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레랑스와 사회과부도의 추억! 내가 찾은 파리

다모토리의 유럽 포토여행 (1) - Paris

등록 2003.09.03 03:26수정 2003.09.0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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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누구든지 평생에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 중 하나. 나에겐 98년도 월드컵 취재 때 한 번 찾고 난 뒤 이번이 꼭 두 번째 방문인 셈이지만, 또 언제 올는지 기약이 없는 그런 인생이어서 그랬는지 이번 여행은 파리가 전해주는 느낌을 온전하게 다 경험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왜냐면 계원예고 1학년생들과 함께 떠난 유럽문화기행이란 그렇게 길지 않은 패키지 여행 형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보따리에서 내가 눈대중으로 확인한 파일과 필름들의 대부분이 파리라는 도시의 기억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a 에펠탑과 세느강의 풍경

에펠탑과 세느강의 풍경 ⓒ 최승희

파리는 나에게 과연 어떤 도시였을까? 개인적으로 나에게 파리는 역사적인 코드와 상업적인 코드가 진하게 맞물려 있는 그런 도시 중 하나였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인들에 대한 상당한 거부감과 한 시대를 잔인하게 지배했던 로코코식 발상의 오만함에 대한 궁금증들은 에두아르드 푹스의 그 유명한 '풍속의 역사'를 통해 샅샅이 이해한 바, 그들이 만들어냈던 문화적 유산이 이 작은 도시에 고스란히 다 묻어 있다는 경외감이 첫째로 그 하나였고 또 다른 하나는 개발 드라이브 정책으로 잔인한 경제성장을 이뤄낸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마지 못해 마임흉내를 내듯 따라 했던 그 샹젤리제 거리가 안겨준 유행이라는 코드의 상상력이 나머지 한 부분이었다.

a 국회의사당 앞

국회의사당 앞 ⓒ 최승희

파리라는 도시를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놀랍게도 7살 때였다. 사실 그때는 띄엄띄엄 글자를 알아갈 때였고 당시 아이들이 즐겨 하던 놀이로 도시글자 찾기라는 놀이가 있었는데, 그 내용인 즉슨 형과 마루에 앉아서 낡아빠진 사회과 부도를 펴놓고 도시 이름을 부르면 술래가 그 도시의 단어를 찾아내는 게임을 하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한 동안 사회과 부도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형은 다른 쪽으로 일부러 시선을 유도한 뒤 내게 '빠리'라고 크게 외치고 친구들과 앞 마당에서 구슬치기를 하러 뛰쳐 나갔다.

a 파리의 시가지 풍경

파리의 시가지 풍경 ⓒ 최승희

난 아니나 다를까 사회과부도가 뚫어져라 들여다 보다가 결국 덴마크 어디서 왔다 갔다 하다가 칠레 근처에서 그만 손을 들고 말았다. 그 좁은 유럽 땅덩어리 속에 있는 빽빽한 도시들을 찾는 것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게다. 그게 나와 파리라는 도시의 첫 인연이었다. 그리고 형은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하며 마당에서 사라졌다.


"야, 임마 넌 어떻게 빠리도 모르냐?"

젠장, 초등학교도 안 들어가고 저 때문에 돈 없어서 유치원도 제대로 못간 동생이 그 나이에 어찌 빠리를 알겠느냔 말이다. 난 바스티유 앞 광장을 걸으며 난 문득 형이 한 말을 떠올리곤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낡아빠진 추억의 사회과부도에서 결국은 찾지 못한 그 조그만 유럽의 한 도시를 난 지금 이렇게 걷고 있었던 것이다.


a 파리의 시가지 풍경 2

파리의 시가지 풍경 2 ⓒ 최승희

유치하게도 난 파리에 단 3일 동안만 머물도록 스케줄이 짜여져 있었다. 3일이라… 어떻게 한 도시를 3일 동안 있으면서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으랴. 그러나 방법은 있다. 이러한 이유 덕분에 지구상에 쏟아져 나온 가장 강력한 해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간접경험(책과 대화)이 아니던가.

내가 보지 않고 남들이 미리 보고 듣고 써내려 간 그러한 책들엔 파리의 역사, 문화, 그들의 전통과 습관들. 또 패키지로 똘똘 뭉친 고속 관광코스까지 죄다 더구나 너무나 상세하게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직접 이곳에 살지 않아도 볼테르의 똘레랑스를 자연스레 얘기하고 알랭 들롱의 마고 카페의 에피소드들을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a 파리 15구역과 노틀담 성당 주변

파리 15구역과 노틀담 성당 주변 ⓒ 최승희

사실 서울 한복판에서도 정말 지겹게 들어왔던 에펠탑과 샹젤리제 거리 그리고 개선문과 루브르로 대표되는 유럽의 관문도시 파리는 사실 나에겐 정말 생소한 도시였다. 족히 몇 세기는 지났을 법한 중세의 낮은 건물들과 온통 숲으로 가득 찬 공원하며 도시를 가로질러가는 세느 강 위로 넘나드는 퐁네프의 흔적들까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랑 너무나 다른 모습들이 사실 나를 생뚱맞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 역시 사람 사는 곳 아닌가. 조그만 돌 무덤으로 이루어진 오래된 도로 위를 바스락거리며 하루 동안 걸었다.

a 파리의 휴일아침

파리의 휴일아침 ⓒ 최승희

그리고 생각한다. 늘 그렇지만 여행은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해준다. 나의 삶의 자취, 그리고 역정들…. 때론 가끔씩 필요한 판단력까지 쉽게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내가 파리에 와서 비록 38도가 넘는 폭염으로 정작 파리시민들은 다 도시를 피해 휴가를 간 유령도시일지언정 강력하게 한 가지 느낀 것은 사람 사는 도시라는 형태에 대한 새로운 느낌이었다.

