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솔아, 돌잔치 다시 할까?

첫아이의 돌잔치가 엉망이 됐습니다

등록 2003.09.02 11:28수정 2003.09.0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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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생후 일주일 뒤의 은솔. ⓒ 김미선

지난달 27일쯤이던가. 돌잔치를 5일 앞두고부터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엔 미열만 약간 있는 것이어서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이의 몸이 38.6도을 기록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병원으로 직행했더니 목감기란다. 다행히 평소보다 약간 보채고 고열만 느껴질 뿐, 먹는 것과 자는 것, 그리고 노는 것은 별 이상이 없었다.

토요일 아침, 열도 좀 내리고 아이의 컨디션도 나아진 것 같길래 아예 감기기운을 뿌리뽑는 게 좋겠다 싶어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의 말이 "아직 목은 좀 부었지만 열은 내렸으니 하루 네 번 먹이던 약을 이제 세 번씩 먹여도 되겠다"고 한다.

다행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의 얼굴이었다. 고열 때문에 붓기 시작하더니 눈두덩이 두툼한 게 그 크던 눈이 3분의 2로 작아졌다. ‘돌 사진’ 찍기가 영 꺼려질 정도였다.

“애가 아파서 얼굴과 눈이 붓는데 그걸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찬 물수건으로 좀 눌러주세요.”

찬물수건과 찬물에 꼭 짠 녹차티백으로 아이의 눈두덩을 눌러주길 여러차례, 그런데 이번엔 또다른 곳에서 ‘노란불’이 켜졌다. 아이의 배가 온통 열꽃으로 뒤덮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마도 고열이 내리면서 열이 몸밖으로 빠져나오는 듯했다. 열꽃은 열이 내리면서 생기는 것이니 아이의 몸에는 나쁘지 않을 것이었지만 잔치를 앞둔 시점에서의 ‘열꽃’은 나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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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쯤 됐을 때의 모습. ⓒ 김미선

때맞춰 아이도 좀더 보채기 시작했다. 돌잔치 앞두고 아이들이 병치레하는 일이 있다던데 은솔이가 ‘딱’ 걸린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배와 사타구니에만 열꽃이 폈을 뿐, 얼굴은 괜찮았다.

밤새도록 자다깨다를 반복하는 아이와 함께 뒤척거리다가 날이 밝았다. ‘돌잔치’날이다.

아이의 얼굴부터 확인했다. 괜찮다. 휴…. 다행이다.

그런데… 우유를 먹이자마자 얼굴에도 열꽃이 확 피어오른다. 눈은 붓고, 얼굴은 얼룩덜룩한데다가 잠을 설친 아이는 더 심하게 보챘다.

순간 두 가지 사건이 떠올랐다.

8월 중순경 엄마가 담석으로 입원했을 때, 예상외로 수술이 늦어지자 언니들은 나에게 “아무래도 은솔이 돌잔치를 미뤄야 하지 않겠냐?”고 했었다. 원래 은솔이의 돌이 9월 8일이기 때문에 한주 쯤 미뤄도 날짜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거듭 고민한 끝에 내가 내놓은 답은 “안돼“였다. 이제와서 모든 걸 변경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엄마도 수술 후에 10일간의 회복기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곧이어 셋째 형부도 예기치않은 수술을 하게 됐지만 역시 난 날짜를 미루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지만 그때 연기했더라면….

또 하나는 우리 가족을 둘러싼 잔치 징크스다.

이상하게도 우리 가족은 큰 행사를 치를 때마다 예기치않은 사건을 겪어왔다. 가장 큰 예가 98년 우리 부부가 치른 엉망진창 결혼식이었다. 예식을 용인에서 치렀는데 그날따라 성묘객들로 고속도로가 붐벼, 내쪽 하객들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예식시간보다 20분이나 지난 뒤에야 엄마·아빠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을 고속도로 상에 둔 채, 부케도 없이 결혼식을 겨우겨우 치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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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놀이방에서. ⓒ 김미선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돌잔치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끝났다. 색동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 한두 장만이 은솔의 돌잔치를 기억할 수 있는 증거물로 남았다.

은솔은 행사시간 3시간 중 2시간여를 행사장 구석에 세워놓은 유모차에서 잠든 채 보냈다. 행사의 주인공인 은솔의 얼굴을 보려던 사람들도 잠든 얼굴만 잠깐씩 들여다보며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표했다.

1년동안 건강하게 자란 은솔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살겠다고 약속하고 싶어 마련했던 그날의 잔치는 정작 행사의 주인공이었던 은솔에게만은 ‘달갑지않은’ 일이었을 게다.

1일 오전, 은솔의 온몸에 붉은 점이 가득하다. 이제 손등 발등은 물론 온몸으로 열꽃이 번진 것이다. 병원에서는 5일 이내에 열꽃(바이러스성 발진)은 없어질 것이라며, 이제 감기기운도 없다고 한다. 은솔이도 어제보다는 훨씬 컨디션이 좋아진 것처럼 잘 논다.

