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운정사의 한쪽 마루방인 관란헌의 창 밖에서 바라본 맞은편 마루방 시습재. 관란헌은 '물결 흘러가는 것을 감상하는 곳'이라는 뜻을, 시습재는 '시시때때로 학습하는 곳'이라는 뜻을 지녔다. 시습재의 창은 스승이 있는 도산서당을 향해 있다.박태신
농운정사는 창이 참 많습니다. 농운정사는 유생들이 공부도 하고 휴식도 갖고 잠도 자는 곳입니다. '공'(工)자를 90도 돌린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중앙의 획에 해당하는 곳은 방이고 양쪽 획은 공부방이나 휴식처가 되는 마루방입니다. '관란헌'(觀瀾軒)과 '시습재'(時習齋)라고 합니다. 관란헌 서쪽 창 밖에서 관란헌과 시습재 마루방을 봅니다. 이곳도 휴식과 공부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창이 창을 마주합니다. 문짝을 열어제치고 만납니다. 서로 서로 창 밖 전경을 보여주며 대화합니다. 문짝이 닫히는 밤에는 서로 은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겠지요. 처마에서 우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감상하면서요.
하인들의 거처인 상고직사도 둘러봅니다. 상고직사는 중앙에 마루를 둔 'ㅁ자'형을 하고 있습니다. 'ㅁ'자형이라 답답할 수 있겠으나 오히려 개방적인 느낌이 듭니다. 그 이유는 마루에 앉아 보면 드넓은 하늘이 올려다 보이고, 사방으로 문이나 창이 나 있어 기가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쪽의 대문, 남쪽의 출입문과 부뚜막 옆 창, 서쪽의 쪽문, 마루의 창을 열면 사방으로 시야가 트이게 됩니다. 중앙에 마당을 지닌 이런 구조에 걸맞은 소통 구조가 아닌가 싶습니다. 벽으로 사방이 '꽉' 막힌, 창이 있어도 냉난방을 위해 '꼭' 닫힌, 고층의 거대한 몸짓으로 대기를 '꾹' 누르고 있는 상태인 대형 빌딩들의 구조와는 정 반대의 열린 구조입니다. 이런 곳에서 자연스러움과 평온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지도 모르겠습니다.
상고직사의 마루는 넉넉합니다. 마루 뒤쪽으로 뜨락을 보여 주는 문이라고 할 창이 있습니다. 넓은 마루에 어울리게 넉넉한 크기로 되어 있습니다. 부산하게 움직여야 했을 일꾼들에게도 뒤 뜨락도 자주 들락거릴 곳이었겠지요. 암서헌의 관망을 위한 창과는 다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래도 더 많은 경우 창의 역할을 하였으리라 여겨집니다. 강당인 전교당은 뒤쪽이 여러 짝의 문으로 완전히 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창의 역할도 겸비합니다.
한옥의 마루는 개방형 구조가 본질입니다. 마루는 교차와 머무름에 상응하는 장소입니다. 휴식과 만담과 일이 공존하고 교차합니다. 그런 곳에 막힌 구조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처소에 걸맞게 자리잡고 있는 도산서원의 창들을 보았습니다. 조화란 아름다움의 다른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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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번역은 지금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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