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변할 때도 됐잖아, 뉴스!

"9시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등록 2003.09.17 00:34수정 2003.09.23 11:30
0
원고료로 응원
저녁 9시.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 사는 김모씨는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TV을 틀고 뉴스를 시청했다. 뉴스 시청을 하는 동안 그는 정치 이야기, 경제 이야기, 사회 이야기를 보며 얼굴이 벌개질 만큼 화를 내기도 하고, 훈훈한 미담에 따뜻한 표정을 지어보기도 한다. 그가 오로지 텔레비전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뉴스 뿐이다.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에 사는 박모 할머니는 뉴스의 시작 음만 나면 몸을 일으켜 TV을 응시한다. 뉴스라도 보지 않으면 치매에 걸릴 것 같은 노파심 때문이기도 하고 세상을 알 수 있는 창과도 같은 것이 바로 TV 뉴스이기 때문이다.

a MBC 뉴스데스크 - 위 사진은 본 기사의 논지와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MBC 뉴스데스크 - 위 사진은 본 기사의 논지와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imbc.com

방송사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뉴스. 그리고 그런 뉴스의 시청률은 방송사에게 있어서 가장 민감한 사안 중 하나이다. 특히 프라임 시간대의 밤 9시 뉴스의 경우 KBS와 MBC가 경쟁을 벌이고 있고, 그런 경쟁에 끼어 들고 싶지 않은 SBS는 ‘한시간 빠른 뉴스’라는 색다른 모토로 밤 8시에 뉴스를 전한다.

뉴스는 정보와 교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성격상 모든 사람들이 그야말로 ‘새로운’ 정보를 듣고자 하는 공통된 입장에서 뉴스를 시청한다. 방송에 있어서 뉴스는 매일 먹는 밥과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근 뉴스가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MBC 뉴스의 경우 같은 시간대의 KBS 뉴스보다 부진한 시청률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어서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최근 MBC는 MBC방송의 다시보기와 드라마의 대본등 현재 방송중이거나 방송되었던 프로그램들을 볼 수 있게 운영해왔던 iMBC와는 별개로 MBC뉴스와도 조금은 다른 논조를 지니거나 혹은 좀더 심층적인 뉴스를 보도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 계획이 있음을 조심스레 내비쳤고, '전문기자제'도입을 꾀하는 등 변화의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고 있다.

이제는 몇 십년 간 봐왔던 뉴스의 획일적인 형식과 취재양태, 리포트 방식, 시청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등에 변화가 오고 있다. 바야흐로 ‘뉴스의 색깔 찾기’가 시작된 것이다.


사실의 나열만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뉴스는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을 뿐더러 새롭지도 않다. 뉴스에 있어서 재미와 새로움이란 어떤 것일까? 사실의 나열인 뉴스에 재미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뉴스에 있어 재미란, 특히 그것이 방송뉴스라면 기자의 치열함이 묻어나는 영상과 고발이다. 다른 매체가 보여주는 뉴스가 아닌 영상으로 말하는 방송뉴스라면 사건의 생동감과 기자의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느낌을 보여주는 것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뉴스들을 보고 있노라면 새로운 사건의 발견과 고발보다는 단순 사실의 나열에 급급하다. 시청자가 알고 싶어하는 부분은 배제한 채 리포팅만 하는 뉴스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경우에는 기자의 리포팅 자체가 사건보다는 기자의 이름 석 자와 얼굴만 부각시킨다는 느낌이 들기까지 하다.

시청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뉴스를 전하는 앵커의 경우도 그렇다. 다른 선진국의 방송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뉴스의 경우 앵커의 역할이 무척 작은 편이다. 40여 분의 뉴스 시간동안 뉴스 꼭지를 전해주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이 전부이다. 뉴스라는 것은 사실에 대한 보도이기에 주장이나 주관은 배제되어야 하지만 이미 취재를 하는 순간부터 뉴스에는 방송사의 논조나, 기자의 입장이 영상이나 어휘에서 투영되기 마련이다. 또한 기사를 내보내기 위한 말을 하는 순간에도 기자나 앵커의 판단력이 투영된다. 이런 여러 사건들을 전해야 하는 입장에서 단순히 presenter로서 존재하는 앵커는 앵무새와 같이 보인다.

"9시 뉴스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최근 들어 밤 9시 뉴스의 중요성 만큼 밤 12시에 하는 뉴스24(MBC), 나이트 라인(SBS) 등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바로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MBC의 경우 마감뉴스인 '뉴스 24'에 전 MBC뉴스데스크 기자출신 앵커였던 '김은혜'씨를 기용함으로써 새로운 변화를 꾀했다.

그러나 타 방송국의 심야 뉴스 프로그램들과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단순히 밤 9시 뉴스의 재방송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런 뉴스의 제자리 걸음들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와 그 구성원에게 더 이상 방송프로그램 이상의 가치를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의문이다.