은솔의 갑작스런 ‘고열감기’가 한주를 연기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아서였거나, 우리 가족의 ‘잔치 징크스’ 때문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돌아오는 9월 8일 은솔의 진짜 첫생일에는 진하게 미역국이라도 끓여서 건강해진 은솔에게 먹여주고, 가족들만의 기념사진이라도 찍어야겠다.

은솔아, 그 때 기억나니?
이 편지는 엄마가 주는 돌선물이야


은솔아. 그때 기억나니?

1년 전 어느날, 새벽 5시경 엄마는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잠에서 깨어났단다.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던 나였지만 엄마가 되려고 그랬던 건지,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구나. 병원에 전화를 하고, 아빠를 깨우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샤워까지 하고 난 뒤 병원에 도착하니 7시가 좀 넘은 시간이 됐어.

너는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강하게 세상밖으로 나오길 갈망했고, 엄마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에 힘겨워했지. 통증을 느낀 지 1시간 반여가 지났을까? “응애”소리와 함께 네가 세상밖으로 얼굴을 내밀었지.

손가락, 발가락을 어루만지면서 건강하게 태어나준 너에게 정말 많이 감사했단다. 많은 사람들이 “고놈, 효자네”라고 할 정도로 초산답지 않게 너는 성급하게 너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3.31㎏. 네가 세상에 안긴 무게였단다.

그리고 너와 엄마의 ‘전쟁’이 시작된 거야.

사실, 다른 엄마들에 비하면 너와 나의 1년은 ‘전쟁’이라고 할 것까지는 못돼. 한밤중에 일어나서 젖달라고 보챈 날도 거의 없었고, 원인모를 ‘앓이’를 하며 엄마를 긴장시킨 날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쉽지만은 않았단다. 새벽까지 놀려고 하는 너와 잠에 취한 나의 싸움은 처절하기까지 했어. 너를 안고 온 집안을 왔다갔다 하다가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 잔 날도 있었잖아. 퍼뜩 깨어보니 네가 나에게 안겨 옆으로 누워있더라구. 일자형 기저귀를 사다놓고, 벨트가 없어서 스카치테이프로 기저귀를 고정시켰던 날도 있었지. 지금 생각하면 몰라도 너무 몰랐던 엄마야, 그치?

엄마의 출산휴가가 끝났을 때, 너도 이제 모유 대신 우유만을 먹기 시작했단다. 아울러 넓은 마루에 너혼자 방치되는 일도 흔했어. 왜냐구? 엄마가 근무를 시작했기 때문이야. 다행히 엄마는 재택근무를 할 수가 있었지만, 일하는 시간동안은 너 혼자 놀아야 했단다.

엄마가 일을 하기 위해 너에게 했던 몇가지 조치(?)를 알려줄까?

니가 누워서 지내던 시절은 신생아용 유모차가 간이침대였단다. 엄마의 컴퓨터 옆에 유모차를 갖다놓고, 너를 그 위에 눕혔지. 그래도 그 때는 나았다. 좀더 커서 니가 기어다니고, 앉기 시작했을 때는 말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었지.우유먹을 때가 됐거나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넌 항상 혼자였다. 엄마는 늘 그게 미안했는데,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라도 엄마 곁에 두고 있었어.

하지만 그런 날도 오래가지 못했단다. 너의 왕성한 발육을 그런 식으로 두고볼 수만은 없었거든. 7월부터 너를 놀이방 오후반에 보냈지. 아직 돌도 채 안된 너를 놀이방에 맡기려니까 ‘내가 일을 그만둬야 하나’하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다행히도 넌 적응을 아주 잘하더구나. 그런 면에서는 내가 복을 타고난 엄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단다.

최근 너는 하루종일 가재도구를 끌고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닌단다. 어찌나 활동이 많은지 얼굴에도 상처가 없는 날이 없을 정도야. 참, 그 날 기억나니? 8월 17일날 할머니한테 갔을 때 말야. 뭔가를 잡지 않고 서본 적이 없던 니가 할머니 앞에서 두발로 서고 한발씩 앞으로 나갔잖아. 모두들 놀라서 "우와“ 환호성을 질렀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엄마가 너의 걸음마를 위해 준비해 둔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도 뛰어나갈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이제 또다른 짧은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엄마도 이제 곧 다른 직장인들처럼 출퇴근을 해야되거든. 오후동안의 이별도 길다면 긴 것이었는데 이제 하루종일 너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거야.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아마도 지나간 1년이 너와 내가 가장 오랜시간을 함께 한 시기로 남을 것 같구나.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같이 놀아주지 못한 게 지금와서 왜이리 후회스러운지 모르겠구나.

서툰 초보엄마였음에도 건강하게 잘 자라준 너에게 너무 고맙다. 앞으로 엄마가 직장일을 하는 동안에도 너는 하루가 다르게 부쩍 커 나가겠지. 하루하루 그걸 확인하면서 엄마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은솔아, 사랑해. / 김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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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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