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감자싹이 나왔어!"

나의 작은 텃밭이야기

등록 2003.09.08 10:37수정 2003.09.0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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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심은 후 일기가 불규칙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 게릴라성 소나기가 내리다가 뜨거운 햇살이 내리 쬐기도 하고, 몇 날은 비가 오다가 또 몇 날은 불볕더위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곳 지역신문에도 불규칙한 날씨 때문에 감자가 썩어간다는 보도가 있었기에 올해 심은 감자는 거두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지난 장날 감자를 갈아엎고 김장무나 배추를 심을까 아내와 상의를 했고, 이번 장날까지도 싹이 나오지 않으면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이번 감자농사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김민수
작년엔 실패했던 호박농사. 그러나 올해는 주렁주렁 열려서 우리 식구가 다 먹질 못하고 이웃들에게 나눠도 주고, 호박범벅을 해 먹을 요량으로 늙히기도 합니다.

나이에 따라서 식성이 변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심고 가꾼 것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원래 호박반찬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형님은 호박을 무척 좋아하시는데 "형, 무슨 맛으로 호박을 먹어?"라고 묻기도 할 정도로 호박과 저는 거리가 멀었죠. 그런데 요즘은 호박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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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이거 심으면 감자가 많이 나오는 거?"

호박전을 해줘도 꿀떡, 호박지짐을 해줘도 꿀떡, 호박에 새우를 넣고 볶아줘도 꿀떡입니다. 아마도 내가 심고 가꾼 것이라 더 맛있게 느껴지는가 봅니다.

김민수
노랗게 익어 가는 호박이 가을임을 알려줍니다.
올해는 늦더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지리하게 계속 됩니다. 밭에 나가서 10여분만 일을 해도 온 몸이 땀투성이가 됩니다. 그래도 오히려 감사해야지 합니다. 저 따가운 햇살에 곡식들이 알차게 익어갈 것인데 내 한 몸 덥다고 '더위야 물럿거라!'하면 욕심이겠죠.


늙은 호박을 거두어 잘 두었다가 겨울에 호박씨를 빼서 씨앗을 받고, 호박씨도 까먹고, 호박범벅도 해 먹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몇 개는 서울에 사시는 어머님께 이렇게 농사지었다는 증거로 보내야 겠습니다.

김민수
콩은 거두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리는 작물입니다.
그런데 올해 콩농사는 풍년입니다. 술렁술렁 풀도 제대로 못 뽑아주고 방치하다시피 했는데 올해는 태풍이 없어 넘어지지 않아서인지 콩이 열린 폼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세상에, 저게 콩 하나에서 열리는 게 맞아?'할 정도로 많이 열린 콩을 보니 새삼 자연에게 하나님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씨앗, 생명을 품고 흙을 만나면 반드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때에 따라서 씨앗을 뿌리면 어김없이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검은콩이 영글어가는 작은 텃밭에서 느끼는 삶의 기쁨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기쁨입니다. 계산적으로만 생각하면 시장에 가서 중국콩 두어말 사다 먹는 게 훨씬 이익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농심이 아니잖아요.

저는 농민은 아닙니다.
그러나 농심(農心)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대략 감자를 놓고 싹이 나오기까지는 7-8일 걸리는 것 같습니다.
대략 감자를 놓고 싹이 나오기까지는 7-8일 걸리는 것 같습니다.김민수
감자 이야기 하다가 다른 이야기들로 넘어갔군요.

비록 작은 텃밭이지만 이렇게 하나 둘 이야기를 꺼내 놓다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다시 감자 이야기로 돌아가야 겠습니다.

아침에 밥상에 올릴 고추를 몇 개 따러 갔던 아내의 맑은 목소리가 아침을 깨웁니다.

"여보, 감자싹 나왔어!"

무슨 말인지….
분명 어제 저녁에 볼 때에도 기별이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니면 그냥 슬쩍 지나치느라 보질 못했나?

텃밭에 나가보니 정말 감자싹이 나왔습니다.

"어? 어제까지도 못 봤는데?"
"밤새 시합하듯이 나왔나 보지 뭐."
"그래, 다행이다. 우리 것이 나왔으니 다른 분들 것도 나왔겠지?"

우리 동네는 감자농사, 당근농사가 많습니다.
그래서 감자농사 흉년이 들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거든요. 요즘 동네분들이 감자를 놓고 걱정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밭마다 주렁주렁 실한 감자들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땀흘린 만큼의 대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잠시 밭심방을 가야겠습니다.
우리 텃밭에 감자를 심기 전날 아내와 제가 가서 도와준 감자밭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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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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