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중국(3)

초원과 사막으로 둘러싸인 내몽고로

등록 2003.09.15 15:10수정 2003.09.1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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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보산에서 바라본 초원

오보산에서 바라본 초원 ⓒ 정호갑

1. 나서는 마음

북경한국국제학교 고등부 2학년 아이들 8명과 그리고 한어(중국어)를 담당하고 계시는 채심연 선생님과 더불어 10명이 4박 5일 동안 내몽고로 테마학습을 떠난다.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과 사막 그리고 칭기즈 칸을 그려보면서 북경서역에서 기차에 오른 시각은 오후 8시 40분.


2. 희랍목인초원에서 : 유목민 몽고인의 삶을 맛보다

10시간 40여분 달려 내몽고의 수도인 호화호특역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7시 20분. 역에서 빠져 나와 간단히 아침을 먹고 곧바로 희랍목인초원으로 갔다.

2시간여를 달려 초원에 이르니 몽고족들이 우리들을 반겨 흰 천으로 은잔을 받치고 그들이 마시는 독한 술(45도라 함)을 권한다. 오면서 배운대로 하늘과 땅 그리고 조상을 공경하고 숭배하는 마음으로 술을 약지에 묻혀 하늘에 땅에 그리고 이마에 튕기고 난 뒤 한 잔을 쭉 들이키니 그들은 환영의 노래로 우리들을 맞이한다.

몽고포에 짐을 옮겨 놓고 초원으로 나갔다. 9월 9일이건만 날씨는 쌀쌀하여 긴 옷 위에 다시 바람막이 옷을 한 겹 더 걸쳐야 했다. 초원을 걷고 있던 채 선생님은 나이도 잊은 채 마구잡이로 어디까지든지 달려보고 싶다며 외투를 벗고 곧바로 달리니 아이들도 함께 뛴다. 초원의 싱그러움과 상쾌한 바람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이어 오보산에 오르니 산꼭대기에는 큰 돌무덤이 하나 있는데, 라마교의 풍습에 따르면 돌 하나를 집어 들고 시계 방향으로 세 번 돌고, 다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세 번 돌고 난 뒤 소원 하나를 간절히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도 같이 간 아이들과 함께 돌 하나를 집어 들고 한 걸음 한 걸음에 나의 마음을 실었다. 다 돌고 바른 자세로 무덤 앞에 서서 나도 소원 하나를 빌었다.


a 초원 싱그러움을 흠뻑 들이마시며

초원 싱그러움을 흠뻑 들이마시며 ⓒ 정호갑

소원을 빌고 난 뒤 사방을 둘러보니 그야말로 온 천지가 초원이다. 한참 동안이나 초원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전혀 지겹지가 않다. 단 하루라도 이곳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머물고 싶다. 동으로 눈을 돌려보고, 서로 눈을 둘려보아도 초록은 끝이 없다. 이 초원은 도대체 어디서 끝날 것인가? 지평선이 맞닿은 곳까지 달려 가보고도 싶다.

아마 사람에게는 누구나 푸르름과 자연에 대한 동경의 마음이 온몸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나보다. 초원의 광활함에 잠깐 빠져있다 아이들을 돌아보니 모두들 차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자연 앞에서도 세대 차이가 나는 것일까? 채 선생님과 나는 슬그머니 차에 올랐다.


a 몽고 민속 춤

몽고 민속 춤 ⓒ 정호갑

저녁에 그들이 공연하는 가무를 보았다. 공연 내용은 그들의 삶을 춤과 노래 그리고 악기 연주로 보여주는데 50여분 동안이나 계속 되었다. 그 중 초원에서 말을 타고 질주하는 모습을 춤으로 엮은 장면은 마치 실제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듯한 힘찬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내어 가장 인상 깊이 남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넓은 초원에서 말을 타고 질주하며 세계를 제패하였던 그들의 기상은 어디 가고, 오늘은 이 조그만 무대를 배경으로 관광객들 앞에서 춤추고 있으니 아무리 시간의 흐름을 탓한다 해도 서글픈 마음 감출 길이 없다.

몽고포에서 밤은 너무 추웠다. 이부자리는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깊숙이 덮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유목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추운 밤을 보내어야만 했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추위에 떨며 해가 돋기를 기다리니 6시 10분경이 되어서야 떠오른다. 하지만 해 돋는 곳의 주변에 건물들이 있어 초원에서 맞이하는 해돋이건만 한국 바닷가에서 보는 것보다 감흥을 자아내지는 못했다. 일출을 보고 곧바로 그들의 방식대로 차와 치즈 말린 것 그리고 구운 빵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사막으로 출발했다.

a 초원에서 맞이하는 일출

초원에서 맞이하는 일출 ⓒ 정호갑

3. 고비사막에서 : 나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막. 사막 하면 신비하기도 하지만 고달픔도 아울러 겹쳐진다. 끝없이 끝없이 펼쳐진 모래벌판, 강렬한 햇빛, 모래 바람, 그리고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있는 이 곳에서의 삶은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한 가운데서도 생명체는 움트고, 그 생명을 지켜주는 물도 있다.

