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흙알'이 순수한 우리 말인가요?김민수
오늘도 맨손으로 토란을 깠다. 푸른빛이 나는 것들은 북을 주지 않아 햇볕을 받아 그렇게 된 것들이니 내가 얼마나 농사를 건성으로 지었는가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추석이 되면 늘 어머니는 큰집 제사를 준비하러 가야만 했다. 한 동네이긴 했지만 명절 때마다 이어지는 제사로 인해 명절만 되면 남의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는 듯한 묘한 기분에 맛있는 음식들이 나와도 늘 배불리 먹질 못했다.
그때 추석을 며칠 앞두고 토란을 수확하면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올해는 우리도 집에서 토란국 끓여 먹자."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머니의 마음을 헤집는 소리인지 그때는 몰랐다.
수확하는 토란은 깨끗하게 손질해서 시장에 내다 팔 것이었고, 큰집 제사준비하고 돌아오면 새벽이요, 눈 잠시 붙였다 일어나면 또 큰집 일손 도우러 가야 할 판인데 어떻게 아들 놈 하나를 위해서 토란국을 끓이며, 토란국을 끓이자면 쇠고기 반 근이라도 있어야 할 터인데 얼마나 힘든 제안이었을까.
그런데 그해 추석, 나는 토란국을 집에서 먹었다. 적어도 세 그릇 이상을 먹었을 것이다.
"야야, 그렇게 맛있니?"
"응, 나 오늘 큰집에 안 가도 되지?"
"아니, 그래도 가서 친지분들에게 인사드려야지."
그때 어머님에게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놈의 말이 퍽이나 마음 아프게 남아 있었다는 것을 후에 알았다.
지금도 추석 때만 되면 "우리 막내에게 줄 토란국 끓여야지"하시며 손수 토란국을 끓이신다. 그런데 올해는 그 토란국을 먹지 못하게 되었으니 어머님도 서운하실 거고, 나도 벌써 서운하다.
그 서운함을 조금이라도 달래려면 작은 텃밭에 심은 토란을 캐서 손수 토란국이라도 끓여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토란은 어머님이 손수 보내주신 것을 심어서 거둔 것이기에 어머니의 손길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