현실적으로 밤9시 뉴스는 빠르게 변하고, 바쁘게 생활하는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과는 어긋난 면이 많다. 정작 빠른 정보가 필요한 그들은 밤 9시 뉴스를 보는 대신 인터넷을 이용한 신문을 보고 실시간으로 정보를 수집한다. 그런 그들에게는 밤 9시의 메인 뉴스가 더 이상 꼭 봐야만 하는 중요한 정보원이 아니라, 그 시간에 하는 수많은 프로그램 중의 하나 일 뿐이다.

뉴스가 가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몇 십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뉴스의 모습부터 변화해야 할 것이다.

뉴스에게 말 걸기

a CNN의 NEWS NIGHT

CNN의 NEWS NIGHT ⓒ cnn.com

뉴스는 외롭다. 단순하게 시청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다른 텔레비전 프로그램과는 달리 사건들을 일방적으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뉴스는 언제나 고리타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만 할까. 대답은 ‘아니다’ 이다. 공중의 전파를 쓰는 이상 뉴스 역시, 다른 방송 프로그램들과 같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노력해야 한다.

뉴스 하나로만 세계 뉴스시장을 제패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의 CNN. CNN의 뉴스는 그 이름 하나로도 신뢰성과 힘을 갖는다. 이러한 신뢰와 힘은 한 순간에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CNN의 보도가 항상 옳고 바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CNN의 뉴스와 우리나라 방송 3사가 보여주는 뉴스와의 차이점은 ‘뉴스와 대화를 하고 있는가’, 그리고 ‘세상과 대화의 창을 열어주고 있는가’ 이 둘에 차이점에 있다.

우리나라의 MBC <뉴스 24>나 SBS <나이트 라인>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아론 브라운(ARRON BROWN)의 뉴스 나이트(NEWS NIGHT)의 경우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 시켜주고 있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몇 가지 테마와 현재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들을 선정해서 매일 1시간 여 동안 다룬다.

우리나라 심야 뉴스들이 그날 밤 9시 뉴스에서 이미 방송되었던 기사를 다시 보여주기의 형식밖에 지니지 못하는 것에 비해 뉴스 나이트(NEWS NIGHT)은 비즈 뉴스(BIZ NEWS)나 월드 뉴스(WORLD NEWS)에서 단편적인 리포팅으로만 보여 주었던 것을 아론이라는 뉴스 진행자, 그 자체로도 신뢰감을 가질 수 있는 앵커를 통해서 좀더 비판적이고 심층적인 시각에서 뉴스를 지켜보는 것이다.

또한 뉴스나이트(NEWS NIGHT)는 시사적이고 비판적인 소재 뿐 아니라 생활에 관련한 뉴스 거리들도 충분히 다룬다. 뉴스나이트(NEWS NIGHT)에게 있어서 뉴스라는 것은 단순히 알려주기 위한 뉴스 소재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과 같이 생각해보고 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단순히 프로그램의 내용만 시청자와 사회와 같이 대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론이라는 진행자를 내세운 프로그램의 형식 역시 매우 자유스럽다.

스튜디오 안의 딱딱한 책상과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뉴스 거리들을 전해주는 것은 우리나라와 똑같다. 그러나 아론이라는 진행자를 앞세워 연륜과 시각의 신뢰를 주면서 웃음을 나눌 수 있고, 분노를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의 분위기는 앵커가 앵무새처럼 말만하고 기자가 단순히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것 같은 1분 인사를 보여주는 우리 방송과는 사뭇 다르다.

뉴스, 색깔을 갖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 뉴스이다. 드라마는 현실에 대한 가공이 들어가고, 쇼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의 이야기에 치중되어 있다. 뉴스는 사회의 구석구석, 정치의 요모조모, 세계의 이런저런 사건들,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창과도 같다. 세월이 지나고, 집의 주인이 바뀌면 그 집안에 있는 세간도 바뀌고 집의 모양도 바뀌듯 뉴스 역시 변해야 한다. 세월의 흐름은 누가 잡을 새도 없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음에도 같이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이 된다면 뉴스가 가진 세상의 창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아 흉가의 창이 될 것이다. 뉴스를 전하는 기본적인 정신은 그대로 지켜야 하겠지만 보여주는 그릇은 이제 바뀔 때가 된 것 같다.

단순히 뉴스 시청률에만 얽매여 데스크에 앉아 있던 앵커를 방송국으로 내려오는 ‘눈 가리고 아옹’ 식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닌,뉴스를 뉴스라는 고정된 틀이 아닌 뉴스와 다른 영역과의 조화나, 새로운 방식의 프로그램으로 다시 만들어서 새로운 형태와 새로운 내용으로, 그야말로 뉴스로 시청자에게 다가가야 할 때가 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3. 3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