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출세예술단' 공연에 흠뻑 빠지다

북소리 노랫가락에 맞춰 몸이 절로 들썩...

등록 2003.08.23 07:17수정 2003.08.2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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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시골 오일장을 기웃거리다보면 옛 향취가 묻어나는 것들을 만나게 된다. 그 옛 것을 만나게 되면 아련한 추억들을 떠올리게 되고, 현대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편리함이나 세련미는 없지만 오히려 소박함과 투박함의 미가 마음 깊은 곳의 향수를 떠올린다. 그 중의 하나, 간혹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엿장수들의 흥겨운 광대놀이는 아직도 면면히 이어져 오는 것 같다.


'나출세예술단'의 공연
'나출세예술단'의 공연김민수
8월 22일부터 남제주군 법환동에서 제4회 한치축제가 시작되었다. 가족들과 함께 그 곳을 찾았는데 제대로 잘 간 것 같다는 느낌은 행사장 초입에서 만난 장돌뱅이들의 신나는 공연을 보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엄연히 '나출세예술공연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장돌뱅이라고 하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를 일이다. 걸걸한 목소리로 북소리에 맞추어 부르는 노랫가락, 그 가락 하나 하나는 지나가던 행인들의 발목을 붙잡더니 이내 온 몸을 들썩거리게 만든다.

김민수
참으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예술단'을 보았다. 사진을 찍자 요염한 포즈를 취해주는 장돌뱅이의 친절함으로 웃음바다가 되어버린다. 공연장 한쪽에 호박엿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거하게 한판 놀아주고 공연료로 호박엿 하나 사주면 되는 아주 값싼 공연료는 서민들에게도 큰 부담이 없고, 안 사도 타박하는 법이 없으니 얼마나 따스한 공연문화인가?

어린 시절 장날이 아니더라도 동네마다 약장수들이 돌아다니며 무술시범을 보이기도 하고, 광대놀이도 하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그렇게 끌어모아 놓고는 꼭 "애들은 가라, 가!"해서 궁금증을 더하게 했던 기억들, 그렇다고 갈 아이들도 아니라서 어른들의 가랭이틈으로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 기어코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다 보았던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김민수
'광대'는 인형극이나 가면극 같은 연극이나 줄타기, 땅재주 같은 곡예, 소리 등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네 사회에서 광대는 그리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기에 천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공연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고, 오랜만에 질펀지게 웃으면서도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어쩌다가 저런 것을 할꼬'하는 은근한 비웃음같은 것들이 있었다. '천한 것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사라진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김민수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동네마다 서커스단이 다니면서 공연을 하던 때가 있었다. 서커스단이 들어오면 공터에 천막이 쳐지고, 몇 차례의 안내방송만 있으면 인근 마을까지 소문이 다 난다. 텔레비전도 귀하던 시절, 그래서 만화방에서 얼마를 내고 만화영화나 70년대 중반에 한창 유행하던 프로레스링을 보던 어린 시절에 서커스단은 얼마나 큰 볼거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입장료가 있으니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은 아이들은 감시의 소홀함을 틈타 천막의 틈새로 몰래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걸려도 크게 꾸중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관중이 많아야 서커스단도 신이 아니까.


김민수
신나게 꽹꽈리와 북소리만 울려도 저절로 어깨춤이 덩실덩실 나오는 이들이 우르르 장돌뱅이들과 하나가 되어 춤을 춘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공연만 거하게 할 뿐, 엿을 사라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호박엿을 사달라는 아이들에게 '잠깐만'을 몇 번이나 했는지, 언젠가 말하겠지 했지만 그냥 공연에만 열중할 뿐이다.

나는 그것이 더 좋았다. 꼭 사라고 해야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팔려고 하는 것인지 아는데, 그리고 이렇게 오랜만에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었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아주 작은 것을 파는 이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상도가 있었고, 예술혼이 있었다. 참 따스했다.

김민수
이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물질을 얻는데 이렇게 많은 즐거움을 주면서 물질을 얻을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될까? 풍족하지는 않아도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 하면서 아련한 추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은 또 얼마나 될까?

그들의 공연은 20여분간 계속 되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자발적인 기립박수(이미 서있었지만 앉아 있었더라도 일어났을 것이다)를 보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도 상품(호박엿)을 선전하지 않았다.

한치축제를 둘러보고 나가는 길에 사갈 요량으로 허기를 달래기 위해 축제를 위해 마련된 간이식당에 들어가 앉아서 간단히 요기를 하는데 커다란 엿판을 머리에 이고 손님들 사이를 오간다. 자원해서 호박엿을 사는 이들의 틈에 우리들은 혹시나 호박엿이 떨어져서 못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까지 난다.

아주 기분 좋게 호박엿을 사서 아이들 입에 넣어주고 나도 한 개 집어 입에 넣어본다. 제대로 된 호박엿이다. 이에 달라붙지 않으니….

오늘은 제대로 된 예술공연, 제대로 된 호박엿, 제대로 된 상도정신 모두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상쾌했다. 이천원 짜리 호박엿 하나 파는데도 저렇게 열과 성을 다하는데 과연 우리의 현실은 그러한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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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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