난 꼬박 3일 동안 미친 놈처럼 셔터만을 눌러댔다. 내가 느끼는 파리보다는 차갑고 때론 음습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어떤 카메라들이 혹은 렌즈들이 만들어내는 그런 앵글을 바라보며 파리를 느끼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카메라가 본 파리는 편평한 도시였다. 고작해야 몽마르뜨 거리만이 파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작은 언덕배기였을 뿐이다.

그런 도시 전체가 아예 높은 건물이 없다. 물론 미테랑 대통령이 만들었다고 하는 라데팡스 지역에 가면 상업빌딩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지만 절대주의 마침표를 작렬한 쇼핑의 화신 마리 앙뜨와네트가 내려다 보던 그 거리는 지금도 고스란히 살아있었다.

a 에펠탑이 보이는 풍경

에펠탑이 보이는 풍경 ⓒ 최승희

도시 전체에 거지가 반이었던 시절이 있었던 18세기 파리의 낙후된 지역들을 제외하곤 온전하게 다 남겨져 있는 도로와 건물들은 그 자체로 파리를 살아있게 하는 힘으로 비춰졌다.

그 낡고 고풍스러운 거리를 걸어보았는가…. 한 때는 세계를 장악하고 불어로 음담패설을 지껄이는 것이 가장 세련된 귀족의 전형이 되었을 만큼 강력한 절대왕권을 통해 자존심을 곧추세웠던 그 무슈. 사람들이 걸었을 그 자리를 걸어보았는가…. 시민대혁명으로 새로운 브루조아 시대를 열고 그 사람들은 그 거리의 작은 카페에서 소통을 하는 문화를 성숙시켰다. 똘레랑스의 출발이었던 셈이다.

인간이 누려야 할 삶에 대한 다양성을 강력하게 인정하고자 했던 그네들의 소망은 아직도 그 흔적을 파리 곳곳에 남겨두고 있다. 파리의 밤, 솅 미셀 거리에서 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a 파리의 카페거리

파리의 카페거리 ⓒ 최승희

폭염이 진정된 여름 밤. 삼삼오오 몰려 나온 사람들은 카페에 턱을 대고 무엇인가 골똘하게 그리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연스러운 하루의 일과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 적지만 사상적인 토론과 많게는 정치적인 입장표명까지 모두 다 이 카페라는 작은 원탁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파리의 거리가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도로 위에 즐비한 노상 카페 덕분인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이런 문화는 나에겐 참 혁명적인 토대로 비춰졌다. 카페골목으로 이어지는 대로변 입구에 있는 작은 음식점 앞에서 주인이 접시를 깨고 있다. 이는 들어오는 손님들의 액운을 쫓아준다는 믿음에서였다. 물론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점잖은 상술이겠지만….

17세기 말에 정착되어 근 3백 년의 역사를 지닌 프랑스 파리의 이 카페문화는 새침떼기 같은 파리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삶의 한 형태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a 생 미셸의 거리의 악사

생 미셸의 거리의 악사 ⓒ 최승희

파리의 야경은 참으로 특별하다. 써머 타임이 지쳐 나가 떨어질 만큼이나 끈질긴 잡답들로 이루어지는 솅 미셀의 카페거리…. 음습하지만 파리의 고전적인 역사를 지니고 있는 뒷골목. 바스티유. 작은 언덕을 아름답게 꾸며놓고 예술혼을 카피하는 몽마르뜨. 그리고 퐁피두와 오르세, 거대한 궁전 루브르까지….

파리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었다. 그 역사는 지금 사람 사는 도시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일생을 즐길 권리는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만큼만 폭염 속에 노인네들을 방치하는 변질된 개인주의 또한 철저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도시는 사람의 역사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고 한걸음 걸을 때마다 앙시앵 레짐의 끈적거림과 수많은 달따냥들의 구두 밥 소리가 들리고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상상으로 인한 우연적인 경험만은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a 생미셸을 찾은 시민들과 관광객 모습

생미셸을 찾은 시민들과 관광객 모습 ⓒ 최승희

어렸을 적 사회과 부도에서 보았던 작은 도시…. 늘 그렇지만 나의 기대는 파리에서 3일이라는 기간만 추억이 허락되었던 것이다.
그 추억을 오래 남기기 위해 난 오늘도 미친 놈처럼 스캐너를 하루종일 돌리고 또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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