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13

악인은 지옥으로 (3)

등록 2003.08.25 12:48수정 2003.08.2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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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비는 본시 조상인 이정기의 애병이었다.

그것은 평로치청군이 낙양과 장안으로 각종 생활물자의 보급하는 주요 보급로 중 용교와 와구를 점령한 후 변주에 주둔해 있던 당나라 군사 이십만을 궤멸시킨 후 보무도 당당하게 장안으로 진격할 즈음 느닷없는 비보를 보내게 한 장본인인 구판걸이 훔쳐갔던 것이다.


그것이 진품임을 알게 된 이회옥은 향을 피우고 북방을 향하여 대례를 올려 조상의 물건이 원래대로 돌아왔음을 고했다.

그러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사리사욕 때문에 은혜를 원수로 갚은 구판돌의 후손들을 반드시 징계하겠다고 결심한 바 있었다.

화담 홍지함이 말하길 조상들 가운데 장손들은 대대로 이정기와 이회옥이라는 두 이름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것은 이정기라는 걸출한 인물이 조상이라는 것을 기리자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이정기와 이회옥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정기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뤄야 한다는 염원에서 빚어진 전통일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제 이정기의 후손은 자신뿐이다. 따라서 이름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굳은 맹세 또한 한 바 있었다.


어찌되었던 제왕비는 몹시 예리하여 손을 가까이 대기만 하여도 베어질 것만 같은 예기가 느껴지는 물건이다. 게다가 시험삼아 확인해 보니 강도 또한 무적검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아무리 가공할 위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손에 없으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이…? 야합, 죽어랏!"
쐐에에에에에엑!
"어엇! 어이쿠! 으윽!"

배루난은 이회옥이 저항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는지 미친 황소처럼 날뛰면서 점점 더 가공할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무적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십여 그루의 대나무들이 속절없이 베어져 나가는 바람에 금방 주변이 공터로 변하고 있었다.

방금 이회옥은 제왕비를 생각하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무적검이 목덜미 부근을 스치고 지난 것이다.

다행히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상처 부위에서 선혈이 솟구치면서 금방 낭자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다 죽는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그래, 맞아!'
계속 죽림을 파고들던 이회옥은 방금 무적검이 베어낸 대나무 하나를 잡아들었다. 그리고는 공터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이에 배루난은 드디어 걸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괴소를 베어 물었다. 상대에겐 병장기가 없고 공터는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으므로 이제 이회옥을 죽이는 것이 시간문제라 생각한 것이다.

공터까지의 거리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불과 오 장 정도 되는 거리를 가기까지 반 각 정도나 걸렸는데 그동안 이회옥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었다.

그의 의복은 상의 하의 할 것 없이 여기저기가 베어져 나풀거리고 있었고, 그곳에선 어김없이 선혈이 샘솟고 있었다.

크크크! 뒈질려면 뭔 짓을 못해? 야압! 자빠져랏!"
"흥! 이번엔 어림없다."

"크크! 그깟 대나무 쪼가리로 뭘… 죽어랏!"
쐐에에에엑―!
파직―!

"야압! 운룡포연!"
고오오오오―!
"허억! 캐에에엑!"

도주하던 이회옥의 갑자기 돌아서면서 잎사귀가 무성한 대나무를 집어들자 배루난은 조소를 터뜨렸다.

감히 무적검을 상대로 그깟 잎사귀 무성한 대나무 따위로 뭘 어쩌겠느냐는 의도에서였다. 하여 그것을 일 검에 베면서 동시에 이회옥의 수급 또한 베려 마음먹고 무적검을 휘둘렀다.

같은 순간 이회옥 역시 대나무으로 마주쳐갔다. 즉각 격돌하였고 배루난의 예상대로 대나무는 아무런 힘도 없이 베어졌다.

문제는 다음에 발생되었다.
무적검에 대나무가 베어진 직후 그것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방향을 바꾸는가 싶더니 배루난의 인후부(咽喉部)를 향하여 쏘아져갔다.

이회옥이 창안한 운룡포연은 찌르는 초식으로 세 개의 장애물까지 피할 수 있는 절정 봉술이다. 그런데 이 순간 이회옥이 휘두른 것은 예사 봉이 아니라 끝이 날카롭게 베어진 죽창이었다.

배루난은 뭔가가 번뜩인다 싶자 즉각 무적검을 휘둘러 이를 막으면서 황급히 몸을 빼려하였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섬전의 속도를 능가할 수 있겠는가!

무적검의 공세를 교묘히 피한 죽창의 날카로운 끝이 인후를 파고드는 순간 그의 두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떠져 있었다. 동시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무런 죄도 없는 어린 소녀를 육중한 마차로 깔아뭉개 죽여놓고도 그깟 계집아이 둘을 죽인 것 가지고 웬 소란이냐고 하였던 악인이 지옥으로 향하는 첫발을 내디디며 지르는 소리였다.

"네놈은 죽어 마땅한 놈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목숨만을 살려주려 하였거늘… 지옥에나 가라!"

"끄으으윽! 끄으으으윽! 끄으으으윽!"

인후부를 관통 당해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없던 배루난은 목에 꼽혀 있는 죽창을 잡아 빼려하였지만 빠지지 않았다.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뒤덮고 있었기에 조금의 힘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뇌리로 선무곡에서 마치로 어린 소녀들을 깔아 죽이던 영상이 스쳐 지남과 동시에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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