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과 시련을 딛고 인생을 늦게 꽃피운 사람들

'남자의 후반생'을 읽고

등록 2003.08.26 14:32수정 2003.08.2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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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전 ‘채근담’에 간인지간후반절(看人只看後半截)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보려거든 그 후반생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후반부의 삶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궁팔십(窮八十) 달팔십(達八十)이라는 고사도 전한다. 중국 주나라 무왕 때 정승이던 강태공이 벼슬을 하기 전까지 80년을 가난하게 살았지만, 80세에 정승이 된 후 80년을 호화롭게 살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역사에서는 후반부 인생을 잘 열어간 인물에 대한 사례가 별로 없다. 오히려 인생의 후반부를 불행하게 비참하게 끝을 내는 사례가 더 많다. 얼마전에 IMF이후 명예퇴직한 은행지점장 출신이 좌절과 실의를 이기지 못하고 알콜에 의존하다 급기야는 자살한 사건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

요즘 우리 경제는 40∼50대 직장인이 설 자리가 없게 만들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뒷전으로 물러나 인생의 날개를 허무하게 접기에는 억울하다. 어떻게 하면 인생 후반을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인생의 후반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간 중국역사의 인물을 다룬 ''남자의 후반생''은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격려가 되고도 남을 책이다.

중국은 땅이 크고 역사가 깊어 현대에 와서도 되새겨 볼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

‘남자의 후반생’(모리야 히로시 지음, 양억관 옮김, 푸른숲 펴냄)은 중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 22명의 인생을 다룬 책이다.

돼지를 키우며 마흔이 넘어 공부를 시작해 여든 가까운 나이에 승상이 된 제나라 사람 공손홍. 그는 젊은 시절 지역의 옥리였으나 죄를 짓고 관직에서 물러난 뒤로는 돼지를 길러 생계를 꾸렸다. 그러다 마흔이 넘어서부터 ‘춘추의 잡설’을 공부해 조정 박사로 임명됐다.


학문에 뜻을 둔 지 20년이 지나서다.그러나 이내 무제의 미움을 사 낙향하고, 또 다시 인고의 10여 년 세월을 보내고 그는 마침내 문관의 최고위직인 승상에 올랐다. 인생이란 늙바탕에 들어 시작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해 보인 대표적인 경우다.

평생 도전정신으로 살아간다면 그 삶은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동진의 명장 도간이 두드러진 예다. 지방출신으로 중앙관리가 된 도간은 모함을 받아 좌천되지만 조금도 굴하지 않고 더욱 분발해 미래의 길을 열어간다.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100장의 기와를 날라 지붕에 올렸다.“왜 일부러 이런 힘든 일을 하십니까?”라고 부하들이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언젠가 다시 중앙으로 불려갔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체력이 떨어지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지 않느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산 그는 이처럼 성실하고 도전적인 삶을 살았기에 훗날 ‘동진의 기둥’이라 불릴 수 있었다.

또한 좌절과 시련을 딛고 인생을 늦게 꽃피운 인물들이 있다. 중이 공자, 공손홍, 주매신, 위징이 여기 속한다.

중이는 진(晉)나라의 공자로 태어났지만 왕위계승분쟁에 휩쓸려 19년이나 망명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귀국해 왕위에 오른 것이 그의 나이 예순두 살 때였다.

춘추시대 말기에 태어난 공자는 일찍이 정치에 뜻을 두었지만 두터운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내 노(魯)나라에 등용된 것이 쉰이 넘어서였다.

그리고 공손홍은 한(漢) 무제(武帝)를 보좌한 승상이었다. 그는 마흔살 때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돼지를 길러 생계를 유지하면서 학문에 정진했다. 그런 그가 조정에 출사한 것은 예순이 되어서였다. 그러나 한번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예순여섯에 다시 발탁되어 승상의 자리에 까지 올랐다. 무서운 노인파워이다.

주매신 역시 한나라 무제 때 사람이다. 그는 너무 가난해서 아내에게 버림받았지만 , 결국 쉰살이 되어서 기회를 잡아 인생을 꽃피웠다.

위징은 당나라 태종 이세민을 모신 충신이다. 그가 태종의 신하가 된것은 마흔일곱 살 때였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꽤 많은 나이이다. 그때까지 그는 많은 좌절을 겪었다. 그러나 태종의 신하가 된 후로는 거침없이 간언하여 태종의 치세를 태평성대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사람들은 보통 사람이면 포기하고 말았을 그런 처지와 나이에 인생의 꽃을 피웠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던 것일까? 그들에게는 천운도 있었다. 특히 공손홍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운도 실력이 있을 때 찾아오는 법이다. 평소에 실력을 쌓지 않았다면 자신에게 찾아오는 운을 살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편 고난과 좌절에 무너지지 않고 끝내는 업적을 달성한 인물도 많다. 소진, 장의, 사마천, 사마광 등이 있다.

소진과 장의는 전국시대에 활약한 대표적인 세객(說客)이다. '세객'이란 제후에게 부국강병책을 제시하고 외교전략을 자문하는 사람으로 현대의 정치참모 내지는 경영컨설턴트에 해당한다.

그들의 무기는 오로지 세치 혀뿐이어서 제후에게 유세하여 성공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소진과 장의는 정치세력간의 이합집산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거나 유지하는 방식인 '합종연횡'이라는 정치명제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동서고금의 정치역사에서 합종연횡이 적용되지 않는 정치가 없을 정도이다.

소진과 장의는 합종연횡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숱한 박해와 유랑생활 속에 모진 굴욕을 감수하면서 결국은 성공했다.

사마천은 불후의 명저 <사기>의 저자이다. 사마천은 궁형이라는 굴욕과 치욕을 당하고도 사기를 완성했다. 사마천은 한나라 때 태어나 대를 이어 하급관료로서 나라의 역사기록을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장군 이릉을 변호하다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극형인 사형보다 더 치욕적인 형벌로 여겨지는 궁형을 자처하여 살아남아 불후의 명작 <사기>를 남겼다.

'남자의 후반생'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인생의 후반부를 내리막길이나 황혼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인내로 새로운 인생의 지도를 그려간다. 그렇다고 그들은 결코 노욕(老慾)이나 노추(老醜)로 떨어지지 않았다.

중국 뭇 위인들이 인생의 후반에서 좌절하거나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정진할 수 있었던 정신적 배경을 보면 그것은 한마디로 도전정신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전정신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이다.

남자의 후반생 - 소중한 내 남은 인생 후회 없이 행복하게 사는 법

모리야 히로시 지음, 양억관 옮김,
모멘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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