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화두는 언제나 '춤'"

도살풀이 추는 김한덕씨

등록 2003.09.04 08:56수정 2003.09.2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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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영
"제 화두(話頭)는 언제나 춤입니다."

대전시립무용단원 김한덕(36)씨. 그는 몇 안 되는 남자 무용수이자 전통춤 그중에서 도살풀이를 전문으로 하는 춤꾼이다. 경기도당 굿 도살풀이 춤은 죽은 자의 혼을 달래는 춤. 그는 무형문화재 도살풀이 보유자였던 고(故) 김숙자 선생의 춤을 최윤희 선생으로부터 전수 받았다.


“우리 전통 춤은 정형화된 춤이라기보다는 놀이문화 속에서 시작됐습니다. 시골 농부가 수확을 마친 후 막걸리 한잔에 취해 자신의 마음을 담아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처럼 말예요. 그래서 전 도살풀이를 좋아합니다. 정형화되지 않은 춤이기 때문이죠.”

무대화된 예술은 관객에게 보여주는 춤이다 보니 순수성이 사라진다고 아쉬워하던 그는 거짓의 자신이 아닌 참 자신을 찾기 위해 춤을 추는 이 시대 진정한 춤꾼이다.

그가 가진 커다랗고 해맑은 눈동자와 달리 녹록치 않았던 그동안의 삶이 그를 더욱 도살풀이에 매료시켰는지도 모른다.

“2년 전 저를 예뻐하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상여 앞에서 상복을 입고 즉흥적으로 춤을 췄어요. 제 모든 마음을 담아 춤을 추며 죽은 영혼을 달랬습니다. 눈물이 흘렀습니다.”
할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게 했다. 그리고 1년 전, 그는 또 다른 아픔을 겪었다.

“아이가 5개월째 유산이 됐습니다. 아이를 묻어준 다음 무덤에 우유를 뿌려주고 내려오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어요. 죽은 자를 위한 작품을 하겠다고.”


‘그대는 축축한 눈물 머금은 채/내 손닿지 않은 곳에/하얀 국화 꽃길을 열어 놓고 있다./아! 사랑의 정열을 채 피우지 못하고/시들어 버린 그대 영혼의 꽃잎은/훨훨 바람에 실려 애처로운 나비의 몸짓으로 울부짓는데.’

그가 창작한 ‘비창’이라는 작품의 일부다. 삶과 죽음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단원창작품으로 오디션에 선발돼 서울에서 무대에 올랐고 ‘대전 춤 작가전’에서도 의뢰가 들어왔으며 공연하는 모습을 MBC에서 방영하기도 했다. 개인 작품으로는 처음 무대에 올린 작품이었지만 많은 관심을 모았다.


6~7개월 전 고모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는 춤을 췄다. 흰 바지저고리에 도포를 입고 긴 수건을 들고서 말이다. 병원 사람이 모두 나와 그를 주시했다.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돌아가신 영혼을 위해 춤으로 위로 해 드리는 것이고 그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1년 동안 무용을 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4년 전, 허리를 다쳐 무용하기 어렵겠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기어 다닐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태는 안좋았지만 그는 이겨냈고 다시 춤을 추고 있다.

“내 몸에 무관심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아프다는 생각과 허리 다쳤다는 생각조차 잊어보자고 말이죠. 물론 물리적 치료도 병행했지만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어린 시절 그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무용이 아닌 연기였다. 다양한 삶을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에 연기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이후 그는 춤 공부와 더불어 뮤지컬 연기자로서 무대에 서고 싶은 생각에 무용을 시작했다. 발레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간 후 군에서 제대했지만 3년이라는 공백기간은 남성발레리스트에게 커다란 장애일 수밖에 없었다. 앞날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던 그는 전통춤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해오고 있다.

“도살풀이에 대해 잘못돼 있는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 논문을 썼어요. 외형적으로 도살풀이에 대해 다룬 것은 많아도 내형적인 부분은 깊이 있게 조명한 논문이 없었거든요. 뿌리를 알고 춤을 춰야겠단 생각에 장단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힘든 것도 있지만 그런 생각은 잘 안하고 살아요. 사람들이 저더러 아무 근심 걱정 없어 보인다고 하지만 왜 없겠어요. 단지 물이 흘러가는 데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물이 흘러가다보면 굽이치는데도 있고 잔잔한 데도 있듯이 단순한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부터는 도살풀이를 공식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라는 김한덕씨. 김씨는 춤을 추는데 있어 그 춤 속에 빠져든다. 동작부분에 신경 쓰기보다는 마음을 보내려고, 마음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기에 그가 표현해 내는 동작 하나 하나는 그의 마음이 전해져 생명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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