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앞둔 익산의 북부시장 풍경기

대형 할인점에 잠식당하는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 시급

등록 2003.09.09 15:28수정 2003.09.0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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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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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서둘러야 하루장사 시작

약관에 들르는 날은 새벽 3시반이면 집에서 나온다는 배씨 할머니.
여산에서 오기 때문에 새벽부터 준비해야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지금은 아들 차를 얻어 타고 오기 때문에 버스 탈 때보다 시간이 많이 단축됐지만 그래도 6시면 집에서 나온다. 그것이 벌써 8년째이다.

밤 좀 사라며 대뜸 비닐 봉투부터 찾는 배씨 할머니의 장사 노하우는 1㎏의 밤을 종기에 담는데 눈금 하나 안 틀리고 눈짐작으로 한번에 올려놓는 정확성에 있다. 집에서 키운 밤은 작년에는 1㎏이 4천 원 하던 게 올해는 5천 원이란다. 그래도 재래시장만의 넉넉한 인심은 덤으로 한 주먹을 더 담아준다.

재래시장은 이름에서부터 고향의 냄새가 난다. 구수한 말씨름과 정겨움, 따스함이 묻어난다. 어릴 적 명절을 앞두고 엄마 손을 잡고 갔던 재래시장의 모습은 활기와 사람 사는 희망이 엿보인 곳이었다.

젓갈류, 양념류, 의류, 식육류, 건어물류, 혼수용품, 한약재, 참깨, 땅콩, 고추, 고구마 등 온갖 물건을 구입할 수 있어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던 재래시장. 이젠 하나 둘 대형매장에 잠식되어가고 추석을 5일 앞둔 지난 주말의 장터는 썰렁한 발걸음만 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장날에는 좀 괜찮다며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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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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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는 재미, 얹어 주는 인정이 담긴 곳

20년째 생선가게를 해온 한 시민은 “대형 마트가 편해서 그런지 젊은 주부들은 다들 그리로 가고 익산 돈은 서울로 가지. 대목 앞두고 갈수록 썰렁해져 장사하기 힘들다”며 하소연한다.

깔끔한 상품진열, 그다지 돌아다니지 않고도 세련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대형 마트들. 하지만 어디 사람 사는 곳에 편리함만 있을까. 힘들어도 부대끼며 한푼 깎는 재미, 한 주먹 더 주는 우리네 인심에서 사람냄새가 나는 것을…. 따지고 보면 우리 부모들이 힘들게 번 돈을 타지역으로 보내는 심정. 그래서 갈수록 힘들어지는 경제 앞에서 알 수 없는 탄식이 쏟아져 나온다.


요즘 같은 불황에도 대형 마트는 평소보다 20∼30%의 매출을 올리며 호황을 누리는 반면 썰렁한 재래시장은 서민층의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게 한다. 예년보다 10일 정도 앞당겨진 이번 추석. 불황과 일조량 부족으로 과일값이 지난해보다 올라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래도 과일값은 얼추 작년과 비슷하단다.

하지만 고추와 영글다 만 벼들로 고추값이 폭등할 것이라는 추측은 시장통에서 만난 야채 아주머니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고추는 잘 말린 태양초가 600g에 만 원 정도 하지. 엄청 올랐어. 작년에는 최고로 잘된 고추도 5천 원이면 사던 것인데 배로 올랐지. 김장할 때 돈 좀 들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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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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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급 배가 4개 만 원, 올랐다는 오징어도 4마리 5천 원

제수용이나 선물용으로 쓰이는 최상등급 과일을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예년에 비해 30∼40% 이상 올랐다고 언론에서는 줄기차게 보도하고 있지만 재래시장에서는 최상급 배가 4개 만 원, 사과는 한 개에 1500원이면 제수용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또한 배는 7.5㎏에 2만5000원, 사과는 5㎏에 3만 원이면 선물용으로도 아주 좋다. 포도 또한 한 상자에 1만 원에서 1만3000원이면 구입할 수 있고 참외는 큰 것 한 개에 1천 원부터 가격이 매겨진다.

북부시장에서 과일장사만 10년 가까이 해온 김 아주머니는 “과일값이 작년에 비해 특별히 비싸거나 맛이 없지 않다”며 “매스컴이 사람잡는다”고 한숨이다. 생선가격 또한 포 뜨기 좋은 동태 최상품은 4천 원선, 홍어는 1만5000원, 병어는 3마리 만 원이다. 올해 그래도 비교적 가격이 올랐다는 오징어는 4마리에 5천 원 선이다.

왔다갔다 온 길 또 돌면 또 그 자리, 다시 와서 가격 또 물어보고 조금 전보다 물건값이 더 내려가지 않았나 확인하고, 그래서 주인 아주머니 3천 원하는 고사리 한 접시도 2천 원에 흔쾌히 싸주기도 한다. 이것이 갈수록 잊혀져 가는 장날의 풍경이다. 갈수록 썰렁해지는 장날의 거리가 예전처럼 정겹고 더욱 생기가 넘쳐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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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시장의 작은 역사

전북 익산시 남중동1가 35-4에 위치한 북부시장은 익산지역 최대규모의 재래시장으로 지난 1975년 개장한 이래 익산지역 대표 장터로 명맥을 유지해온 곳이다.

대지 7400여 평에 지상 1층(600여 평) 규모, 점포 168개가 들어서 있고 매장 인원만 76명인 이곳은 거리 노점상과 합치면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28년 동안 4일과 9일이 지정 장터 날로 지역주민들의 알뜰 쇼핑 공간으로 사랑 받아 온 곳이다.

갈수록 초대형 할인점이 보편화되면서 젊은 층에 외면당하고 있지만 그에 맞서 북부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져가고 있다.
노점상 양성화와 시장을 찾는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실효성 없는 단속보다는 차 없는 거리를 지정 운영해야 한다는 여론과 시장건물이 낡고 노후해지면서 화재 등 각종 사고발생이 우려됨에 따라 시설보수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등동에 사는 시민 이모(여·48)씨는“장이 설 때마다 북부시장을 찾는데 주변이 너무 혼잡해 불편을 겪고 있다”며“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대형피해의 우려마저 안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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