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맨 왼쪽)가 15일 오후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8.15 국민대회'에 참석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이 집회에서는 북한 '인공기 화형식'이 벌어졌고, 북측은 이를 문제삼았다. 최 대표의 오른쪽은 독일인 의사 폴러첸.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어이 대구까지 가서 일을 내고 말았다.
얼마전 인공기 소각 사건으로 북한의 U대회 참가를 무산시킬 뻔 했던 보수단체들이 이번에는 대구 U대회 미디어센터 앞에서 시위를 가졌다. 그들이 들었던 플래카드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김정일 타도하여 북한주민 구출하자."
"김정일이 죽어야 북한동포가 산다."
다른 곳도 아니고 U대회장 한복판에서, 다른 말도 아니고 자신들의 지도자가 죽어야 한다는 플래카드를 보게 되었으니, 지나가던 북한 기자단이 분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른 집에 초대받아갔는데, 그 집 사람들이 자신이 존경하는 아버지를 가리켜 '죽어야 할 사람'이라는 욕설을 해댄다면 누구나 모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결국 북한 선수단은 "재발 방지가 안되면 선수단 철수도 고려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고,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우리 정부의 사과와 주동자 처벌을 요구했다.
북한 선수단의 철수여부, U대회의 성공여부를 떠나 우리로서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손님을 초청해 놓고서 손님에게 더할 수 없는 모욕을 가한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이다.
문제의 보수단체들은 어떤 심사로 그 곳에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북한의 참가속에 U대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특히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에 대한 환영분위기가 높아가는 것이 그토록 못마땅했던 것일까. 남의 잔치가 잘되는 것이 배 아픈 불청객이 가서 훼방을 놓은 꼴이다.
'보수단체'를 표방하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보수'의 이름에 어떻게 먹칠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전혀 자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측이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해야 하며, 정부는 이런 사태를 방관한 것에 대해 재발방지를 약속할 것”을 촉구하고, 만약 정부가 북한측 요구를 조금이라도 들어주거나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정권 탄핵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오늘(25일)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들의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한다.
갈수록 태산이다. 서울에서의 인공기 소각 파문으로도 모자라 대구로 가서 그런 행동을 했고, 여차하면 U대회 내내 훼방을 놓을 태세이다. 정부와 경찰은 실정법상의 허점들 때문에 이들의 행동을 쉽게 제지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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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누가 이들을 말릴 수 있을까. 나는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이들을 말리고 나설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최 대표는 문제의 인공기 소각사건이 있은 8·15 대회에 참석하여 이들 보수단체와의 연대를 과시했었다. 대북정책에 관한한 최 대표의 생각과 이들 단체의 주장 사이에는 상당한 친화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수 정당이라는 책임을 의식한다면,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마땅히 보수단체들의 자제를 요구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나서야 한다. 그것은 이들 보수단체가 한나라당을 자신의 우군으로 여기고 있기에 그러하다. 또한 한나라당이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을 자임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보수정당을 표방하는 한나라당은 지금같은 보수단체들의 일탈행위에 대해 비판과 자제의 목소리를 내야할 책임이 있다. 그래야 지난 8·15 보수단체집회에 참석해 결과적으로 인공기 소각행위를 부추키고 U대회에 차질을 가져올 뻔한 책임이 다소나마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980∼90년대초 무렵, 당시 야당을 이끌던 DJ는 재야 민주화운동세력에 대해 '미운 행동'을 심심치않게 되풀이했다. 반정부투쟁이 고조되던 정국의 고비길에서 그는 종종 재야운동세력의 자제를 촉구하여 결과적으로 투쟁의 열기를 냉각시키곤 했다.
거기에는 정국상황에 대한 자신의 주도권 확보, 자신의 안정된 정치이념적 위치 확보 등의 전략적 고려가 깔려있었다. 그래서 종종 민주화운동 진영으로부터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그는 재야와의 선긋기에 나섰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