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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에 명언이 있다. '금연은 쉽다. 그러나 실천은 어렵다.' 정말 그렇다. 금연이 쉬우면 왜 흡연이 문제가 되겠는가? 담배 태우는 사람치고 금연을 한두 번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게다.
지금 애연가들 중에도 담배를 수십 번 더 끊었지만, 번번히 실패한 사람이 대부분일 게다. 나도 여러 번 금연을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했다. 그래서 이제는 가족에게 내 말의 신뢰도를 위해 함부로 금연을 선언할 수도 없었다.
글 쓰는 사람으로 흡연은 창작을 돕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더 없는 비법 같아서 내가 절필을 하지 않는 한 담배를 끊을 수 없다고 나는 금연을 아주 포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원고지 앞이나 컴퓨터 자판기 앞에 앉으면 담배 생각부터 먼저 났고, 그것을 참으면 다른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아서 글자 한 자 못 썼다.
그래서 한때는 내가 절필하느냐, 금연을 하느냐로 심각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안팎에서 정히 흡연을 닦달하면 명예 퇴직을 한 후 아무도 살지 않은 깊은 산골로 가서 혼자 살면서 마음대로 담배를 태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까지도 해보았다.
내가 자력으로 담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아내는 금연학교에 입교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과 함께 금연교육을 받는 게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학교에서 이따금 보여주는 금연 캠페인 비디오도 몇 번 봤지만 어디까지 홍보용으로 보일 뿐이었다.
이런 내 처지를 알고 양호 선생님이 마침 흡연 학생들이 금연침을 맞고 있으니 한번 맞아보라고 했다. 그 침을 맞으면 행여 담배 생각이 나지 않고, 담배를 태우면 금세 담배 연기가 싫어지나 싶어서 맞아봤으나 한 시간도 안 돼 흡연의 욕구가 일었다.
휴게실로 가서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자 맛이 더 좋았다. 또, 누군가 금연 보조제를 줘서 그것도 써봤지만 역겨움만 날 뿐, 금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2002년 새해 초에 동해안 정동진으로 해돋이를 보려고 갔다. 막 해돋이를 보고 뒤를 돌아보니 산이 시뻘겋게 타올랐다. 불기둥은 바람이 불자 무서운 기세로 옆 산으로 옮아갔다. 산림청 헬기가 여러 대 와서 호숫물을 담아다가 쏟고 소방차가 달려오고 공무원들과 주민들이 산으로 올라가서 한참만에야 겨우 불길을 잡았다. 그날 불은 누군가 등산객이 버린 담뱃불이 원인이었다고 소방관이 말했다.
그 몇 해 전에도 동해안 일대에서 산불이 나서 엄청난 산림 가축 재산 인명 피해가 났다. 그 산불 중 일부는 등산객들이 무심코 버린 담뱃불이 화재의 원인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몹시 충격을 받았다. 내가 무심코 버린 담뱃불로 화재가 발생하면 '이것이야말로 크나큰 범죄행위다. 사람뿐 아니라 말 못하고 타죽는 동식물에게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악이다'라는 생각이 번뜩 일어났다.
그리고 그해 겨울 어느 수업 시간, 휴게실에서 담배 한 대를 빨고 수업시작 종소리를 듣고 출석부를 챙겨 막 교실로 들어가서 인사를 받자 말자 교탁 앞에 앉은 학생이 "선생님 담배 태우시고 곧장 들어오셨지요"하면서 책상을 뒤로 물릴 때, 나는 이제야 결단의 순간이라고 느꼈다.
다행히 내가 학교 교사였기에 다행이었지 만일 학원 강사였다면 누가 수강하겠는가? '고객이 왕'인 시대라 할지라도 교사가 학생의 비위에 영합해서는 안 되겠지만, 결코 학생에게 혐오감을 주는 교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학생들은 옛날과는 달라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 그런 학생들을 이미 사라져버린 교사의 권위로 윽박지르면 그 아이들은 승복하지 않고 튄다. 이게 신세대 학생의 특성이다. 시대는 엄청나게 변했다.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도태되거나 낙오하기 마련이다.
TV에서는 이따금 이주일씨가 코에다 호스를 끼고 나와서 금연을 호소했다. 코미디가 아닌 유언처럼 남기는 진지한 호소였다. 또 어느 책에서 본 "담배를 태우는 사람과 키스를 하는 것은 재떨이와 키스를 하는 것과 같다"라는 글을 보고 이렇게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에게 간접 흡연 피해를 주는 것도 내가 담배를 태우는 자유 이상으로 소중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내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전 학교를 금연지대로 만든다는 통보가 내려왔다. 어느 애연가 교사는 일제 시대 때도 유신 때도 없었던, 히틀러보다 더 한 횡포라고 흥분했지만, 그의 말이 옳다고 호응해주는 이는 극소수였다. 이미 대세는 교육청의 통보대로 흘러갔다.
그런데 전 학교를 금연지대로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수업이 끝나면 교문 밖으로 나가서 한 대 태우고 들어와서, 다음 쉬는 시간에 또 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화장실에 가서 쭈그려 제자들과 함께 태우거나, 교내 으슥한 곳에서 태울 수밖에.
만일 그런 내 모습을 어린 제자가 보고 얼마나 한심하게 여길까 생각하니 다음 학기에는 담배를 끊든지, 학교를 그만두든지 양자택일하기로 했다.
드디어 금연 실천 날을 2002년 3월 2일 개학날로 잡았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성공하면 저절로 알려질 테지. 그해 3월 1일 자정, 남은 담배를 실컷 태우고 남은 담배와 쓰레기봉투의 담배꽁초도 죄다 갖다 버렸다. 라이터도 담배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폐기처분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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