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초강경 선회... 6자회담 먹구름

[분석] 노무현 정부, 미국 강경파에게 휘둘리지 말아야

등록 2003.08.27 13:09수정 2003.08.2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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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초강경 입장 선회 조짐으로, 한반도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베이징 6자 회담장에 먹구름이 잔뜩 끼고 있다. 당초 회담 전에 부시 행정부는 북한 핵문제는 물론이고 미국의 대북한 안전보장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회담이 임박하면서 다시 강경 기조로 급선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즈>는 8월 27일자 신문에서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폐기하기 전에 북한에 어떤 양보도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입장을 6자 회담 미국 대표인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를 통해 북한을 비롯한 회담 참가국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미국측의 강경 입장으로의 선회는 다시 대북정책의 주도권이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 '극소수의' 온건파에서 딕 체니 부통령,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강경파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특히 회담을 코앞에 두고 10여년동안 북한 문제를 전담해온 잭 프리처드 국무부 대북 특사가 사임한 것은 미국 내에서 강경파들의 입지가 강화되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프리처드는 지난 7월말 존 볼튼 국무부 차관이 북한에 대해 강경 발언한 것을 '개인의 의견'이라고 말했다가, 의회 및 행정부의 강경파들로부터 집중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인 지난 1월 13일 오전 인수위원회 집무실에서 방한중인 켈리 미 차관보와 만나 환담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인 지난 1월 13일 오전 인수위원회 집무실에서 방한중인 켈리 미 차관보와 만나 환담하고 있다.주간사진공동취재단

부시 행정부 협상의지 약해

기실 부시 행정부가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핵 폐기를 요구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는 문제의 발단에 있어서 미국측의 제네바 합의 불성실 이행 및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이 근본적인 요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북한에게 먼저 핵억제력을 포기하라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미국이 자신을 무장해제를 시켜놓고 공격하려고 한다는 의구심을 강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핵폐기가 단시일 내에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과거 핵사찰 활동만으로도 3-4년이 걸린다며, 출범 직후부터 핵사찰 수용을 요구해왔다. 그런데 현재 북한의 핵문제는 제네바 합의 체결 이전의 과거 핵활동 뿐만 아니라, 고농축 우라늄 문제, 사용후 연료봉 재처리 문제, 1-2개의 핵무기 보유 문제 등 대단히 복잡하고도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사찰이 이뤄지더라도 수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핵포기 의사 표명이 아닌 핵 프로그램 폐기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은 부시 행정부의 협상 의지를 근본적으로 회의하게 만드는 가장 중대한 요인이 되고 있다. 더구나 핵문제 뿐만 아니라 미사일, 생화학무기, 인권 문제 등도 문제삼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협상을 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부시 행정부가 강온파 사이의 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냉온탕을 왔다갔다하는 것은 향후 한반도 위기와 관련해서도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일시적으로 소수파인 온건파가 주도권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미국 내 정치권력의 내부적인 역학관계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강경파가 다시 주도권을 잡고 판을 뒤엎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다자회담을 수용했고 베이징 6자 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추가적인 상황 악화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동시 행동의 원칙에 따라 북한의 핵폐기 과정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철회를 동시적으로 진행하자는 제안까지 내놓은 마당에 부시 행정부가 초강경 기조로 선회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 내 강온파의 대결 변수가 '외부'보다는 '내부'에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단호한 무게중심 견지해야

이미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베이징 6자 회담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론화하지 않고 6자 회담에 대한 기대를 피력해온 것은 비판적 전망이 가져올 '자기충족적 예언'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물론 벌써부터 비관할 필요는 없다. 미국이 아무리 초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6자 회담의 유일한 행위자는 아닐 뿐더러, 남한, 중국, 러시아 등이 북한의 핵문제와 안전보장 문제를 동시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기존에 내세웠던 전제조건을 유연화하면서 동시적 해결을 해법으로 제안하고 있는 것은 적어도 논리나 명분상으로 북한이 미국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성실한 자세로 회담에 임하지 않을 경우, 6자 회담을 '시간벌기' 및 '명분쌓기'로 보고 있는 미국 내 강경파들의 '검은 의도'가 결코 현실화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주지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한의 입장은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노무현 정부가 회담 과정에서 미국측에 경도된 모습을 보일 경우, 중국과 러시아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대북한 포용정책 및 평화공존의 기조를 유지해왔던 남한 정부가 '북한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줄 경우 부시 행정부는 '시간은 우리편'이라는 인식을 강화시킬 것이고, 반대로 중국과 러시아는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노무현 정부가 한미관계나 힘의 논리에 매몰돼 북한의 불신을 키워줄 경우, 최후의 카드로서의 남북한 대타협의 가능성마저 유실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현재 가능한 최선은 6자 회담을 통한 문제해결이지만, 이것이 실패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의 지지와 협력 속에서 남북한 대타협을 시도하는 것 이외의 현실적 대안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6자 회담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미국은 본격적으로 '외교의 실패'를 운운하면서 본격적인 대북한 제재 및 봉쇄에서부터 무력 사용 계획까지 "모든 옵션"을 구체화시켜나갈 것이다. 반대로 북한 역시 미국의 협상 의지에 절망과 분노를 표하면서 '핵 억제력만이 살 길'이라는 인식을 강화시켜 나갈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다자회담의 유지·관리 차원에서 적극적인 해법을 제안하는 동시에 차기 회담 일정을 잡는 것을 이번 회담의 마지노선으로 설정해야 한다. 또한 미국에게는 강경파들이 원하는 것처럼 대북강경책에 동참하지 않을 것임을, 북한에게는 핵 시위를 강화시키지 말 것을, 그리고 일본에게는 납치 문제를 북일국교교섭 과정에서 해결할 것을 주지시켜야 한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에게는 적극적인 중재자의 역할을 요구하면서 이들 국가와의 신뢰구축을 통해 한반도 정세가 미국의 강경파들 손에 휘둘리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데 외교적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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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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