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다모를 아시오?

다모의 성공비결, 그것은 '신선함'이다

등록 2003.09.03 14:39수정 2003.09.03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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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bc.com

MBC 미니시리즈 <다모(茶母)> 홈페이지 시청자 의견이 77만건을 넘어섰다. 지난 7월 28일부터 방영됐으니, 매일 2만여개 이상의 글들이 꼬박꼬박 올라온 셈이다. <다모>의 대단한 위세는 SBS 간판드라마 <야인시대>와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작년 7월부터 전파를 타기 시작한 <야인시대>의 시청자 의견이 14만 5천여건 정도, 이쯤 되면 폭발적인 반응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최초의 HD 카메라 촬영, 편당 2억원이라는 제작비가 만들어낸 결과인가. 하지만 다모의 액션 영상을 <와호장룡>의 그것과 견주기는 힘들다. 무술 연기로만 놓고 봤을 때 아직 하지원은 장쯔이보다 몇 수 아래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한국의 자연미를 잘 담아낸 화면 또한 아름답기 그지 없지만, 극장에서 <취화선>을 본 사람들에게는 감탄의 정도가 밋밋할 수 있다. 그럼 왜 사람들은 이토록 다모에 열광할까.

먼저 참신한 소재에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명성황후>도 아니고 <장희빈>도 아닌 여자 천민을 주인공을 내세운 드라마는 확실히 독특한 구석이 있다. 더구나 상대(비록 12회 방송에서 오빠 장성백으로 바뀌기 시작했지만) 역시 출신 성분이 우울한 서자다. 황보 윤이 양반이라면 혹시 님과 함께 야반도주라도 꿈꾸겠지만, 홍길동과 달리 입신양명의 기회를 잡은 서자에게 그와 같은 일탈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짓이다. 당연히 그들의 사랑은 절제를 수반한다. 함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내가 너에게 무엇이더냐."

그래서 사람들은 황보 윤의 대사에 가슴을 친다. 가끔 언론 보도를 통해 '인스턴트 사랑 세대'로 매도됐던 바로 그 젊은이들이. <다모>는 그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절절하게 묻고,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신분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해 그 어떤 교과서보다도 진지한 고민을 이끌어낸다.

허나 시청자를 TV 앞으로 끌어당기는 미끼가 좀 많았는가. 따라서 사람들이 <다모>에 열광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다모>의 제작 방식이다. 알려진 것처럼, <다모>는 전체 14부중 12부가 1년 동안 사전 제작됐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첫 방송부터 생소한 경험을 하지 않았는가. 7월 28일 방영된 1부 첫 화면을 떠올려보자.

산과 강이 발 아래 흐르고 그림 같은 대나무숲이 펼쳐진다. 누구? 햇빛을 배경으로 브라운관에 처음 등장한 얼굴(김민준, 장성백 분)은 낯설다. 맞은 편에는 하지원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와호장룡처럼 칼싸움을 한다. 잠시 후 말을 탄 관군들이 장성백의 뒤를 쫓는다. 궁지에 몰린 장성백 앞에 채옥이 칼을 들고 나선다. 챙 챙 챙. 그런데 장성백의 칼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 같다. 놀라는 채옥의 얼굴, 그리고 드라마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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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의 영상은 아름답다. 다모는 한국의 자연미를 멋지게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 imbc다모아

위 장면은 '다모가 뭔가 다르다'는 점을 강력하게 웅변하고 있다. 시청자의 궁금증을 먹고 사는 미니시리즈와 같은 연속극에서 결말을 예고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음 회에는 어떻게 될까, 나중에는 어떻게 끝나나'. 무슨 대단한 결말이라도 나올 것 마냥 쭉쭉 늘리다 결국은 아주 맥없이 시청자 의견에 따라 죽을 사람 살리고, 살 사람 죽였던 인기 드라마가 어디 한두 개였나.

따라서 <다모>는 사전 제작으로 완성도를 높이지 않았다면 또,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승부가 가능하다는 제작진의 판단이 서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작품이라고 봐야 옳다. 물론 여기에는 1990년대 모 스포츠신문에 연재 만화(방학기 작)로 검증을 마친 원작의 탄탄함도 작용했을 것이다.