내가 지금 그곳으로 가고 있다. 창밖으로 보니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지평선이라는 걸 정말 느낄 수 있다. 땅과 바다만 바뀌었지 마치 한국의 동해안 해변도로를 달리는 듯한 기분. 사막을 바로 앞에 두고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화학 발전소가 보인다. 사막과 화학 발전소. 함께 할 수 없는 듯한데 바로 이웃해 있다. 이것이 오늘의 중국 모습인 듯하다.

a 사막과 마주한 화학발전소

사막과 마주한 화학발전소 ⓒ 정호갑

4시간을 달려 사막에 이르렀다. 사막으로 들어가기 위해 낙타를 타야하는데, 왠지 조금 겁이 났지만 그래도 아이들 앞이라 속으로 감추고 용감하게 낙타에 올랐다. 낙타는 우리를 태우고 모래산을 올라 사막으로 들어갔는데 사막 중간 중간에 손가락만한 도마뱀이 재잘거리며 다니고 있었다. 저 도마뱀은 자기 길은 알 수 있을 텐데. 여기저기 둘러봐도 전부 모래산뿐인 이곳, 나는 도저히 방향 감각을 잡을 수 없다. 어찌 보면 저 짐승들보다 못한 것이 너무나 많은데, 내가 가진 교만함이란. 자연 앞에서 너무 작은 내 모습. 나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부산인 고향인 나였기에 해운대 바닷가를 느끼고 싶은 마음에서일까? 사막에서 나올 때에는 낙타를 타는 대신 맨발로 걸어 나왔다. 발바닥으로 스며드는 따뜻함. 기분이 참 좋다. 사막을 빠져 나오니 거의 70도 이상의 내리막길이 마주 하고 있는데 썰매를 타고 내려가란다. 눈썰매를 생각하고 아무도 내려가지 못하고 있는데 역시 가장 용감한 윤기환이 앞장선다. 어, 내려가는 것을 보더니 여학생들도 머뭇거림이 없다. 정말 시시하다. 속도가 전혀 붙지 않아서 오히려 손으로 속도를 재촉하고 있지 않은가?

a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 정호갑

사막 관광 하면 강렬한 태양을 등에 업고 낙타를 타고 사막을 가로질러 갈 줄 알았는데, 오늘은 그냥 사막을 조금 맛만 보았다. 사막 입구에서 낙타를 타고 조금 들어가 사막을 바라보며 잠시 태양과 모래의 뜨거움을 맛보고 도로 나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래도 말로만 듣던 사막을 직접 밟아도 보고 낙타를 타고 모래산도 넘고 태양의 강렬함도 느껴 보았으니 이만하여 되었지 하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접었다.

4. 칭기즈 칸 릉에서 : 역사의 힘을 다시 생각하다

12-13세기에 세계를 제패했던 영웅, 칭기즈 칸. 하지만 그의 실제 무덤은 어느 곳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단다. 지금 내몽고 있는 능은 칭기즈 칸이 그 당시 썼던 투구와 말채찍을 간직한 곳이라 한다.

칭기즈 칸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낼 때 어미 낙타와 새끼 낙타를 데리고 가는데 제물로는 새끼 낙타를 바친다고 한다. 그 까닭은 어미 앞에서 새끼를 죽여 제물로 바치기에 어미는 그 곳을 뚜렷하게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다음 해에 올 때는 그 어미 낙타를 길잡이로 한단다. 사람의 현명함이라 해야 되나, 잔악함이라고 해야 되나.

칭기즈 칸 릉은 칭기즈 칸의 초상을 정면으로 하고 뒷편에는 그가 점령한 세계를 지도로 그려놓았다. 이 지도가 한 때는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단다. 그것은 중국이 몽고에 침입 당하였던 것을 수치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1992년 장쩌민이 역사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장막을 걷어내었다고 한다.

기념관은 투구와 말채찍을 중심으로 하여 유물 몇 가지를 진열하여 놓았다. 그리고 전시관 벽면에 그의 삶의 전 과정을 벽화로 그려놓았다. 그의 삶을 들어보면서 그에게서 느낀 점은 다른 정복자들과 달리 그는 외래 종교와 기술자에 대해 매우 관대하였다고 한다. 외래문화를 너무 적극적으로 수용한 나머지 결국에는 세계 제패의 영광을 빨리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속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칭기즈 칸의 유물과 그의 삶을 둘러보면서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그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는가? 그런데 지금 몽고는 어떠한가? 또 하나 우스운 것은 칭기즈 칸은 엄연히 몽고역사인데 이제는 중국역사로 소개되고 있다. 이것이 중국의 힘인가?

들리는 말에 따르면 우리 고구려 역사도 중국이 연구한다고 한다. 옛날 중국의 땅이거나, 지금 자기의 땅이면 무조건 자기의 역사로 만든다. 그리하여 그들의 역사를 더욱 더 화려하게 꾸민다. 그리하면 그들은 세계의 중화로서 남게 되는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역사의 힘.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으며, 거기에 대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쓸쓸한 기분으로 칭기즈 칸 릉을 나왔다.

5. 돌아오면서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는 여행하는 곳의 삶을 체험해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곳의 자연을 맛보는 것이고, 세 번째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 일탈을 맛보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일탈을 맛보지 못했지만 나머지 세 가지는 나름대로 느끼고 맛보았다. 오늘의 여행이 우리 아이들의 삶에 자양분으로 남아 앞으로 그들의 삶에 밑거름이 될 수 있길 욕심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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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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