구소 근무를 시작으로, 대한의학협회 기획연구실 연구원을 거쳐 1977년 의료보험 탄생의 시발점으로 설립된 전국의료보험협의회에 몸담았다. 이후 이 분야의 전문가로 일관, 2001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상임이사에 이르렀다. 그간의 공로로 보건사회부장관 표창(86년), 국무총리 표창(94년), 대통령훈장(석류장) 포장(98년)을 수상했다.
| | 이 부부가 사는 법 | | | 아내는 운동현장, 남편은 직장...같은 이상 실현 20년 동반자 | | | | 지은희 여성부장관과 주영길 국민건강보험공단 상임이사 부부는 같은 철학과 같은 사회적 이상을 갖고 만나 20여년 간을 함께 노력해왔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아내는 여성·시민사회운동으로, 남편은 이에 대한 사회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직장(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의 ‘한 우물 파기’와 아내 외조로 실현해왔다.
두 사람은 “부부간의 철학 공유는 기본”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주 이사는 오랜 사회생활 경험상 부부가 아무리 많은 이상을 공유하더라도 “둘 다 같은 일을 할 수는 없다. 나눠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한때 대학을 다니면서 당시 70년대 대학생들처럼 부패정권에 대한 나름대로의 항거도 했었다. 주 이사는 여전히 “항상 내겐 사회적 부채가 있다”는 말로써 사회운동 현장에서 직접 뛰지 못한 답답함과 늘 그 ‘현장’에 있었던 아내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지은희 장관과 주영길 이사는 사회학 동기인 한 친구의 약혼식에서 첫 대면을 했다. 지 장관과 주 이사 역시 각각 이화여대와 서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기에 축하객 중에 섞여 있었다. 주 이사는 지 장관을 보는 순간 “열정과 지적 영리함, 서울내기다운 세련됨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병역 중이었던 주 이사는 경제적 독립을 못했기에 지 장관에게 적극적인 프로포즈를 할 순 없었다. 그는 제대 후 6개월만에 안정된 직장을 잡자마자 32세 동갑내기인 지 장관과 결혼했다.
그들의 결혼식은 당시 지인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신부 신랑 동시 입장에다가 사회자도 여성(신혜수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부의장)이었기 때문. 결혼식에 대한 이 기발한 아이디어는 부부 서로 거의 공동으로 냈지만, 주장은 남편 주 이사가 더 강력히 했던 것 같다. 단, 주 이사는 “서울내기라 지방(전남 목포) 촌놈인 나보다 더 발이 넓어 아내가 실행력(?)은 더 뛰어났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만큼 주 이사는 합리적인 사고로 아내의 여성운동을 뒷받침할 준비가 결혼 초기부터 단단히 돼 있었던 셈.
주 이사는 처음에 그가 반했던 아내의 이런저런 점에다 결혼생활을 통해 알게 된 그녀의 알뜰살뜰함과 애교를 장점에 덧붙였다. 그러나 그가 무엇보다도 아내의 장점으로 꼽는 것은 그녀에 대해 느끼는 절대적인 신뢰감. 그는 지 장관을 곁에서 지켜보며 “과격하지도 않고 일 처리도 합리적”이라며 일련의 경험을 통해 “분별력이 있어 늘 바른 결정을 내릴 것을 확신하곤 했다”고 말했다.
지 장관은 주 이사와 결혼하기 전 선후배로부터 그에 대한 칭찬을 많이 들어 이미 호감은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결혼생활을 하면서 느낀 문화적 이질감으로 여느 부부들처럼 싸우기도 많이 했다.
“기분이 내켜 영화를 보러가자 해도 이 사람은 ‘영화 볼 거 뭐 있냐. TV보면 되지’ 하는가 하면, ‘딸에게 피아노 한 대 사주자 하면 ‘피아노는 동네 교회에 한 대 있으면 되지’ 이런 식이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재산은 공동명의로 돼 있느냐”는 질문에 “공동명의로 할 재산 자체가 없다. 단, 집은 이 사람(주 이사)의 수입으로 마련한 거니까 남편 명의로 돼 있다”는 부부. “가끔 가다 화나는 일도 있고 속상한 일도 있지만… 결혼은 운명이라 후회하지 않는다”는 이들 부부에게선 여느 부부와 다름없으면서도 사회적 이상을 20여년의 세월 속에 녹여낸 범상치 않은 조화가 느껴졌다.
/ 우먼타임스 김유진기자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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