정형수 작가는 "당장 붙잡아서 내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사랑이 이 작품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작가의 의도는 200% 달성됐다. 누구와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죽지 말아야 하는데, 시원하게 복수에 성공했으면. 이중 하나라도 시청자 의견이 봇물처럼 쏟아진다면 성공한 드라마로 평가받는 마당에, 이제까지 다모는 채옥과 황보 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뿐 아니라 오랫동안 헤어진 남매의 상봉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영화 <영원한 제국>을 연상시키는 궁중 내의 암투 묘사는 드라마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만큼 인과관계나 갈등구조가 시청자로부터 공감을 얻었다는 말이 된다.

사전 제작으로 시청률 부담에서 벗어난 신인 감독의 실험에도 당연히 여유가 넘쳐흐른다. <아줌마> <국희> 등의 조연출을 거쳐 처음 연속극 연출을 맡은 이재규 PD는 전통 사극의 상식을 뛰어넘는 화면을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1부에서 도성으로부터 장터를 지나 골목 사이로 빨려 들어간 카메라가 포도청에 도착하는 장면이나, 발빠른 마축지(이문식)가 멈춰 버린 세상 사이로 쏜살같이 달아나던 장면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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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열성팬은 '한성 좌포청 신보'라는 다모 인터넷 신문을 만들어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네이버fsmali

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펄떡거리던 신선한 연출이 줄어드는 것은 조금 아쉽다. '혁명가 장성백이 지나치게 낭만적이지 않은가'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출연진의 부족한 액션 실력을 가려주는 역할도 맡고 있는 '방방 날아다니는 무술신'은 한편으로는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는 양날의 칼로 작용한다.

채옥이 연인을 구하려고 하늘같은 상감마마를 독대한다는 설정 역시 부담스럽다. 게다가 시체(?)가 살아나다니. 기경팔맥이 모두 끊겨 버린 채옥이 살아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다모>를 빠짐 없이 챙겨 보시던 어머니마저 "말도 안돼"라며 돌아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일개 드라마에 단순한 호감을 넘어 신드롬에 가까운 애정 표현을 하는 이유는 역시 '새로움'에 대한 반가움 때문일게다. 보기 딱할 정도로 시청률에 목을 매는 드라마에 진력이 난 사람들이 모처럼 사전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진 상식적인 드라마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으로 하체가 부실한 영화들이 판치는 요즘, <다모>의 성공은 영화계에도 귀감이 될 만하다. 왜 그렇게 고려인들이 중국 공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지 이해할 수 없어 머리를 쥐어뜯게 만들었던 영화, <무사(武士)>를 기억하는가. 리얼하고 현장감 넘치는 액션 장면때문에, 아니 안성기의 활 쏘는 모습만으로도 너무도 아까웠던 영화.

배우 오지혜는 한겨레21을 통해 "시나리오 작업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갑남을녀들을 등장시켜 그럴 듯한 뻥을 만들고 그걸로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일"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한국형 블록버스터중 상당수가 이와 같은 상식을 지키고 있지 않다. '그럴 듯한 뻥'을 만들기 위한 투자보다는 '대충 손질한 뻥'을 돈으로 땜질하기 바쁘다.

이 과정에서 블록버스터 규모만 비대해지고 있다. 와중에도 적지 않은 감독들이 원가 절감 차원에서 시나리오까지 써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 허덕이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다모>는 칭찬 받아 마땅한 드라마다. 새로움은 상식과 함께 할 때 빛이 난다는 교훈을 <다모>는 보여 주고 있다.

"길이라는 것이 어찌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 한 사람이 다니고 두 사람이 다니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법. 이 썩은 세상에 나 또한 새로운 길을 내고자 달렸을 뿐이오."

모쪼록 MBC가 장성백의 말을 잊지 않기 바란다. 또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제2, 제3의 <다모>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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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 윤이 채옥을 치료하며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말한 문제(?)의 장소 ⓒ imbc다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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