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찾아 떠난 여행(88)

하얀 꽃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등록 2003.08.23 08:11수정 2003.08.2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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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만나다 보면 그 특징에 따라서 나누기도 하고, 피어있는 꽃에 따라서 나누기도 합니다. 편가르기를 하는 것 같지만 꽃이야 계절 따라,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에 어우러져 피어있으니 간혹은 편가르기를 적절하게 하면 더 재미있는 꽃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꽃 여행을 하면서 요즘에 만난 하얀 꽃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갯기름나물
갯기름나물김민수
먼저 갯기름나물부터 소개해 드립니다. 갯기름나물의 꽃은 무성지지만 그리 예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지 모릅니다. 해풍을 맞으며 자란 탓도 있겠지만 그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땅이 척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때로는 태풍이 불어오는 해안가에서 자라려면 뿌리가 깊어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겠겠지만 줄기도 튼튼해야 합니다. 이 모든 조건들을 갖추어야만 해안가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는 것이죠.

갯기름나물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상황을 탓합니다. 물론 상황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맞이하는 이의 마음자세에 따라서 희망이기도 하고, 절망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맥문동아재비
맥문동아재비김민수
맥문동과 관계가 있는 꽃이겠지요. 맥문아재비, 아마 맥문동의 삼촌뻘 되는 꽃일 것입니다. 이파리나 꽃 모두가 맥문동에 비해서 큽니다. 그리고 꽃의 색은 순백색입니다.

꽃 그림을 그릴 때 노란 색, 빨간 색은 많이 사용하지만 하얀 색을 사용하는 경우는 많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눈을 돌려보니 이외로 하얀 색 꽃이 많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민수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말 중에 '백의민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색'이 상징하는 바가 많지만 저는 '순결함 또는 깨끗함'이라는 이미지를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마치 잘 정제된 쌀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듯한 맥문아재비. 보릿고개를 넘겨야만 했던 시절에는 맥문아재비를 보면 하얀 이팝이 먹고 싶어서 군침꽤나 흘렸을 것만 같습니다. 배고프던 시절, 눈요기라도 하시라고 주렁주렁 하얀 쌀알을 내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붉은사철란
붉은사철란김민수
붉은 빛은 거의 없는데 이름은 붉은 사철란입니다. 꽃을 카메라에 담다보면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아직도 붉은사철란을 생각하면 오싹합니다.

큰딸과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큰딸이 "아빠, 저기 저 꽃 알아?"합니다. 물론 처음 보는 꽃이었습니다. 수풀 우거진 곳에 피어있던 붉은사철란, 그것을 찍기 위해 수풀들을 정리하는데 손가락에 시원한 느낌이 스르르 지나갑니다. 뱀이었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뱀이니 사진을 찍으면 되지만 기어다니는 곤충과는 별로 친하지 않아 서둘러 사진들을 찍었습니다. 대략 다섯 컷을 찍었는데 급하게 찍었더니 제대로 나온 것이 없습니다.

흔한 것이 아니었는데 하는 아쉬움에 며칠 후 다시 그곳을 찾아 붉은사철란을 찾아보려 했지만 그날만 잠시 모습을 보여 준 것이지 오늘 또 보여줄지 아냐며 그 모습을 보여주질 않습니다.

풍란
풍란김민수
언제 보아도 시원하게 생긴 풍란. 여름철의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원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가만히 자연을 들여다보면 사람의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가장 자연스러움을 보게 됩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 인공의 흔적이 있는 곳에는 뭔가 아쉬움이 있고,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서 아쉽습니다.

란(蘭)은 예로부터 우리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에서 더 풍성하게 자랄 많은 것들이 사람들이 소유함으로 안방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계절을 잃어버리고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연의 상태에서 자기 시절에 따라서 핀 꽃들의 향기는 인공적으로 꽃을 피운 것들과는 비교할 바가 못됩니다.

향기에 취해 그윽하게 바라보고는 그냥 발길을 돌릴 줄 아는 넉넉한 마음들을 보고 싶습니다.

한련초
한련초김민수
오늘의 마지막 꽃은 한련초입니다. 개망초인가 해서 눈길을 거두려 할 때에 '나는 개망초가 아닌데요'하며 아이보리색의 진한 꽃잎을 활짝 열었던 꽃입니다. 나의 작은 텃밭 한 귀퉁이에서 큰 키를 자랑하며 자라던 한련초. 그래서 텃밭이나 길가에 자라는 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래의 한련초를 해안가에서 만나게 되었답니다.

김민수
같은 꽃인데 피어있는 곳에 따라서 모양새가 다릅니다. 텃밭은 아무래도 환경이 좋아서인지 키가 컸는데 해안가에서 자라는 한련초는 줄기를 땅에 바짝 붙인 채, 이파리는 마치 갯금불초의 이파리처럼 강인했습니다.

'아, 같은 꽃이라도 환경에 따라서 다른 모습으로 적응을 하고 있구나.'
그러나 신기한 것은 꽃 모양은 같습니다. 색도 같습니다.
'그래, 어떤 환경에서도 너의 모습을 지켜내고 있구나. 한련초라는.'

그래요. 우리 사람들도 어느 곳에 있든지 '사람'이라는 모습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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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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