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다 호수의 황홀한 설경

북위 40도, 일본 기타도호쿠 기행 (12) - 아오모리현

등록 2003.08.21 22:19수정 2003.08.2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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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도와다 호수의 겨울

도와다 호수의 겨울 ⓒ 박도

2003년 2월 10일 일 흐리다가 눈

04: 00, 간밤에는 송별회로 오랜만에 술도 마시고, 또 일행들과 진지한 토론으로 늦게 객실로 돌아왔다. 나그네의 객수 탓인지,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정이 넘은 후에야 잠들었다. 하지만 예삿날처럼 일찍 눈이 떠졌다. 수건을 들고 대욕탕에 갔으나 아무도 없었다. 혼자서 온천욕을 마냥 즐기다가 객실로 돌아왔다.


05: 30, 화장대 서랍을 열었더니 영어와 일어로 된 성경, 나무로 된 퍼즐게임 상자, 휴지, 바느질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였다.

a 구로다와  작별하면서

구로다와 작별하면서 ⓒ 박도

서울에서 출발 전, 이번에 탐방하는 지방은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라 하여 마땅한 겉옷이 없어서 아들 파카를 빌려 입고 왔는데 윗주머니 안이 터져 있었다. 습관적으로 그곳에 돋보기안경을 넣으면 밑으로 내려가 여간 불편하지 않던 차 바느질 도구로 터진 부분을 촘촘히 꿰맸다.

바느질 기구는 5색 실에, 바늘 2개, 핀 2개, 호크 1개, 와이셔츠 단추 2개, 노인들을 위한 바늘에 실 꽂는 기구 1개 등 예쁜 통에 담겨 있었다. 방 안 구석구석에는 예쁜 소품들이 많았다.

오늘 일정은 이와테현을 벗어나 아오모리현으로 이동하여, 낮에는 도와다(十和田) 호수와 오이라세(奧入瀨) 계류 산책 취재와 밤에는 ‘도와다호 겨울이야기(十和田湖 冬物語)’라는 축제 취재다.

08: 40, 아오모리로 출발하려는데, 구로다가 그때까지 떠나지 않고 주차장까지 찾아와서 우리 일행을 전송해 주었다. 그는 내게 가볍게 포옹하고는 좋은 작품을 쓰기를 바란다고 기원해 주었다.


나는 그와 굳은 악수를 나누고 버스에 올랐다. 우리가 탄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구로다는 주차장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좋은 친구였다. 안내인 아이코씨가 마이크를 잡고 아침 인사를 했다. 그 새 기타도호쿠 각 현에서 나온 사람들은 모두 바뀌었는데 "자기와 운전기사만 바뀌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조크를 했다.

a 한적한 하나와 휴게소

한적한 하나와 휴게소 ⓒ 박도

북으로 달린 탓인지 적설량도 더 많아지고 고속도로 언저리 산림도 더 우거졌다. 산의 조림이 계획적으로 소나무, 삼나무, 너도밤나무가 군락을 이뤄 자라고 있었다. 군데군데 눈사태로 나무들이 쓰러졌다.


온 산하가 눈 천지로 고즈넉하기 그지없었다. 일본은 지진이 매우 잦은 나라라 지나치는 다리의 교각이 우리나라보다 배는 두껍고 수효도 훨씬 많아 보였다.

아오모리로 가는 중간에 하나와(花輪)라는 휴게소에 들렸다. 일본 고속도로 휴게소는 그 규모가 무척 작고 조용했다. 우리나라처럼 요란치도 않고 가게에는 점원도 거의 없었다. 대부분 무인 판매대만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a 나무에 달린 오미구찌

나무에 달린 오미구찌 ⓒ 박도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휴게소 앞 한 나무에 오미쿠지(소원을 담은 쪽지)가 마치 꽃처럼 달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교통안전’, ‘가내화목’, ‘입시합격’, ‘풍작기원’, ‘소원성취’ 등등 그런 내용의 오미쿠지에다가 사탕을 꽃처럼 달아두고 있었다.

버스는 눈이 쌓인 높은 고갯길을 굽이굽이 유연하게 올랐다. 길옆에는 눈이 자그마치 3미터 정도로 쌓였다. 도로 한가운데만 빠끔히 뚫렸다. 이즈미야 기사는 노련하게 비탈길을 잘도 오르내렸다.

눈길은 막힌 듯 하면서도 다시 나타나기를 거듭 반복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설경이었다. 선경(仙境)이란 이런 곳을 두고 말함일 테다.

10: 10, 도와다 호수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학카(發荷) 전망대에서 잠시 쉬었다. 곳곳에는 ‘낙설주의(落雪注意)’라는 팻말이 붙었다. 전망대에 오르자 도와다 호수 전경이 펼쳐졌다.

도와다 호수는 약 2백만 년 전에 화산의 대분화로 생긴 호수로, 둘레가 약 44킬로미터요, 수심 이 423미터나 되는 칼데라 호라고 한다. 드넓은 호수와 황홀한 설경에 취해 살아있다는 행복감을 만끽하면서 버스에 올랐다.

a 도와다 호수로 가는 길, 길 옆에는 눈이 3미터는 쌓였다

도와다 호수로 가는 길, 길 옆에는 눈이 3미터는 쌓였다 ⓒ 박도



a 도와다 호수로 가는 길

도와다 호수로 가는 길 ⓒ 박도



a 학카 전망대 진입로

학카 전망대 진입로 ⓒ 박도



a 눈에 파묻힌 학카 전망대 찻집

눈에 파묻힌 학카 전망대 찻집 ⓒ 박도



a 학카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와다 호수

학카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와다 호수 ⓒ 박도



a 광활한 도와다 호수

광활한 도와다 호수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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